J_카타리나 이모저모

♡ 기독교인에게 전하고 권하는 글 3탄 ^^* ♡

J_카타리나 2005. 7. 2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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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카타리나의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과 기독교인 형제분들을 향한 사랑으로
한 형제님의 글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권합니다...^^*


떡과 포도주/새 언약의 성취
욥의 깨달음과 회개



욥기는 42장으로 끝난다.
욥으로서는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42장에 오면 드디어 우리의 욥이 주제 파악을 하게 된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 42:1-6)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잘못한 것이 없노라고 그렇게 펄쩍펄쩍 뛰던 욥이
이젠 할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스스로 한(恨)하며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욥은 무엇을 한(恨)하고 무엇을 회개하는 것일까.
그처럼 당당하던 욥이 어째서 이렇게 회개하게 되었을까.
욥은 선악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회개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상을 받아도 시원찮을 정도의 삶을 살았다.

욥이 깨달은 하나님은 '선악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의 선이나 나의 악으로 나를 판단하며 일회일비하는 하나님이 아니더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러한 문제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자기의 의를 주장했던
과거의 삶에 대한 회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선악의 하나님은 귀로 듣기만 하고 눈으로 보지 못한 즉
소경이었던 때의 하나님이었다. 눈을 뜨고 하나님을 보니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더라는 사실이다. 

윤리나 도덕이 아니며 율법이나 선악이 아닌 생명의 하나님,
자람의 하나님, 삶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운 자가 누구였던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앉아 있을 때에는 욥의 세 친구가 그들인 줄 알았다.
물론 욥의 세 친구는 욥보다 더 한심한 수준이지만, 이제 알고 보니
욥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형편없이 무지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원함은 생명에 있었는데 선악을 가지고 따지고 있었다니……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恨)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마치 마태복음 18장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에서 '내게 참으소서
내가 다 갚으리이다'라고 얘기하는 부끄러움, 회한, 절망감과 같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러한 절망으로부터 온다.
도저히 나의 빚을 다 갚을 수 없겠구나, 평생을 빚쟁이로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절망, 너무나 한심한 자신의 지식에 대한 스스로의 한(恨)으로부터
하나님의 긍휼은 솟아난다. 이제 이 빚, 이 부끄러움을 어찌할꼬.
'아, 하나님. 내가 스스로 한하고 참으로 회개하나이다'

그러면 욥의 세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욥 42:7-8)


물론 이 세 친구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욥에게 가서
자신들의 잘못을 위하여 여호와께 빌어주기를 청한다.
여러분이 욥 같으면 무어라고 하겠는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자에게 빚을 갚도록
요구하였듯이 그 친구들에게 자신의 옳음을 과시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욥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들이 욥에 대해 오해하고 비방한 것보다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비방했던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명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은 자기에게 죄지은 자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온다. 과거에 그들을 보고 한심해 하며
혀를 끌끌 차던 자신이 생각나면, 하나님은 그런 자신을 보고
얼마나 한심해 하시고 얼마나 걱정했을까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허튼 소리를 한 것이 일만 달란트라면
세 친구의 중상모략이 그야말로 백 데나리온 어치도 안 되는 것을 …
그래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법이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법이다.
북한에도 해를 띄우고 일본에도 비를 내리며
백담사에도 여전히 샘물이 솟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심과
하나님의 섬기심을 보라. 무엇이 문제인가.

욥기 42장 마지막은 욥에 대한 축복이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 42:10)



욥에게 곤경이 끝나고 복이 주어지는 열쇠는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에 있다. 이것이 자신의 십자가다. 이것이 예수의 피를
마심이다. 예수가 마신 잔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요,
우리가 마시는 잔은 예수가 마시는 잔이다.
이 잔을 마심으로 우리는 비로소 하늘나라의 온전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로만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하셨듯이(요일 5:6)
우리 역시 그러하다. 우리에게 죄지은 자의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질 때, 우리의 섬김이 최고에 달할 때,
우리의 사랑이 참으로 아름다워질 때,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리라(요일 4:17)'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삶이 나의 삶으로 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수차에 걸쳐 제자들에게 말씀했던 것처럼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요 13:16)'는 말씀과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마 10:25)'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십자가는 예수만 지고 채찍은 예수만 맞고 온갖 비난과 수모는
예수만의 몫이 아니다. 예수가 예루살렘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야
했던 것처럼(마 16:21-22)) 그를 믿는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

결코 이 땅 위에서 영광스럽고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찬송가 가사대로 참으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의 삶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기독교는 자기들의 입으로
부르는 찬송가의 가사대로도 살지 못하고 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는 순전히 말이고
예수는 여전히 홀로 십자가를 지고 있으며 존귀영광 모든 권세는
여전히 백성들의 장로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나누어 쥐고 있다.

존귀와 영광을 내놓으라는 강요가 아니다. 예수의 삶을 보라.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그를 믿는 사람들은 그의 삶이
자신의 삶으로 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철저히 예수의 삶을
알아야 한다. 과연 그가 관심을 가지고 행했던 삶은 무엇이었는지.
예수가 원했던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삶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기도해야 한다. 육신적인 복이 쌓임이 아니라 너를 위하여 나를
내어놓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일 수밖에
없고(마7:13),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은 길이다
(눅 13:24).
내가 내 마음대로 교회가서 교인으로 등록하고 세례(침례) 받고 봉사하며
교회출석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예수는 우리더러 교회
열심히 나오라고 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교회에 계시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4-6)


밷엘이 어디던가. 길갈은 어디며 브엘세바는 또한 어떤 곳인가.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어놓은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사 66:1).
뿐만 아니라 부활절 연합 예배를 드리는 여의도 광장에도 하나님은
아니 계시며 로마 교황청의 대성당 안에도 하나님은 아니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욥 5:15-6:3)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며 여호와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삶이다.
벽돌로 건물이나 지어놓고 십자가나 세워놓는다고 교회가 되고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개개인들이 예수처럼 하나님 아들로서
'너를 위한 섬김의 개체'들이 될 수 있을 때 하나님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며 그런 우리가 곧 하나님의 형상이며 모양인 것이다
(창 1:27).
 
그러니 그렇다고 당장 다른 사람들을 섬기러 나아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섬김이란 것 자체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들 신앙의 모든 외형과 껍질들을 내어버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신앙을 육신 생활을 위한 도구나 수단 정도로 생각하던
그 생각부터 내어버려야 한다.
삶은 그 자체로 목적일 뿐 삶이 수단일 수는 없다.

신앙은 삶이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선악으로 찌든 영육간의 모든 찌꺼기들을
내어버리고 생명을 잉태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간단없는 양식의 공급을 받아야 하며 그 생명을 키워가야 한다.
물론 해산의 때가 다가오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도 하리라(요
16:21). 그러나 그 근심, 그 고통이 없이는 세상에 사람이 날 수 없는 법,
우리는 모두 다 우리 자신을 낳아야 한다. 내가 낳은 나, 이전의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난 나의 자람과 성장 없이는 섬김은 없다. 섬김이 없이는 천국도
없으며 사랑도 없으며, 하나님도 신앙도 모두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 12:33-37)


글: 이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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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위의 형제님처럼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니까요..

작금의 교회가 부패하고 잘못가고 있는 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목회자와 교인)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해서
또는 "하나님 의"보다 "자기 의"를 내세워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의 힘(의)으로는 어느누구도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믿음과 깨달음은 강요하거나 설득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함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함은 전한 것으로 끝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도움을 줄 자,구원시킬자, 깨닫게 할자, 성장하게 할 자에게
은혜를 주시어 구원의 길로, 성장의 길로 가게 해 주실거라 생각합니다.

영분별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분별함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자신이 걸어가야하는
신앙의 길잡이와 형제들에게 유익함을 끼치는 도구로 사용해야지
남을 정죄하는 데에 사용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복음답게 깨달아 감으로서
샘솟는 감격에 찬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의와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을 전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평강하소서!!!!^^*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요한1서 2:3~6)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마가12:30~31)



    천상의비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