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 '늙은 소'가 되어버린 사람들
"터미널 사람들은 나를 '임계 짱'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성씨를 잘못 알아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임시 계약직'이라는 말에 노인 '장長'자를 하나 덧붙인 것이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호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 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
60대 노동자 조정진 씨가 쓴《임계장 이야기 》에는 노인 노동의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38년간 공기업에서 일하다 퇴직한 그에겐 주택담보대출이 남아 있었다. 은행은 퇴직과 함께 신용이 사라졌다면 대출금을 갚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자녀의 학자금 대출까지 남아 있다. 그래서 다시 일터로 향했다. 주어진 선택지는 임계장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 되는 것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갓다. "지금 직장이 없어지면 건강보험이 없어지니 며칠만이라도 질병휴가로 해달라"는 요청을 회사는 거부했다. 그는 자신 같은 노인 노동자를 '틀은 소'에 빗댔다.
"왜 어떤 노인들은 여유가 있는데 어떤 노인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 것일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모든 가난에는 비슷한 이유가 있다. 젊어서 가난하고 돈을 모으지 못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경제활동이 줄어들면 더 극심한 빈곤으로 빠지기 쉽다. 2020년 6월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노인빈곤 원인에 대한 고찰: 노동시장 경험과 가족구조 변화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은 50대에 어떤 일자리에 있었느냐가 65세 이후의 빈곤을 결정짓는다는 조사 결과를 담았다. 정규직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한 이들은 노후에도 윤택했지만 그 반대라면 빈곤 노인이 될 확률이 높았다. 예상 가능한 일이다. 특히 한국은 경제발전기에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기업 규모가 임금뿐 아니라 복지와 노후까지 결정짓는 구조가 돼버렸다.
노인들이 겪는 문제가 돈만은 아니다. 사회적 고립도 고령자들의 삶의 질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국만해도 1인 가구가 2019년에는 노인 1인 가구가 150만으로 전체 1일 가구의 25퍼센트를 차지했다. 일본에서 먼저 제기된 '고독사'현상은 이미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립된 느낌이 빈곤과 맞물리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노인들도 있다. "충남의 한 농촌 마을에서 3년전 음독자살한 김씨(가명)는 재산 대부분을 큰아들에게 증여한 뒤 다른 자녀들과 불화가 생겨 관계가 멀어졌다. 이웃과 왕래조차 없었던 그는 지역 보건소장에게 '죽고 싶다'고 자주 털어놨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하자 결국에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노인 자살 사례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도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압도적으로 높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펴낸 《2020 자살 예방백서》를 보면 자살자는 60대에서 70대, 80대로 갈수록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점 늘어가는 노인들을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
빈곤과 사회적 고립 등 모든 것을 관통하는 노인문제의 핵심은 '돌봄'으로 모안진다. 누가 노인을 돌볼 것인가. 그 돈은 누가 낼 것인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게 할 것인가, 국가의 법규와 제도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 가. 이 대답을 찾는 과정이 노인 문제를 푸는 과정이 될 것이다.
노인을 돌보는 일이 여성들에게 대부분 맡겨지는 것, 그리고 돌봄노동이 저임금 직종이라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서울대한교 국제대학원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의 <한국의 노인 및 아동 돌봄 가족조사> 여군를 보면 가족 가운데 노인을 돌보는 사람은 딸 (35.0%)과 며느리(36.7%) , 배우자(15.6%), 아들(11%) 순이었다. 돌봄 전담자 대분분이 여성인 것이다.
돈을 받고 노인을 돌보는 일 역시 여성의 몫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인구통계학적 변화에 따른 일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고령자 돌봄 서비스가 미래의 일자리 중 큰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봤다. 국제노동기구는 "돌봄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다양화됨에 따라 돌봄 경제는 미래의 고용창출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그러나 대다수의 돌봅 노동자는 비공식 고용된 여성들 특히 착취와 배타적인 관행에 취약한 이주노동자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돌봄을 기술에 맡기면 어떨까. 가족 돌봄보다 전문 간병인에게 노년을 의지해온 서구에서는 이미 노인요양을 위한 로봇, 이른바 케어봇이 한창 개발되고 있다. 카트를 끌거나 환자를 들어 올리는 간단한 기능에서부터 처방된 약을 나누주거나 환자에게 레크레이션을 제공하는 로봇도 있다. 국제로보틱스연맹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노약자와 장애인을 돕기 위해 설계된 로봇 시장 규모는 4800만 달러로 아직은 작다. 재활을 돕는 로봇 전체로 확대하면 3억 1000만 달러 규모로 늘어난다. 국제로보틱스연맹은 사용자의 신체적, 사회적 참여를 돕는 소셜로봇이나 재활로봇 시자이 내면 커질 것으러 예상했다.
노인은 품위를 잃지 않고 돌보는 이들은 정당한 대가를 누릴 수 없을까. '돌봄도농의 사회화'를 애기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와 사회 모두의 일임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이든 세대나 돌봄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가 지적했듯이 늙어가는 세계에서 앞으로 일자리의 상당수는 '고령화 관련 산업'에서 나올 것이다. 세금을 노인을 부양하는 비용을 모두 충당할 게 아니라 다양한 상상과 시도와 연대가 필요한다.
고령화는 '인구 시한폭탄'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풀생과 함께 노화와 죽음도 개인에게 운명과 같은 일이지만 신체능력이 줄어든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나이를 기준으로 행해지는 정형화, 편견, 차별"을 에이지즘(연령차별)이라 정의하면서 "노인들의 건강에 해로운 음험한 관행" 이라 불렀다. 젠더차별이나 인종차별에 비해 연령차별은 더욱 광범위하면서도 저항이 적고 '정상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는 특징이 있다, 차별자체가 제대로 인지되지 않고 그 부작용을 고쳐나가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직장에서의 연령제한도 에이지즘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노인들도 일을 해 먹고 살아야 하지만 거의 모든 기업이나 기관에는 '정년'이 있다. 일자리 경쟁이 심해지면서 나이가 든 사람들이 계속 일하는 것을 '청년층 일자리 빼앗기'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여기에는 임금구조도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WHO는 2020년부터 2030년까지를 '건강하게 나이들기'를 위한 10년으로 정했다. '건강하게 나이들기'는 2015년 논의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단순히 질병이 없고 쇠약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노년기에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기능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모든 과정으로 정의된다. '건강하게 나이 들기'위해서는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인 능력과 함께 가정과 지역, 사회의 환경도 중요하다.
WHO는 건강하게 나이들기의 성공 조건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다양성이다. 뭉뚱그려 '노인'이라고 부르지만 모든 노인은 한 명 한 명이 고유한 존재들이다. 두 번째는 노인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인이 가진 능력의 대부분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오랜기간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누적된 결과다. 따라서 가족, 성별, 교육 수준과 자산, 인종 같은 여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WHO는 제안한다. 출생과 양육, 나이 듦이 모두 순조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면 고령화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인류가 백세까지 사는 '호모 헌드레드'의 시대, 노인은 우리 모두의 미래다.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른의 어휘력 (0) | 2023.05.28 |
---|---|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네 단어, 나는 해 낼수 있다. (0) | 2023.01.26 |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6 (0) | 2022.02.21 |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5 (0) | 2022.02.18 |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4 (0) | 2022.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