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분별의 글을 쓸 때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분별을 해야겠기에 부득불 올려드림을 용서하십시오.
대부분의 분들이 거의 다 아시겠지만...
면죄부는 맘몬에게 장악된 유럽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했을 무렵
교황이 성당을 더 화려하게 지으려는 욕심에 건축자금이 필요하자,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판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성경에도 없는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발상이었고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면, 지금까지 지은 죄는 모두 사함받기에
모두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여, 사람들은 회개하기보다는 교황의 말을 절대 신뢰했고,
너도나도 이 면죄부를 구매하여
지난날의 죄 가운데 살았어도 다 사함받는다는 기대에 부풀었고,
앞으로 짓는 죄도...
죄에 대하여 구속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계속 죄 가운데 살아도 면죄부로 인하여 구원받는 것에는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쯤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그걸 죄에 대한 해방이고 자유함이라 인식했습니다.
그 당시 교황의 말 한마디의 권위는 이미 예수님과 동급이었고,
성경에 이러이러하게 기록되었어도, 교황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고,
성경에 없는 말도, 교황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었습니다.
교황의 말은...
곧 주님의 말씀이었으므로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까지도 교황을 거슬렀다가는
지옥에 갈 것이 두려워 교황 앞에 실제로 무릎을 꿇으며
굴욕당할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종교개혁가들은 면죄부가 비성경적인 것이라 반박하고
루터를 필두로 하여 교황과 대립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95개의 반박문을 발표하며 교황에게서 완전히 돌아섭니다.
이 반박문은 종교개혁의 신호탄이 되었고,
교황이 이끄는 로마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돈 받고 죄를 사해주고 구원시켜준다는
1차 면죄부 파동입니다.
그런데 이 면죄부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현대 교회에서 또 다른 형태의 면죄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세 때,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던 어떤 종교개혁가들이 만든
교리 속에 기생하며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게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
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니 보혈 피의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행한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주님을 영접한 것이고,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모두 사함받았기에
이제는 죄로부터 구속함을 벗었으므로 자유하다.
이 얼마나 그럴듯하고 달콤한 면죄부 교리입니까...
그러나, 왜 현대판 면죄부인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 사람은 연약하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음으로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 피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앞세워
이제는 죄에서 해방되었기에 자신이 짓는 죄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보혈 피의 가치를 헛되이 하는 것이라 하며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범하고도 어쩔 수 없다는 인간의 연약함을 핑계하여
그리스도의 보혈 피의 은혜를 앞세워 자신의 죄를 '퉁'치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짓는 죄에 대해서는 강하게 정죄하면서
자신이 짓는 동일한 죄에 대해서는 두렵고 떨림이 없도록
양심을 마비시켰습니다.
마치, 중세 때 면죄부를 삿던 사람들이 맹신하는 그런 자유함...
바로 그것입니다.
구제를 위해 써야 할 헌금을, 목사 자신의 영달을 위해
공금을 횡령하면서도 당연하듯 아무 죄의식을 못 느끼게 되었고,
목사라는 분들이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전혀 죄의식도 없이,
회개하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고,
교인들은 교회 밖만 나가면 바로 돌변하여 육으로 살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못 느끼도록 마취시켰습니다.
마귀의 궤휼(교리)은 사람을 이렇게 변질시킵니다.
돈 주고 면죄부를 사면 죄로부터 자유하다.(중세 때 1차 면죄부)
회개와 거듭남 없는 죄 사함의 보혈 피 적용(현대판 2차 면죄부)
지렁이는 혐오스러우니 죽이자면서, 독사를 키운 것입니다.
즉, 믿음 없는 극단적 행위 주의를 경계하자면서, 실상적
자기 부인과 회개와 거듭남 없는 극단적 은혜 주의를 택한 것입니다.
그게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중세 때 면죄부는 허술하여 상식선에서도 분별되지만,
현대판 면죄부는...
영이 깨어있지 않으면 스스로 분별하기 힘듭니다.
마귀는 중세 때의 면죄부작전 실패로, 잠깐동안 물러났었지만,
초대교회 시절... 성령충만한 사도들에 의하여 저지되었던
오리지널 면죄부 카드를 다시 빼듭니다.
이천 년전 당시에도 이런 사상을 가진 마귀의 종들이
초대교회 내부에 파고들었습니다.
'믿음이 중요하지 사람에게서 나오는 행위는 중요하지 않다.
육은 원래 연약하여 죄와 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어차피 육은 썩음을 당하고, 영은 구원받는다'
바로 니골라당의 영지주의입니다.
철저히 믿음 따로 삶 따로의 모습을 보입니다.
사실 삶이 없는 믿음과 믿음 없는 삶이 온전한 믿음이었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죄의 행위에 대하여 보혈 피의 은혜를 앞세워
정당화하며 전혀 죄의식이 없도록 합니다.
육의 악한 속성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와도
믿음과 구원에 대하여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기 싫어하며 세상의 풍월에 따르길 원하는
육적인 사람에게, 이 얼마나 딱 떨어지는 기막힌 교리입니까...
죄에 대하여 부담감이 없으니 참으로 자유하다고 느낍니다.
죄책감이 전혀 없으니, 죄로부터의 해방이라 느낄만합니다.
무거운 죄짐을 내려놨다고 할만합니다.
이제 내 원하는대로 삶을 즐기면서 구원만 받으면 됩니다.
참으로 구원이 누워서 떡먹기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들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계 2:6/2:15)
초대교회 시절 뿐만 아니라, 현대 교회에도 이 영지주의는
옷만 살짝 바꿔입었을 뿐, 그 알몸은 그대로 전승됩니다.
하여, 바울 사도는 이를 경계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이시대의 오늘날)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삶과 영성)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교리 주의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장 1-5절)
이 서신서를 디모데에게 보낼 당시...
바울 사도는 미래에 있을 말세 때의 영적 상황을 주님의 계시로
다 본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보면 계시나 환상을 많이 봤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듣고 본 것에 대하여 말하길 좀 꺼려합니다.
이는, 영적인 현상보다...
거룩한 삶으로 나타나는 믿음을 본질로 여겼기 때문이고,
자신에게 나타나는 영적인 현상을 계속 말하면
자신이 높임 받는 것에 대하여 철저히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득불 이 서신서에서는
미래의 영적 상황을 첨부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이어갑니다.
그들(교리 주의자들)중에 남의 집(교회당)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분별없는 교인들)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교리에 미혹된 교인들)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