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10. - 켄트 너번
정승현 옮김
발행처: 한마음사
5. 소유물 2.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유물이 사실
모충에서 자라난 나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가 소유의 욕망에 눈이 멀 때,
바로 그 나비가 환상의 날개짓을 시작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자유로서, 그리고 행복으로서 바라본다.
우리는 그것들이 판에 박힌 듯
지루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우리는 정력과 열정을 투자해 소유를 추구한다.
- 소유는 우리에게 일시적인 지향점과 의미를 제공한다.
우리는 그 뒤를 뒤쫓는 스릴을 만끽한다.
우리가 마침내 그것을 얻었을 때,
그것은 정상에 다다른 것 겉은 순간적인 충족감을 주지만,
그러나 곧이어 산중에 흩어지는 메아리처럼 공허한 감정이 엄습해 온다.
소유욕에서 비롯된 스릴은 손에 들어오자마자
눈이 녹듯이 차갑게 식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뒤쫓기를 시작하게 된다.
새로운 목표물에 대한 환상을 가짐으로써,
그리고 그 반복되는 싸이클은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계속된다.
점차적으로 우리 삶은 우리가 갈구해왔던 물건들의 형상으로 가득 찬다.
우리는 소유물이 많아지는 데에 따라 그에 비해
자기 자신의 삶의 비중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우리는그 소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그것들을 유지하고 도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 요구된다.
우리는 그것들을 나누어 줄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결코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낡고 쓸모없어질때는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기 시작한다.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소유물들은
우리의 정신을 온통 자신들을 향해 쏟도록만든다.
그런데 우리가 한동안 어떤 물건을 소유한 뒤에는,
그것들이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곤란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우리는 어느날 아침 눈을 뜨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렇지만 던져버릴 수도 없는 것이
온통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들은 우리의 보금자리 주변에 굴러와 박힌 돌처럼 삶에서 습관화된다.
우리의 자유는 사라졌다.
그것들이 사라져버린 곳엔 책임과 소유감만이 남는다.
사실상 우리는 흩뜨려진 자기 재산의 관장자가 될뿐이다.
우리는 자유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것들은 자유가 아니었다.
우리의 환상의 날개는 무기력으로 변해버린다.
우리의 삶은 육체적인 감각만을 개발해왔기에 돌처럼 땅에 속박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약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삶을 원치 않는다면,
혹은 지고한 금욕주의 사상에 삶을 헌신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소유의 환상에 사로잡힌 것보다
더 깨끗하거나 현명한 삶을 만들어 주지 못하리란 것은 분명하다.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은 단지 우리가
빈곤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도록 만들뿐이며,
그것이 결코 소유욕에 대한 강박 관념보다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자기연민에 찬 빈곤함도 혹은 부유함도 모두 갖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길이다.
어떻든, 우리는 소유물의 가치에 대한 올바른 척도를 발견할 필요가 있단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의 올바른 가치를 부인하지 않고도,
우리 자신을 그것들의 무게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시험법이 있다.
그소유물이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베풀 수 있게 하는가?
그물건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이
현재 내 삶의 전망과 일의 전망을 더 높이 끌어올리게 하는가?
그러나 이 시험법은 그렇게 간단 명료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의 양심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척도를 만들어 세상에 도입하려는 노력은
그 의도가 비록 고귀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기에
간단 명료하지 않다는 것이 절대적인 흠이 되지는 않는다.
가령 젊은 피부를 유지하도록 해주는 어느 성형외과의사가
조용하고 안락한 메르세데츠 승용차를 몰기 때문에
그의 직무를 보다 더 잘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다른 사람을 위해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복잡한 거리의 한쪽귀퉁이에서 굶주린 위장을 채우기 위해
손을 벌리고 앉아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을게 무엇인가?
단지 지구상의 자원을 너무 낭비하는 의사의 과소비에 초점을 맞추어
좀 덜 비싼 차를 탈 것을 요구하면서도
왜 그의 기술과 능력을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초점을 맞추지 않는가?
물론 메르세데츠를 타는 의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결코 베푸는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거리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세계에서는 지금의 나의 삶의 방식에도
역시 똑같은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세계라면, 아마도 우리는 더 명백하게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테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셰계는 그만큼 완전하지는 않다.
따라서 우리 각각은 우리의 재능과 삶의 번영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희망,
그리고 주변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것을 허락할 자애와
자신의 안락을 위한 탐욕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메르세데츠를 타는 그 의사의 동기는
아마도 순수하지 않거나 이타주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아마 사람들의 눈에 띄는 차를 타고 싶어했을 터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성공의 상징이고 심지어 그를
직무에 전념하도록 만드는 동기를 부여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주위에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을 위한 배려와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도록 처신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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