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세우신 천국 (마5:1-12)
본문은
불신자들도
매우 좋아하고 애용하는 구절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법은 없다.
그러므로 그만큼
본문이 잘못 해석되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잘못 해석되어지는
성경 가운데 하나가
구약의 잠언이나 전도서와 같은
지혜서일 것이다.
특히
잠언서를 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극히 경험적인 방법으로
모든 삶의 영역의 문제들을
권면하는 방식으로 묘사되어있다.
그것은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 시점이
다윗과 솔로몬 때이고
특히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어서
하나님의 지혜가 솔로몬 안에 있어서
모든 만물을 분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판단하며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방인들에게까지 가르치는
지혜의 왕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시점에서 기록된
지혜문인 잠언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백성 안에서 활동하고
완성되어진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1.구약에서 세워졌던 하나님 나라.
본문에서는
매 항목마다
"복이 있나니"라고 말하고
3절과 10절에서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라는 말이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주님이 언급하시는 천국이란
어떤 천국을 말하는가?
본문에서
주님이 언급하시는 천국은
갈릴리 산에서
제자들을 통하여 세우신 천국을 말한다.
예수님이
본문에서 언급하시는 천국은
죽은 뒤에 가는 천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앞에 나아온 제자들이
하늘에 계신 분의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의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친히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
세우신 천국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는
이 천국에 대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아들을 보내셨는데
이제 그 아들을 통하여
이전에 모세와 다윗을 통하여
가나안땅에 세웠던 나라가 아니라
아들을 통해서 세우시는
하늘에 속한 나라를 가리키고 있으며
이 나라를 세우실 분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에 자신의 나라를 세우셨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은
휘장으로 자신을 가리우시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셨으며
자신의 대리자인 모세를 통하여
자기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나라를 세우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지만
그 나라는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이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온전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땅 위에 세워진 나라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친히 성전 가운데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면서도
모세와 다윗, 그리고
그 후손왕들을 통하여
다스리는 나라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이었고
대리왕들이었다.
이것이 구약에서
하나님이
가나안에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우셨던 천국이었다.
이처럼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중보자를 통하여
가나안땅에 천국을 세우셨다.
그러나
중보자들인 모세나 다윗은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종의 신분이었다.
또한 그들은
아담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휘장 밖에 위치있었고
하나님은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이러한 대리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통치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휘장 밖
곧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매여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온전한 영광의 빛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죄와 사망으로 말미암은
원수된 휘장의 가리움 가운데 있었고
온전한 중보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어린아이의 순종일 뿐이었다.
이것이 구약의 천국이었다.
2.예수께서 세우신 천국
이제
예루살렘성전에서
휘장으로 가리우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친히 임마누엘하셔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러 오셨다.
그는
이방인까지라도 경배할 하나님이며
그는
친히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시험을 받으실 때에
온전히 아버지께 순종하셔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친 분이셨다.
이 분은
모세나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머슴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여 계셨던
하늘에 속한 왕이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온전한 왕으로서
그 나라를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대리왕을 통해서가 아니라
친히 "복되도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천국을 선물하시는 하나님으로서
그 나라를 세우셨다고
마태는 증거하고 있다.
또한
마태복음의 강조점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하여
가나안에 세웠던 그 나라를
어떻게 하늘에 속한 나라로
완성하시는가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제자들을
옛 언약백성의 토대로서
열둘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 사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마태복음은
옛 언약의 완성으로 예수님을 증거하기 때문에
출애굽기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산이 강조되어 있다.
출애굽에서
하나님은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세와 아론을 부르셨고
칠십인의 장로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산으로 올라오게 하셨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밑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이 산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나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의 제자들과 무리들은
나누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모세가
시내산 위에 올라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로서 나아갔으며
아론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제사장으로
그리고 백성의 대표자로 나아간 것처럼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왔을 때에도
무리를 대표하는 제자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을 새로운 이스라엘의 토대로
그들을 대면하셔서
"복되도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라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 무리들 가운데 그의 나라를 세우신 것이다.
예수님이 세우신 나라는
은혜와 권능의 나라이다.
주님은 귀신을 쫓아 내셨고
모든 병자와 연약한 것들을 고치셨다.
예수님은 거기에 임해 계셔서
자신이 치료해준 백성들
즉 구약의 남은 자들에게
"복되도다 천국이 너희 것임이니라"고
그 나라를 선물하고 계신다.
마치
시내산에 강림하신 하나님께서
수르광야에서
그의 권능을 행하셔서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하시고
하늘의 만나와 반석의 물을 공급하셔서
자기 백성의 생명을 치료하신 하나님이심과
생명의 풍요함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으로
말씀하시고 나타내신 것처럼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그 권능의 나라를 세우셨는데
그 권능의 나라는 복음의 나라이며
자기 백성들의 귀신을 쫓아내고
연약함을 치료하셔서
생명을 새롭게 하는
권능의 나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나라는
남은 자들에게 약속하신 복된 나라이다.
본문의
"심령이 가난하다. 애통하는 자여. 온유하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등의 말들은
구약의 남은 자들에 대한
특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이었지만
범죄하여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고
그들은 이방땅에서 울었으며 비천하게 되었다.
그리고 핍박을 받으며 살았다.
당시에도
이방인인 헤롯과 로마의 치리하에 있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망하였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자신과 함께 하는
하늘에 속한 나라를 선물하시기 위하여
조상들의 약속을 따라 아들을 보내셨다.
이처럼
남은 자들에게
복된 나라가 아들을 통하여
주어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승리하신 나라,
원수를 영원히 정복하고
자기 백성과 함께하는 나라를 세우시려고
가나안에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와
백성들의 연약함을 고치시며 말씀하시기를
"복되도다.
이 은혜와 권세의 나라가
내게 나아온 너희 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우신 나라는
윤리적인 성격이 그 나라의 특성이다.
옛 언약 백성에게는
돌판에 새겨진 언약의 법을 주셔서
자신과 함께 동행하도록 하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은
그 나라를 넘어서는
새로운 나라를 선물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말씀하심으로
모세를 넘어서는 윤리적인 새로운 나라,
어린아이이며 종의 나라인
모세의 나라가 아닌
아들의 나라이며
자유하는 하늘에 속한 나라를 세우시는 왕으로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셔서
새로운 윤리적 나라를 세우시고 계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심을 통하여
이제는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셨다.
모세의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완성하신 것이 아니라
모세보다 더 높은 나라,
어린아이가 아니라 장성한 나라,
휘장으로 가리운 나라가 아니라
친히 자기 백성을 대면하고 말씀하시는
영광스런 나라를 설립하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핍박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 핍박은 구약의 선지자들도 받았던 것이다.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면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도
이러한 핍박을 받았으니
너희들도 기뻐하라고 하신다.
마태복음 10장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더욱 발전되어서
"네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리라"고 하신다.
심지어
자기 생명을 포기하고 나를 따르면
천국이 너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예수님은
그의 부활하심을 통하여
그 나라를 온전케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유대에 세우신 나라도
온전히 승리된 나라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하신 후에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셨지만
그것은 완성된 승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된 진노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셔서
다시는 죽음에 매일 수 없는 승리의 주님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처럼
죽음 아래에서도 찬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이
영원히 교회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현재 교회의 가장 큰 핍박이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의 햇볕정책이다.
경제문제가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장벽과
나라간의 국경을 허문 것 처럼
교회 내에도
이러한 세상적 가치관과 흐름이
살며시 들어와서 우리 가운데 만연해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그대가 참으로
주님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늘의 속한 백성으로서,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이 걸으셨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고난과 핍박을 각오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하는
이러한 것들 때문에
사람 앞에서
예수의 이름을 시인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몸을 주신 아들을 거역하고
살 길이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배교는
다시금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제자들의 배교도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그리고 성령의 오심으로
다시금 치료받을 수 있었으나
그 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다시금 용서받을 길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 생명의 주님을 사랑하여
그와 교제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