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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사원 모집 공고를 낼 때 응시 자격을 기재 합니다. 대기업일수록 응시 자격은 더 까다로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졸이어야 하고 토익이 몇점이어야 하고 사회봉사 활동을 얼마 해야 되고 등등 이외에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사원모집 공고에 응시자격을 기재하는 것은 이런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회사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응시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아예 응시 자체를 못합니다.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조직들은 그 나름대로 구성원들이 갖추어야 하는 조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나이 상관없습니다. 경력 상관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좀 못 배워도 괜찮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가지는 것은 어떠한 자격이 필요 없습니다. 똑똑한 사람만 믿음을 가지라는 법이 없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조직폭력배라고 해도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거지도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은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후서3:2에 보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실제로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창조하셨다. 홍해가 갈라졌다.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려왔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재단을 불살랐다. 사람이 산채로 들림을 받았다.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이외에도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져야 믿는 것입니다.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오늘 읽은 히브리서11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믿음장입니다. 믿음의 용사들이 믿음과 행함의 일치로 승리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선진들처럼 인생을 믿음으로 직면하여 승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준, 곧 우리가 인생을 직면하기 위해 가져야 할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3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내가 볼 수 없을 때도 믿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11장 1절 말씀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여기서 ‘실상’은 원어적으로 보면 ‘아래에 서 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사건이 실제로 존재한다거나, 혹은 장래에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발판을 지니고 서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견고히 서 있을 수 있도록 하는 확고한 발판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단순히 동의하는 그 이상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함에 의해 반드시 성취될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것에 대한 너무도 큰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미 이뤄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미래에 성취될 일을 현재의 시점에서 이뤄진 것으로 확신하며 그것을 누리며 살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우리의 기대와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성경학자이자 주석가인 매튜 헨리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확고한 확신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모두 성취할 것임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확신은 너무 강하기 때문에 바라는 것을 이미 소유된 것으로 여기며 실제로 보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믿음의 행위 속에 있는 성도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가득차 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바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소망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24-25절에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바울은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보이지 않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참고 기다린다고 말씀합니다. 비록 경험하지 못하고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소망합니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될 것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고 내 손을 창에 찔린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8일 후에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나타나셨고 주님은 그에게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절)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9)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막에 강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신 능치 못함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미래를 믿는 것입니다. 볼 수 없지만 보는 것 같이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볼 수 없지만 보는 것 같이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봐야 믿는 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반대로 믿어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록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일상생활에 생동감이 넘치고 생명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내가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읽은 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지었음을 한탄하시면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나는 물로 세상을 멸하고자 한다. 너는 방주를 지어라” 노아 살고 있던 세상은 창조 이래 한 번도 비가 온 적이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또한 노아는 배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작은 배도 한 번 만들어 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축구장 만한 방주를 그것도 한 층이 아니라 삼층으로 만들라고 하십니다. 혈육이 있는 모든 생물들, 새들, 가축들 암수 한쌍씩 해서 방주에 함께 실어 생명을 보존하라고 하십니다. 뿐만아니라 노아와 모든 생물들이 먹을 양식을 저축하라고 하십니다. 노아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일이 너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일에 압사 당하겠다’라는 표현을 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런 마음일 것이라는 인간적인 생각이 드는데요. 성경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창6:22절 말씀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다 이해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지었습니다. 말이 120년이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기간입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격려와 도움 속에 방주가 지어져 갔다면 그래도 좀 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은 세상에 그 오랜 시간 방주를 짓는 노아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노인네가 망령이 들었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꿋꿋하게 누가 뭐라고 하든지 방주를 지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함께 방주에 들어가자고 권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확신하고도 단 하루를 넘기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내일 세상 가운데 부딪치는 환경과 사람들, 나의 감정과 기분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한 달도 아닌 일년도 아닌 50년도 아닌 120년 동안을 마른 땅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8절에서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는 75세였습니다. 그 나이는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에 머물러 있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안전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갈지를 가르쳐 주시지도 않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는데도 그냥 떠나는 것입니다. 10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한 아들인 이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 마저 하나님께서는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또 순종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창19:4절 말씀입니다.“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롯의 사위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소돔과 고모라 성을 떠나지 않아서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하나님으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순종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이 아닌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볼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손해 볼 것 같습니다.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입장에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손해 보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더 힘들게 하시려고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노아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순종한 사람들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이해되지 않은 말씀을 하셔도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입니다.

 

​세 번째로 내가 아직 얻지 못했을 때에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히브리서 11장 35-40절 까지 말씀을 보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믿음의 선조에 대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심한 고문을 당하였지만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돌로 맞고 톱으로 켜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사자굴에 던져져서 사자의 밥이 되기도 했고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주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도 했습니다. 이 믿음의 선조들에 대해 히브리서 11:3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 말씀을 새번역성경으로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곧 이들은 비록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것을 살아생전에 보지 못하고 받지 못하였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받지 못해서 실망하고 계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더 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우리가 얻지 못하였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언제나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기도를 이루어주지 않으시면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응답도 응답입니다.

 

​야고보사도는 우리가 정욕으로 구하면 얻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을 때 오히려 그것이 해가 된다고 생각하시면 기도에 응답해주시 않는 경우도 있으십니다. 또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십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한대로 얻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 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믿었고 아무도 보지 못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하고 광야생활의 그 험난한 과정속에서 인내했고 견뎠지만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느보산위에서 그저 멀리 바라만 볼 수 있었을 뿐 그렇게도 들어가고 싶었던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태복음 17장에서 모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곳에서 주님의 영광은 온 산을 가득 비추었고 그 영광의 자리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하였습니다. 비록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지만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그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었고 하나님과 함께 언제나 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55:8-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길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높고 넓고 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우리가 원하는 길보다 바르고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일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을지라도,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는데 응답받지 못한 것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이 계획하신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으십니까?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데 여전히 어려움가운데 있으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속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히브기서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사도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것은 믿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서 믿음으로 인생을 직면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처럼 내가 볼 수 없을 때도 믿어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얻지 못했을 때도 끝까지 신뢰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직면하므로 승리하는 인생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믿음으로 인생을 직면하라. (히11:1-12절)|작성자 아름다운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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