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님이 쓰신 ‘사람이 선물이다’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생각은 현실의 씨앗입니다. 절망은 희망의 뿌리입니다. 실패는 기회의 줄기입니다. 한계는 비전의 잎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면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그 꽃마저 져야 열매를 맺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지금 저희 교회 화단에 보면 다양한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꽃들을 한 번씩 쳐다보고 갑니다. 어떤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와서 사진도 찍고 아이에게 꽃에 대한 설명도 해줍니다. 꽃은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이끕니다. 우리는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주로 꽃을 많이 선물을 합니다. 사랑을 고백할 때도 꽃을 선물합니다. 그 이유는 꽃 자체가 기쁨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꽃에는 향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꽃은 열매를 위한 과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꽃은 결국 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꽃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비유를 말씀 하고 계십니다. 포도원주인이 포도원에 무화과를 먹고 싶어서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원지기에게 무화과나무를 잘 돌보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무화과나무는 심은 그해에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3-4년은 기다려야 열매를 맺습니다. 따라서 포도원주인은 곧바로 무화과열매를 찾은 것이 아니라 3-4년이 지난 이후에 무화과나무에게 와서 열매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 와 보았는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포도원주인은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 하고 1년을 더 기다립니다. 1년이 지났는데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포도원주인은 3년을 기다렸지만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3년이 지난이후에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 지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눅13:7) 포도원 주인의 이러한 조치는 당연한 조치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화과나무에게 포도원주인이 요구한 것은 무화과열매였습니다. 주인이 요구한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땅의 자양분만 흡수하는 무화과나무는 주위의 나무들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에 당연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백성들입니다. 그리고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여 이방인들과는 비교 할 수 없는 넘치는 은혜를 베푸시고 그에 합당한 신앙의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직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문의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실로 준엄한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백성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영적이스라엘인 우리에게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은 합당한 요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포도원지기가 포도원의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잘 돌보라고 했을 때 얼마나 열심히 돌보았겠습니까?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무화과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여건들을 만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아무런 수고 없이 포도원 주인이 무조건 열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신 것이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가운데 알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결국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를 맺어 드려야 합니다.
무화과나무비유의 말씀은 달란트 비유와도 연결이 됩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주인은 멀리 타국으로 그냥 떠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재능에 맞게끔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결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를 맡겨주셨습니다. 아무것도 주시지 않고 우리에게 결산하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맡겨 주신대로 결산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어버림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한 달란트 맡은 자는 맡은 달란트대로 열매를 맺지 못해서 주인에게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던 한 달란트마저도 빼앗겼고 바깥 어두운 데 내 쫓김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되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가지고 살아서도 안 됩니다. 나만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봄에 씨를 뿌렸다고 곧바로 열매를 맺기기를 기대하는 농부는 없습니다. 철학자는 에픽테토스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떠한 일도 갑자기 이뤄지지 않는다. 한 알의 과실, 한 송이의 꽃도 한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나무의 열매조차 금방 맺히지 않는데 하물며 인생의 열매를 노력도 하지 않고 조급하게 기다리는 것은 잘못이다.” 나무의 열매들이 그냥 맺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열매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요15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요15:4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양을 공급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가지 자체가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튼튼한 가지라고 할지라도 가지자체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포도나무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야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당장 보면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영양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말라비틀어지고 맙니다. 말라비틀어진 가지는 아무것에도 쓸데가 없습니다. 단지 땔감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가지인 우리는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떨어져 있으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요한복음15:5절에 보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다는 것은 곧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안에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내 안에 주님이 거한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게 보여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하와를 만들어서 아담에게로 인도해주십니다. 하와를 본 아담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내 안에 너 있다" 는 말입니다. 예전에 드라마 ‘다모’에서 이서진이 칼에 맞은 하지원를 치료해 주면서 ‘아프냐?’라고 묻습니다. 하지원 ‘예’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이서진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도 아프다’ 우리가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내안에 들어와 있어서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이 내 안에 거한 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생각으로 꽉 차서 앉으나 서나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삶이 될 때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어떤 정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동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곧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결국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 말씀이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순종해 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말씀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열매라고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것을 많이 생각합니다. 어떤 성과를 이루고 큰일을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사람들 보기에 화려한 것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열매는 변화입니다. 예수께 붙어있으므로 맺는 진정한 열매는 나의 삶의 변화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변화된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이 변화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변화됩니다. 이것이 열매입니다. 내가 예수님께 붙어 있다고 말하면서도 내 삶 가운데 열매가 없다면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실제로는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가 붙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대로 붙어있으면 당연히 열매를 맺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맺어야 할 열매 중에 하나가 회개의 합당한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본 대로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말씀이후에 무화과 나무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문맥상으로 볼 때 우리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서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외친 것이 아닙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쳤습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말이 무슨 의미 입니까? 곧 잘못했다고 회개 했으면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 뿐인 회개가 아니라 행동하는 회개를 하라는 것입니다. 회개 했으면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뿐인 회개가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요. 포도원지기의 모습입니다. 포도원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했을 때 포도원 지기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포도원지기는 주인에게 한 해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도록 다시 한 번 거름도 주고 잘 보살피겠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실 것을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요 예수님도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인내에 한계가 있음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끝이라고 말씀하시면 더 이상 기회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되는 대로 살아서 안 됩니다. 나의 유익만을 쫓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보여드려야 합니다. 열매 맺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열매 맺는 삶을 살므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누가복음 13장 말씀묵상] 하나님은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6-9절)|작성자 아름다운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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