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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미워하는 것도 관심이 있으니까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가끔씩 매스컴을 통해서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생명을 잃는 사람을 보게 돕니다. 또는 무관심으로 인해 이웃집의 사람이 죽은 지가 한 참 지난 다음에 시체를 발견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그런 분들은 어떻게 보면 이웃에 버림당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당하는 비참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당한 아픔은 깊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버림당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비참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잘못을 했을 경우 매를 들어서라도 바른 길 가게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그냥 버려둡니다. 무관심입니다. 하나님의 무관심, 버려두심이 인간에게는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자들입니다. 곧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숭배하고 섬기는 자는 마음의 정욕대로 행하도록 내버려두시겠다는 것입니다. 내버려 두셨다는 표현을 24절 뿐만이 아니라 26절에서도 28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내버려 두신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인간입장에서 마치 자유를 부여받은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을 허락받은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재앙인 것입니다. 그 자유는 하나님의 무관심이기 때문입니다.

25장에서 열처녀 비유를 보면 10명의 처녀가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5명의 슬기로운 처녀는 기름과 등을 함께 준비하였는데 5명의 어리석은 처녀는 등만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어리석은 5처녀는 신랑이 제 시간에 올줄 알고 그 때까지는 기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랑이 오기로 약속된 시간보다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신랑이 온다고 맞이하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문제가 없었지만 어리석은 다섯처녀는 신랑이 늦게 오는 바람에 기름이 없어 등불이 꺼지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다섯처녀는 기름을 사기위해 가고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와서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혼인잔치집의 문은 닫힙니다. 기름을 구해 늦게 혼인집에 도착한 다섯처녀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신랑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어떻게 신랑이 이럴 수가 있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다섯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을 뿐 동일하게 신랑을 기다렸던 처녀들입니다. 그런데 신랑은 너희를 알지못한다고 말합니다. 곧 버림당한 것입니다. 버림당함이라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버림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열처녀의 비유는요.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가운데 일어나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그래도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지옥가니까 그래도 낫습니다. 하지만 자기는 예수를 믿는 다고 교회는 다녔는데 결국 주님께로부터 버림당한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4:40-41에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일어날 일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둘 중에 한 사람을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이야 얼마나 감격스럽게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버려둠을 당한 사람은 얼마나 비참하고 후회스럽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버림당하는 말씀을 해주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미리 알려주시는 것은 대비하라고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지 말라고 우리에게 미리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좀 무시를 당하고 버림을 당하는 것을 그래도 괜찮습니다. 또 다른 길을 모색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버림을 당하면 다른 길이 없습니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가운데 살아가면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그러니까 시대가 그러니까 대충 대충 흘러가는데로 신앙생활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큰 일 납니다.

예수이 재림하실날은 도적과 같이 온다고 말씀했습니다. 도둑은 예고하고 도둑질 하지 않습니다. 영화에나 예고하고 도둑질 하지 결코 예고하지 않고 아무도 생각지 못한 시간에 찾아옵니다. 주님의 날이 도둑같이 온다면 깨어있지 않으면 주님을 제대로 맞이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평소에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주님을 맞이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평소에 자신의 믿음을 늘 점검하고 주님을 잘 섬김으로 버림당하는 인생이 아니라 데려감을 당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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