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4. - 켄트 너번
정승현 옮김
발행처: 한마음사
2. 사내와 남자
나의 아버지는 결코 나보다 특출한 남자이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남자가 아니셨다.
그분의 업적에 대하여 쓰여진 글같은 건 세상에 한 번도 소개된 적이없다.
그렇지만 그 분은 매우 훌륭한 남자란다.
그분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남을 속여 잇속을 챙기거나 한 일이 결코 없었고,
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친절하게 대할 준비를 하고 계셨단다.
나는 지난 십 년 동안 삶에 흥미를 점차 잃어가는 그분을 지켜봐 왔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결코 불행하지는 않으셨다.
불행이란 말은 그분과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지금 그분은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느낌을 상실하였고
그 때문에 삶에서 흥미를 잃고 쇠잔해지셨다.
그분에게 맨 처음 찾아온 상실감은 직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나서 그분의 강인한 육체와 땅위의 모든 존재에 대해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시던 유용한 감각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건 핏줄로 이어진 가족들에게는 매우 슬픈 일이란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그분을 사랑하고 있고 존경하고 있으며
아버지로서 여전히 진심을 다해 받들고 있다.
그렇지만 당신 자신은 더이상 스스로를 사랑하거나, 높이거나, 존경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그분이 살아온 세계와 그분의 육체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분을 배신했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그토록 강인했던 한 남자가 어느날 한 순간에 나약해질 수 있는지?
삶의 지평이 그분 앞에서 여전히 무한하게 펼쳐져 있는데도 왜 살려는 노력을 포기해야만 했는지?
난 그분이 다른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이상 하나의 남자로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삶을 포기했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단다.
내 아버지께선 당신이 이루어야만 한다고 말씀해 오셨던 남자의 상을 -
가장 빛나고, 가장 강하고, 가장 많이 벌고, 가장 적게 쓰는 -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럭을 다하셨다.
그리고 지금껏 그것을 무척 잘 해내셨다.
아마도 그분이 희망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열여섯 살이될 때까지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만 했던 외톨박이 소년이었기 때문에
자기자신이 희망했던 것 이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게다.
그분은 자수성가하여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굳건한 지위를 찾았고,
명예와 존엄과 보살핌으로써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정성을 다해 가꾸셨다.
그렇게 작은 일의 성취들조차도 매우 가치있는 것이라고 나를 일깨워주시던
그분의 마음속에서, 도대체 어떤 것이 지금의 무기력에 빠지게 했을까?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무에서 시작해서 그렇게 많은 것을 성취한 그분이,
왜 자신의 성년이 이미 지나갔다고 느껴야만 하는가?
그 대답은 듣기 싫지만 명백한 것이다.
그건 그분이 사내와 남자사이의 의미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셨기 때문이란다.
사내라는 존재는 우리를 신체적인 특징으로 표현하는 측면이 있다.
그건 강인함, 통제력, 자기영역, 경제력, 그리고 지배와 경쟁이
인간 생존의 열쇠였던 시대에 필수적인 많은 관습들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남자라는 존재는 이와는 구별되는 다른 특징을 표현하는 것이다.
남자라는 것은 너를 둘러싼 세상의 요구들과 마주하는 삶 속에서
신체적으로 사내의 몸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임과 동시에
한 편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필요에 부응하는 모습을 형성시켜 가는 것이다.
그건 사람들에게 꿈을 전하는 활동이다.
그건 믿음의 땅에 기초하는 한편, 별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란다.
나의 아버지가 태어났던 세계는 사내라는 자연적 본성으로부터 분리된
자신의 남자다움을 찾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단지 생존의 과제로 인해 남자들에게는 오직 공격과 경쟁의 힘과 육체적 강함만이 요구되었다.
그분은 지독히 가난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의 아버지는 일찌기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도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그분은 대공황의 파도 속으로 홀홀단신 내던져 졌다.
먹고 살기 위해선 일해야만 했고, 일하기 위해선 강해야만 했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후에는 나치즘과 파시즘이 세계무대에 등장했고,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항해 무기를 들 것을 강요당해야 했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완전히 빈털털이로 돌아왔고, 전혀 새로와진
사회적, 경제적 여건 속에서 가족들을 보살피기 위한 보금자리를 다시 개척해야만 하셨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분은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경시당하는
풍조 속에서 승리자가 되어야만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세계를 살아왔단다.
그러므로 성년에 대한 그분의 생각이 그토록 남성 우월주의와
지배의 감성에 젖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못된다.
이제는 그분의 신체가 그분을 쇠퇴시킴으로써
남성 우월주의와 지배의 감성은 의존의 감성으로 바뀌었다.
그분은 삶의 덧없음과 무의미함만을 느낄뿐이다.
직업의 상실과 육체적 힘의 상실, 성적 능력의 상실,
그리고 주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은 그분의 성년의 상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그분의 모습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이런 모습은 몇가지 중요한 점들을 망각하고 계신 거란다.
나는 그분의 아들로서 그분의 사실적인 남자다움을 보았었다.
화재와 홍수로 하루 아침에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여러 날동안 밤을 꼬박 새우며 보내시던 그분의 모습.
당신의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기 위해 평소보다 두배 세배씩 일하시던 모습.
아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먼 길을 새벽부터 걸어 차비를 아끼시며
용돈을 절약하시던 눈물겨운 내핍생활.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 하시면서 허름한 옷을 입고
식탁에서는 수저도 들지 않고 밖에서 먹었노라며
우리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그분을 보았다.
나는, 남자다운 힘을 가지고 그 힘을 남들을 돌보는 일과
서로 나누는 일에쏟아붓던 그분을 보았다.
그 무엇도 나의 눈에 비친 그분의 남자다움을 손상시킬 수는 없을 게다.
그분은 좋은 사람이셨다.
작은 일에서도 그분은 매우 큰사람이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신 스스로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신다.
그분은 남자답다는 것이 단지 사내답다는 것을 의미했던 시대를 살아오셨고,
그런 기준으로 당신 스스로를 판단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너는 다른 세계, 다른 재능과 다른 도전들을 제공하는 세계에서 태어났다.
남자다움의 새로운 전망은, 우리 사내들의 특징인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잔여물들에 그리 얽매이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너는 강인함을 포현하는 데서, 지배럭을 보이는 데서, 용기를 나타내는 데서,
과거와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기 위해 모색할 필요가 있다.
너는 세계를, 네 앞에 싸우고 지배해야 할 적으로 서게 하지 않고도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넓은 범위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네 스스로가 그런 방식들을 발견해야만 한단다.
과거에는 성년으로 소년을 이끌어가는 통과의 의식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눔이 필요한 지혜와 책임감을 갖고 그곳을 통과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런 의식행위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성년으로 인도되지 않는다.
다만 어느날 갑자기 그곳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우리 신체가 우리에게 그곳에 도달했음을 알릴때, 거기엔 욕망과 갈망,
그리고 아무리 채우려 해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욕구들이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으로 얼룩진 그런 성년은 단지
우리의 사내가 만개 하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내로서의 욕망에 이끌린 활동이 인간사회의 도덕적 가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을 때, 그런 행위는 세상에 해를끼치기만 할 뿐이다.
나는 네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점에 대해 명확히 구별하길 바란단다.
사내가 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남자가 되어야 한다.
남자라는 존재는 반드시 획득되어야만 하는 권리이며 소중하게 길러지는 명예란다.
나는 너에게 그 권리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와
과연 그 명예는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단지 남자답게 되는 것은 반드시, 네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의 상에
뒤따르는 양심적 활동을 통해 이룩되어야 한다는 정도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네가 스스로 그려낸 그러한 남자의 전망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동안에도,
사내로서의 본성적인 메아리가 항상 너를 유혹할 것이다.
경쟁, 지배, 커다란성적 자극, 그리고 채워질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는 욕망이
항상 너에게 본능에 따라 행동하라고 속삭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그런 욕구들을극복하여 건전하고 올바르게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사내의 자연적 속성들은 남자의 진실한 척도, 즉
강인함과 명예와 도덕적 힘, 용기, 희생, 그리고 자신감으로 전환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식으로 너의 사내로서의 특징들을 인식하거라.
그것들을 축복하거라. 그것들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거라.
그리고너의 주변 세계의 기대와 요청에 응답하는 진실한 남자다움으로 전화시키거라.
그러나 그것들이 결코 너를 압도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는 말 것이며,
사내다움과 남자다움을 절대로 혼동하지 말고 네 자신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너 자신만의 고유한 남성다움을 성취하도록 하거라.
무엇보다도, 지배와 파괴가 남자다움과 동의어라는 거짓된 믿음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나의 아버지처럼 되거라.
자신이 태어난 세대의 집사로서 세상에 봉사하는 그런 남자가 되거라.
그리고 결코 다른 사람을 해치는데 자신의 손을 기꺼이 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네가 도달할 수 있는 거리,
그리고 네가 도달할 수 있는 지위로써 너의 위대함의 척도를 삼거라.
오늘 날의 세계는 지배하는 손이 아니라 사랑하는 손을 필요로 한단다.
네 손을 항상 그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속에 있도록 하거라.
'좋은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6. - 켄트 너번 (0) | 2018.03.18 |
---|---|
[스크랩]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5. - 켄트 너번 (0) | 2018.03.18 |
[스크랩]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3. - 켄트 너번 (0) | 2018.03.18 |
[스크랩]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2. - 켄트 너번 (0) | 2018.03.18 |
[스크랩]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 - 켄트 너번 1 (0) | 2018.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