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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날 사무엘상 8장을 놓고 묵상하였는데 오늘 예전에 썼던 이 글이 생각났습니다.
읽어보니 묵상한 내용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았습니다. ^^*


하나님의 법 안에서 자유하고 싶다../ 카타리나

사람들은 법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있음에도......

어찌보면 사람들은 어딘가에 예속되고 누군가에 의해 다스림을 받아야 불안함을
씻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이 늙음에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 줄 것을 간청합니다.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사무엘8:5)
 
그런데 하나님과 사무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지도 신뢰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사무엘8:6~7)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하나님 보다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왕을 더 원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사무엘상12:20)

지금도 우리는 똑같은 악을 행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할 것과 세상의 왕이 구원시키지 못함을 아시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한 3:17)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면 영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에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되며 그 진리가 자유케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과(마태 4:4)
하나님을 시험치 말 것과(마태 4:7)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하나님만을 섬길 것과
(마태4:10)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과(마태 5:16) 율법과 기도하는 방법등...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지 아주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게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14:21)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한15:10)

이와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도움 없이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음을 아시고 우리를 보호해주실 보혜사 성령을 우리게 보내 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한14:16~17)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한 16:13)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3~4)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마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로마서8:11)

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살면 굳이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법이나 교회법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우리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하고 살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하나님의 법을 지켜 나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8:31~32)

그러나 사람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보다는 사람의 계명을 만들어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종국엔 하나님의 법은 변질되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계명이 하나님 법인양 행세하게 되는 것입니다.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여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사무엘12:21)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선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태15:8~9)

나는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교회법을 많이 만들어 성도들의 믿음 성장을 돕기보다는
주님의 말씀만을 가지고 믿음 성장을 도와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여 바른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디모데전서6:3~5)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은 교회법이 없어도 그것을 지켜나갑니다.

나는 카페을 운영하면서 이와 비슷한 일을 경험합니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카페의 취지에 맞지 않는 글을 올린다거나 자료만 퍼간다든가
아니면 자주 방문하지 않는 등.. 운영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있게 되면 회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세워 카페들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하여 제재를 가합니다.
그리곤 카페 운영의 처음 취지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운영자 욕심이나 회원수 늘리기에
급급해합니다.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종교 카페마저 이렇게 변해가는 것을 볼 때입니다.
규칙을 정한다고 그러던 사람들이 달라질까요?
물론 몇 명은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규칙이 싫어서 우수회원이던 사람이
탈퇴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법이 싫어서 교회를 떠나거나 아예 믿음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종교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첫째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 일겝니다.
종교카페에서 신상을 공개하고 안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요?
세상에서처럼 지연과 학연과 혈연과 종교등을 따져서 무슨 유익이 있다고...
악이 무서워 담대히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꼴이 아닐런지요?

종교카페만이라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복음을 접할 수 있고 사랑과 기쁨을 함께 하며 슬픔과 아픔을
나누며 위로 받을 수 있게 말입니다.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신상을 공개하던 안하던 규칙을 정하던
정하지 않던 종교를 가지고 있던 없던 그것과는 상관없이 인터넷 예절을 지킵니다.
그들은 자유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랑은 일방통행일 때보다는 쌍방통행일 때가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의 하나됨이니까요.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 17:22)

하지만 짝사랑도 일방적으로 베푸는 사랑도 아름답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 5:46~48)

우리 모두 책임 질 줄 아는 자유함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법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과 평강을 전합니다.
행복하옵소서! ^*^

2003.08.17    -카타리나-


    천상의비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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