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잘 버는 사람들은 돈이 흘러가는 길이 보인다고 말을 합니다. 곧 어디에 투자를 해야 돈을 벌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남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그 패턴을 잘 압니다. 그 패턴을 알기에 남다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보고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무질서하게 두시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이 질서 있게 돌아가도록 수많은 원칙을 세워놓으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뿌린 대로 거두는 원칙입니다. ‘종두득두’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만일 농부가 봄에 씨도 뿌리지 않고 가을에 열매 거두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반드시 뿌린 것이 있어야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원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 원칙을 알면서 요행을 바랄 때가 있습니다. 뿌리지 않고 거두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하나님이 준비하신다고 했는데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실 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뿌린 대로 되돌려 주시기 위해서 준비하십니다. 우리가 행한대로 되돌려 주시기 위해서 준비하십니다.
여러분 부메랑이 아시지요? 부메랑은 원래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이 사용하는 무기중에 하나였다고 합니다. 부메랑은 목표물을 향해 던지면 회전하면서 날아가고 목표물에 안 맞으면 다시 돌아옵니다. 현대는 부메랑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놀이도구로 사용을 합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부메랑을 던져 보신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메랑을 던져 보면 회전을 하면서 앞으로 날아갑니다. 앞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 다시 돌아 올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시점에 가면 다시 방향을 틀어서 돌아옵니다. 부메랑은 이런 매력이 있어서 어린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도 부메랑이라는 사실입니다. 곧 우리의 인생도 내가 한 그대로 되돌아 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때가 되었을 때 정확히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시점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돌아온 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인생이 부메랑이라는 것을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한 그대로 돌려주신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판하지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남을 내가 비판하면 나도 비판을 그대로 받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죄 받는 것이 싫으면 정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남을 정죄하면 나도 똑같이 정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용서받고 싶으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남에게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헤아림을 받고 싶으면 먼저 헤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남을 헤아려 주지 않으면 나도 헤아림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후히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눈에 자기는 비판받지 않으려고 하면서 남을 비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정죄받기 싫어하면서 남을 정죄하는 사람들이 보였던 것입니다. 자기는 용서하지 않으면서 용서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보였던 것입니다. 남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자신은 헤아림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보였던 것입니다. 나누지 않으면서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원칙도 모른 채 이렇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주님보시기에 얼마나 어리석게 보였겠습니까? 자신들이 한 대로 하나님께서 돌려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모른채 살아가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였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다시 한 번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뿌린 대로 거두게 된다는 원칙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마10:41-42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비록 선지자가 아니지만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잘 대접하면 선지자가 받을 상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의인이 아니지만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대접하면 의인이 받아야 할 상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제자의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눅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하는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품도 준비하지 못하게 하시고 길에서 인사도 못하게 하시면서 제일 먼저 하라고 하신 일이 있습니다. 눅10:5-6절 말씀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평안을 빌어주라는 것입니다. 만일 평안을 빌어주었는데 그 가정이 평안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었다면 그 평안은 그대로 그 집에 머물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평안이 다시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부메랑이라면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한 그대로 되돌려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정말 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말부터 잘 해야 합니다.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부정적인 말들을 삼가야 합니다. 오히려 남을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축복된 말을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행동을 잘해야 합니다. 남에게 해가 되고 남을 힘들게 하는 행동을 자제 해야 합니다. 남을 도와주고 남에게 힘을 주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지난주에도 잠깐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요. 결국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남이 아닌 나에게 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주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골3:2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행동을 하듯이 상대가 주님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이 수도원은 많은 지원생으로 활력이 넘치는 수도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원자들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수도원은 활기도 사라지고 삭막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의 원장은 한 나이 많고 존경받는 수도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했습니다. “수도사님 수도원이 지원자도 없고 삭막하기까지 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이 많은 수도사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수도사는 수도원원장에게 귓속말로 한가지 비밀을 말해주겠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원장님 제가 알고 있는 비밀은 지금 수도원에 변장하신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수도원 원장은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면서 과연 예수님이 누구실까? 라는 기대를 가지고 수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원장은 예수님은 분명히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청소하는 사람,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 그뿐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이 혹시 저 사람이 변장한 예수님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대하는데 어떻게 소홀하게 대할 수 있겠습니까? 원장의 이 이야기를 들은 수도원의 식구들도 혹시 만나는 사람이 변장한 예수님이 아닐까, 혹 수도원 원장님이 변장한 예수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낮추고 존경하며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수도원은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기 시작했고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모든 사람을 변장하신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 보면 다른 것은 우리가 하는 대로 그대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는데는 38절에 전반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곧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고 나눌 때는 내가 준만큼이 아니라 후히 되어 누리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곧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나누어주면 손해 보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구제하면 내가 가진 것이 축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후히 누리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잠11:24-2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내 것이라고 움켜잡고 쌓아간다고 부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제하고 나누어 줄 때 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네바다 주 사막 한 복판에서 낡은 트럭을 끌고 가던 '멜빈 다마'라는 한 젊은이가 허름한 차림의 노인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습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타시죠!" "고맙소, 젊은이! 라스베이거스까지 태워줄 수 있겠소?" 어느덧 노인의 목적지에 다다르자, 부랑자 노인이라 생각한 젊은이는 25센트를 노인에게 주면서 "영감님, 차비에 보태세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참 친절한 젊은이로구먼. 명함이나 한 장 주게나!" 젊은이는 무심코 명함을 주었습니다. "멜빈 다마! 이 신세는 꼭 갚겠네. 나는 '하워드 휴즈'라고 하네." 얼마의 세월이 지나 이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무렵 너무나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신문 일면에 [세계적인 부호 '하워드 휴즈' 사망]이라는 기사 떴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와 함께 유언장이 공개되었는데 그 내용중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워드 휴즈가 남긴 유산의 16분의 1을 '멜빈 다마 에게 증여한다"
사람들은 도대체 '멜빈 다마'란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유언장에 멜빈다마에 대해 "일생 동안 살아오면서 만났던 가장 친절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워드 휴즈가 멜빈다마에게 유산을 남겨준 유일한 이유가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워즈 휴즈의 유산 총액이 25억 달러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유산의 16분의1은 최소한 1억 5,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대략 1,600억원이상 되는 돈입니다. 25센트와 친절이 6억배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예전에 어려서 시골 살 때 겨울만 가까이 오면 등장하는 기계가 하나있었습니다. 뻥튀기 기계입니다. 뻥튀기 주위로는 항상 아이들이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혹이나 새어나는 튀밥이라고 주서 먹으려고 서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신기해서 구경하기 위해서도 서 있었습니다. 쌀이든, 강냉이든, 누릉지든 어느 정도로 뻥튀기 기계에다가 넣고 온도가 되도록 손으로 돌리고 두껑을 따면 뻥하는 소리와 함께 원래 넣었던 양보다 엄청난 양이 되어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린 마음이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우리 인생가운데는 이런 뻥튀기에 역사가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뻥튀기 기계처럼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뻥튀기 기계에도 분명히 재료가 들어가야 하면 뻥튀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도 공짜가 없듯이 하나님 앞에서도 공짜는 없습니다.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재료를 제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되돌려 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말 한대로 행한대로 되돌려 주시기 위해서 준비하십니다. 특히 우리가 이웃을 위해 구제하고 나누는 것에서는 후히 누리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에게 되돌려주시는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이 원칙을 항상 잊지 않고 좋은 것을 심으심으로 좋은 열매를 많이 거둘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하나님은 준비하십니다. (눅6:37-38)|작성자 아름다운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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