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교회당을 열심히 다니며, 각종 교회의 행사에 참여하고
봉사활동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을 영적이라 여깁니다.
대표기도 할 때 온갖 성구를 징발하여 요소요소에 끼워 넣고
큰 소리로 오래 기도하면 영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혹은, 세상 말 않고 성경에 대하여 끊임없이 대화를 유도하면
영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눈을 감고 미간에 힘을 줘서 찬양을 부르면 영적으로 보입니다.
성경 구절을 줄줄 암송하면 또한 그렇게 보입니다.
물론 이런 제스추어들이...
영적이다 아니다 성급히 결론을 낼 수는 없습니다.
영적이지 않으면서 영적인 척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진짜 영적인 사람도 이 중에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이런 보이는 것으로 단정할 순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영적인 것을 무엇이라 전합니까...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9절)
위 말씀을 살펴보면 사람이 영에 있다는 것은
그에게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거해야 한다고 전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육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이란 무엇입니까...
영적인... 영의 반대는 육입니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영적인 것이란 죄로부터 자유한 거룩이고,
육적인 것이란 세상에 속한 육의 속성 즉, 죄에 거하는 것입니다.
영적인지 육적인지... 평소 그 사람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육적인 사람은...
입술로는 물론 '주여주여' 주님을 찾지만, 기본적으로
인생의 기본 베이스를 세상에 두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즉, 육의 속성을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꿇고 애통히 회개하려 하기보다는
왜곡된 은혜를 앞세워 항상 죄와 타협하려 듭니다.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여 놓으려 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믿노라 합니다.
하여, 죄와 동거하며 살기에 육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세상의 매력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거룩함을 추구합니다.
세상적 모든 것은 이미 배설물로 보이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삶의 기준을 세상의 가치에 두지 않고
오직 주님을 향한 마음과 거룩에 인생의 가치를 둡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거룩을 추구하며 그날을 향해 달립니다.
이제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나는 주님을 영접했노라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누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육체적 해를 가하거나, 수치심을 줬다거나,
정신적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입혔거나,
상대가 내 생각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슬그머니 분한 마음이 올라와 그를 용서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되돌려주려고 마음먹지 않습니까?
주님을 사랑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장하면서
내 이웃 형제의 그늘에 대해서는 무감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는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입니다.
겉 사람은 그럴듯하게 경건의 모양은 갖추지만,
근본적으로 속사람 안에 거룩이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디모데후서 3장 5절)
이런 분들은... 관념적 지성으로는 동의하고 인정하여
주님을 영접했으니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실은, 주님을 자신의 영으로 영접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 속에 성령님이 안 계신 분들입니다.
즉, 아직 성령으로 변화 받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에게 스며있는...
육의 속성을 제어해줄 거룩한 존재(성령님)가 없기 때문에
육(죄)이 일상에서 계속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장 14절)
진정으로 주님을 영접한 영적인 사람이라면
그 안에 성령의 열매(주님의 마음)가 빛으로 인침되었기에
상대가 날 아무리 격발해도... 그걸 그대로 되돌리려 하지 않고
인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갈무리합니다.
내 안의 성령께서...
그런 방향으로 나를 제어하여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음의 성장(성화)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렇게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자식이자 영적인 사람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장 13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라디아서 5장 25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장 14절)
이처럼...
영적인 사람은 내 의지가 아닌 성령님의 거룩한 속성대로
자기 삶의 동선을 만들어갑니다.
아니, 그 동선은 이미 주님께서 영의 법으로 세운 바 되어
내 안의 주님께서 정하신 그 방향대로 인도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의 근본적 차이입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거듭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린도전서 2장 16절)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위의 고린도전서 2장 7절 말씀처럼
빛으로 비췸을 받은 적이 없기에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받은 적이 없음으로 성령으로 행하는 거듭난 성도들을
쓸데없는 행위를 한다 하며 어리석다 지적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영의 사람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따라 살도록 주님께서
늘 인도하시며 도우십니다.
주님(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 때 생명과 평안으로 나아갑니다.
내 안의 성령님은 나의 몸짓과 생각, 삶의 모든 동선과
입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까지도
그분의 의지대로 이끌리기를 강력히 원하시며 이끄십니다.
그분의 거룩한 속성이 세상에 역사되길 원하시고
나를 통하여 그분의 하시는 일의 통로가 되길 원하십니다.
이 땅은 그분의 십자가가 없으면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육과 세상을 사랑하여 그것을 끈질기게 놓지 않고
겉 사람을 따라 살려는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이런저런 고난의 도구를 사용하여 그것을 놓도록 하십니다.
즉, 마귀에게 세뇌된 견고한 육의 속성을 허물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허물어질 때는 너무나 큰 정신적 고통이 동반됩니다.
그러나... 다 허물려 없어지면
앓던 이가 빠지듯, 십 년 된 쳇증이 한 순간 사라지듯...
전에 없던 거룩한 해방감으로 채워집니다.
마치, 공중에 붕 뜬 것처럼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내가 왜 여태 이토록 우둔하게 살았나 자책하게 됩니다.
이 고난의 의미에 대하여 너무나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이고 은혜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장 2-4절)
영의 사람이 되길 갈망하십니까?
이는 우리보다 주님께서 더욱 간절히 원하시는 바램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내 육의 속성을 붙들지 마십시오.
이것을 꽉 움켜잡고 있으면서 나를 변화 시켜 살려달라는 것은
마치, 맹독을 품은 독사를 놓지 않으려 고집부리면서
독사로부터 나를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습니다.
손에 쥔 독사를 단호히 던져버리십시오.
그 순간부터 주님께서는 당신을 영의 사람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은... 육인지, 영인지 분명히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