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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인간은 중년이 되어가면서 눈이 어두워지고 기력이 예전 같지 않은 육체적 한계를 체험한다. 또 기억력이 없어지고 만사에 흥미와 의욕을 잃게 되는 정신적 한계를 체험하기도 한다. 동시에 자신이 굳게 믿고 있었던 가치나 이상,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바뀌며 소중한 인간관계 일터에서 무너지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삶이란 우리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삶이 자신의 뜻대로 돼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도 한다. 이 모든 한계 체험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참으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가난의 체험은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은총으로 이끌기도 한다. 가난과 한계, 무너짐의 체험은 우리가 가진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주며,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약한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듣고 몸과 마음으로 약함을 받아들이게도 만든다. 또한 이러한 체험은 '알고 보면 저 사람도 참으로 불쌍하다'라는,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기게 만들며, 능력이 없거나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좀더 이해하게 해주며,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하는 현명함이 생기게도 해 준다.
그리고 가난을 깊이 체험할 때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분명하게 볼 수도 있다.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절실함'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이제까지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절실함'을 몸이 알아듣기 시작한다. 마치 죽음을 선고받은 암 환자가 세상을 완전 다른 각도로 보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기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조그마한 것에도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가난 체험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조금은 더 용서하고 조금은 더 잘 받아들이게 만든다. 모든 인간은 49점에서 51점 사이에 있다고 인생을 오래 사신 분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인간은 아무리 못났다고 느껴도 49점이고, 아무리 잘 났다고 생각해도 51점이다. 인간은 100점이 아닌 50점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또 하나, 가난을 체험할 때 인생에서 어떤 것은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금은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인생에서 만나는 어떤 아픈 체험들은 치료법이 있고 약도 있지만, 어떤 체험들은 그냥 겪어내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때로는 인생이란 전혀 정의롭지도 않고,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조금은 쉬워지는 것 같다. 이러면서 우리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살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인간의 가난과 한계 체험은 하느님이 인간을 초대하는 특별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신학자도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가까이 부르시는 방법은 가장 먼저 우리의 힘과 욕심을 서서히 빼면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가난하다는 체험을 절실하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자기 자신 중심에서 다른 사람 중심으로, 나아가 하느님 중심으로 천천히 이동하게 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다.
한계와 가난의 체험들은 궁극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은 나의 하느님입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만든다. 이 신앙고백은 '이러저러한 한계를 가진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며,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라는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인생의 여러 체험들을 통해 마음으로부터 이런 고백을 할 때 우리의 기도도 달라진다. 젊고 힘이 있을 때는 하느님께 무엇을 얻게 해달라거나 어떤 일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되게 해달라는 청원 기도를 많이 한다. 그러나 중년을 지나면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피조물성을 좀더 깊게 이해하고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기도를 더욱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기도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묵상보다는 그냥 하느님과 함께 머무르는 관상이 더욱 편안하게 느끼지는지도 모른다.
예수회 전임 총장이었던 베드로 아루페 신부는 '사랑은 영혼의 무게'라고 했다. 우리 인생은 살아가면서 조금씩 내가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이웃과 세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누구신지를 알아가며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가는 긴 여정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능력은 가난과 은총 체험에서 더욱 풍성해진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분을 진짜로 만나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분명한 것은 그분 안에서만이 우리의 모든 가난과 부족함이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잘나거나 완벽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난이 그분 사랑을 알아듣게 하고, 오직 그분 사랑 때문에 풍성해지는 것이다.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보다 하느님을 심각하게 대하면서' 한해를 보내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좁은 소견으로는 하느님을 가장 존경하는 방법은 하느님을 하느님이게끔 허락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느님께서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청하면서 ,...
채준호 영성 대강연 (예수회 관구장 )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가난의 체험은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은총으로 이끌기도 한다. 가난과 한계, 무너짐의 체험은 우리가 가진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주며,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약한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듣고 몸과 마음으로 약함을 받아들이게도 만든다. 또한 이러한 체험은 '알고 보면 저 사람도 참으로 불쌍하다'라는,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기게 만들며, 능력이 없거나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좀더 이해하게 해주며,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하는 현명함이 생기게도 해 준다.
그리고 가난을 깊이 체험할 때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분명하게 볼 수도 있다.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절실함'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이제까지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절실함'을 몸이 알아듣기 시작한다. 마치 죽음을 선고받은 암 환자가 세상을 완전 다른 각도로 보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기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조그마한 것에도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가난 체험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조금은 더 용서하고 조금은 더 잘 받아들이게 만든다. 모든 인간은 49점에서 51점 사이에 있다고 인생을 오래 사신 분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인간은 아무리 못났다고 느껴도 49점이고, 아무리 잘 났다고 생각해도 51점이다. 인간은 100점이 아닌 50점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또 하나, 가난을 체험할 때 인생에서 어떤 것은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금은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인생에서 만나는 어떤 아픈 체험들은 치료법이 있고 약도 있지만, 어떤 체험들은 그냥 겪어내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때로는 인생이란 전혀 정의롭지도 않고,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조금은 쉬워지는 것 같다. 이러면서 우리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살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인간의 가난과 한계 체험은 하느님이 인간을 초대하는 특별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신학자도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가까이 부르시는 방법은 가장 먼저 우리의 힘과 욕심을 서서히 빼면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가난하다는 체험을 절실하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자기 자신 중심에서 다른 사람 중심으로, 나아가 하느님 중심으로 천천히 이동하게 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다.
한계와 가난의 체험들은 궁극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은 나의 하느님입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만든다. 이 신앙고백은 '이러저러한 한계를 가진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며,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라는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인생의 여러 체험들을 통해 마음으로부터 이런 고백을 할 때 우리의 기도도 달라진다. 젊고 힘이 있을 때는 하느님께 무엇을 얻게 해달라거나 어떤 일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되게 해달라는 청원 기도를 많이 한다. 그러나 중년을 지나면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피조물성을 좀더 깊게 이해하고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기도를 더욱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기도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묵상보다는 그냥 하느님과 함께 머무르는 관상이 더욱 편안하게 느끼지는지도 모른다.
예수회 전임 총장이었던 베드로 아루페 신부는 '사랑은 영혼의 무게'라고 했다. 우리 인생은 살아가면서 조금씩 내가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이웃과 세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누구신지를 알아가며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가는 긴 여정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능력은 가난과 은총 체험에서 더욱 풍성해진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분을 진짜로 만나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분명한 것은 그분 안에서만이 우리의 모든 가난과 부족함이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잘나거나 완벽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난이 그분 사랑을 알아듣게 하고, 오직 그분 사랑 때문에 풍성해지는 것이다.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보다 하느님을 심각하게 대하면서' 한해를 보내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좁은 소견으로는 하느님을 가장 존경하는 방법은 하느님을 하느님이게끔 허락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느님께서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청하면서 ,...
채준호 영성 대강연 (예수회 관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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