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사적인 분노, 반응적인 분노
분노는 연구하면 할수록 더 혼동을 주는 개념 중의 하나이다. 한 가지 문제는 우리가 그 단어를 사용할 때 상황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분노를 두 가지 기본적인 방법으로 생각하면, 반사적인 분노와 반응적인 분노가 있다.
반사(reaction)는 어떤 자극에 응답하여 "자동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분노를 감정으로 생각할 때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거나 해가 되는 행동을 할 때, 우리 안에서는 분노의 감정이 끓어 오른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계획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반면 반응(response)은 어떤 자극에 응답하여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의식적이며 의도적이다. 반사는 우리도 모르게 일어나는 것이지만, 반응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분명히, 같은 자극이 반사와 반응을 둘 다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당신이 내게 다가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 얼굴을 갈겼다고 가정하자. 즉각적으로 나는 반사 작용을 경험한다. 내 얼굴은 달아 오르고 근육은 긴장된다. 나는 덥석 달려들기 시작한다. "왜, 당신은..." 그러다가 나는 잠시 멈춰서 발생한 일을 생각해본다. 나는 나의 반사적인 행동을 주의 깊게 살핀다.
또한 나는 당신이 그렇게 행동한 전후상황을 살펴본다. 아마도 당신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합당한 이유나 내가 넘겨버려야 할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 적합한 반응은 뒤로 돌아서 걸어가 버리는 것이라고 결정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는 당신의 행동에 대해 직면하는 것이 올바른 반응이라고 결정할지도 모른다. 후자의 반응을 선택했다면, 나는 아마도 참기보다는 화를 표현하는 말을 할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반사와 반응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저절로 발생하는 것"과 내가 선택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분노는 고통, 두려움, 좌절과 같은 경험에 대한 인간의 정상적인 응답이다. 고의든 아니든, 누군가가 우리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분노는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반사 작용의 하나이다. 우리가 분노의 반응을 할 때, 때로 그것은 우리 내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도와 준다. 분노는 본질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단지 삶의 일면일 뿐이다. 그것을 좋고 나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2. 분노란 죄가 되는 감정이 아니다. 사실 죄가 되는 감정이란 없다. 단지 감정의 죄된 사용이 있을 뿐이다. 분노는 하나님이 주신 감정이다. 선을 추구하는 본능과 손잡은 우리 모든 감정들이 마찬가지듯, 분노 역시 건전한 영적인 목적을 위해 디자인되어 있는 것이다. 악에 대하여 분노하지 못하는 사람은 선을 추구하는 것에도 열심이 없다. 잘못된 것을 미워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진실로 당신의 의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점검해봐야 한다.
3. 분노는 우리가 하나님이나 세상을 마음대로 좌우하지 못할 때의 좌절감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곧 자기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신이 되지 못해서 울화통을 터뜨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 분노는 가로막힌 목표를 알리는 신호다. 당신의 행동이나 어떤 계획이 분노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이 당신의 노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제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당신의 목표를 가로막고 있다면, 그것은 건전한 계획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목표가 당신의 능력 밖에 있기 때문이다.
아내이자 어머니인 한 여성이, "내 인생의 목표는 따뜻하고 잘 조화를 이룬 행복한 가정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누가 그 목표를 가로막을 수 있는가? 온 가족이 이 여인의 목표를 가로막을 수 있다. 한 사람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다. 가정에 매달린 이 여인의 인생 목표는 남편과 아이들에 의해서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 그러면 이 여인은 대단히 분노하게 될 것이고 가정의 분위기는 생각 이상으로 악화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목사는 "내 목회의 목표는 이 지역을 복음화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목표인가?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소원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자신의 가치를 이 목표를 성취하는 데서 찾으려 한다면, 그는 무서운 감정적 혼란을 겪을 것이다. 모든 교인이 그의 목표를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공이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 목사는 당회원과 다투기를 중지하고 교회 내의 반대파가 교회를 떠나든지 그 반대가 없어지도록 기도할 것이다.
분노는 우리가 믿는 것과 그 믿는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설정한 목표들을 다시 검토하게 할 것이다. 어느 주일 아침, 교회에 가기 위해 대문 밖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차 안에서 몇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가족들이 나타나지 않자, 나는 집안으로 쫓아들어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벌써 15분 전에 출발해야 했어!" 잠시 동안 모두가 조용했다. 그때 딸아이의 부드러운 음성이 그의 방에서 새어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아빠, 누가 아빠의 목표를 가로막았나요?" 그것이 바로 당신의 계획이 가로막혀 분노하려고 할 때 들어야 할 음성이다.
5. 바운더리와 연결시켜.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 한계를 정하며, 책임을 떠맡을 때, 한동안 '분노의 구름'이 그들을 뒤따라다닌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렇다면 바운더리가 우리들 마음속에 분노를 일으키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러한 통념은 일반적인 감정에 대한 오해, 특별히 분노라는 감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의 감정이나 느낌은 나름대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말해준다. 일종의 신호인 셈이다.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자.
두려움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즉 조심하라는 신호다. 슬픔은 우리가 무언가-인간 관계, 기회, 또는 어떤 생각-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려준다. 분노 역시 일종의 신호다. 분노는 위험을 알려준다. 하지만 분노는 우리를 물러나도록 충동하기보다는, 위험에 대항해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다.
분노는 자신의 바운더리가 침해당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 국가의 레이더 방어 체계처럼, 분노의 감정은 우리가 상처를 입거나 통제받을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조기 경보 시스템' 역할을 한다. 분노는 우리에게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인식도 제공한다. 분노는 우리 자신과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세워놓은 원천들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준다.
하지만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분노는 시간을 정해놓고 일어나지 않는다. 분노는 위험이 2분 전, 또는 20년 전에 이미 일어났다고 해서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분노는 적절하게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 살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손상된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바운더리를 설정하기 시작할 때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 때문에 깜짝 놀라게 된다. 그것은 '새롭게 생겨난 분노'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과거의 분노'다.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바운더리를 침해받으면 마음에 엄청난 분노가 쌓이게 된다. 바운더리 손상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결정을 내릴 때마다 분노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바운더리를 세우려 할 때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것은 우리 영혼에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던 부분에서 일어나는 반대다. 그 부분들은 하나님과 다른 이들에 의해 밝히 드러나고, 이해되며, 사랑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그것들을 치료하고 더욱 뛰어난 바운더리를 세우는 책임을 담당해야 한다.
바운더리는 분노를 감소시킨다. 분노에 대해 매우 중요한 점은 바운더리가 성경적일수록, 우리가 분노를 느끼는 정도는 점점 약해진다는 사실이다. 성숙한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이제 막 바운더리를 세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자신들 속에서 분노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단계는 바운더리가 성숙되고 발전되는 과정 속에서 거쳐가는 것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분노의 기능 중에 하나인 '조기 경보 시스템'을 기억하라. 우리는 자신의 바운더리가 침해받았다고 생각할 때 분노를 느낀다. 애초부터 바운더리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면, 분노를 느낄 필요가 없다. 옛 속담에 "화내지 말고, 평온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속담은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화내지 말라. 한계를 설정하라"고 하는 편이 훨씬 맞는 말이다.
6. 분노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자연발생적 반응이다. 그런 면에서 분노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분노란 우리의 뜻을 꺾고 삶을 방해한 이들에게 즉각 방해로 갚거나 심하면 해를 입히도록, 우리를 몸 안으로부터 사로잡아 충동하는 하나의 감정이다.
삶에서 분노의 주요 기능은, 내 의지의 방해 세력에 대한 경고를 통해 나로 하여금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즉각 경계와 저항으로 맞서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노의 전부라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이런 의미의 분노는 죄가 아니다.(두통이 죄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정말 두통이 필요한가?)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의 분노는 그 정도를 훨씬 벗어나 본질적으로 악한 일로 급속히 비화된다. 분노란 일차적으로 인간 의지의 한 기능이다. 우리를 방해한 이들을 향한 반응으로서의 분노에는 그들을 해치려는, 적어도 그런 일을 시도하려는 의지가 포함된다. 정도를 불문하고 모든 분노에는 어느 정도의 악의가 들어 있다. 상대가 나에게 분노할 때 언제나 상처가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싸늘한 시선(혹은 아예 쳐다보지 않는 것)이나 언성을 높이는 것(혹은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 정도에도 이미 나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도가 묻어난다. 물론 의도는 곧 성공으로 이어진다.
II. 분노의 원인
1. 심리학자 Raymond Novaco의 말에 의하면 분노와 적개심은 '독백'(self-talk), 즉 스스로를 향해 말하고 생각하는 바를 따라 발생, 유지, 격화된다고 한다. 우리는 억울한 감정과 괘씸한 마음을 최초의 유발 사건이 지나간 뒤로도 몇 시간, 몇 날, 몇 주, 몇 달, 몇 년이 지나도록 속에 그대로 쌓아 둔 채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몸은 현재를 살고 있지만 감정은 과거라는 강력 접착제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이런 '썩은 생각'은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 분노를 일으키는 일곱 가지 원인
왜 우리는 화내지 말아야 할 것에 화를 내는가? 분노를 일으키는 일곱 가지 원인은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자극하고 성령에 따라 살려는 노력을 방해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맡기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이 일곱 가지 분노의 이유는 화를 내게 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고, 삶의 여러 영역에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1) 권리의 침해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리적 차원에서 보면, 일단 우리는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얼굴 앞에 있는 약 50cm 정도를 자신만의 장소로 간주한다고 한다. 만일 이 공간을 침해하면 분노로 반응하게 된다.
2) 삶에 대한 실망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가꾼 굴 속에 진주가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분노가 치민다. 만일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더 많이 획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는 것을 배우는 데 있다.
3) 좌절된 목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어 낼 때는 만족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이러한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되면 분노한다.
4) 짜증
사소한 짜증이 어떤 때에는 인생의 진짜 문제보다 더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는데, 왜 아내는 항상 위쪽에서 짜는 거지?"
5) 오해받는다는 느낌
감정이 상하고 속에서 예측할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다른 사람이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내 의식의 표면 밑에 이미 잠재해 있는 분노를 나타나게 해줄 뿐이다. 종종 우리는 사람들이 내 감정, 내 태도, 내 능력, 내 가능성 등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를 낸다고 해서 오해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Benjamin Flanklin은 이렇게 말했다. "분노가 이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를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6) 비현실적인 기대
나의 경우, 전혀 모르는 사람이 와서 나를 괴롭히면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크리스천 친구들이 와서 괴롭히면 분노하게 된다. 문제는 내가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너무 높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그마한 여유도 주지 않으려고 한다.
7) 병리학, 심리학적 이유
경우에 따라 사람들은 병이나 정서적인 불안 때문에 화를 내기도 한다. 통계에 의하면 어렸을 때에 학대를 받은 사람은 아버지가 되어서 똑같은 분노의 문제를 지닐 가능성이 높다.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분노의 대부분은 죄로 귀결된다. 앞에서 살핀 이유는 이기심과 인내하지 못함이라는 두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치 조개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내게 동조하고, 내 뜻을 따라 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좋아한다. 하지만 내 뜻대로 안 되면, 이기심과 인내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종종 분노를 일으킨다.
3. 분노와 상한 자아
분노가 치명적 해악이 되는 것은 제3의 요소인 의지의 개입 때문이다. 우리는 분노하기로 의지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많은 경우 실제로 그렇게 한다. 분노는 처음에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적극적으로 분노를 받아들여 고의로 그 속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대개 그렇게 한다. 아예 분노형 인간이 될 수도 있다. 분노의 격류가 언제나 준비돼 있어 조그만 일 하나로도 즉각 터져 나오는 것이다. "운전중 분노"라는 현대 전염병에 걸린 이들이 좋은 예이다. 분노 폭발은 무슨 사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분노를 산더미처럼 품고 다닌다.
사람들은 왜 분노를 품고 키우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빠져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분노를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그 속에 빠져들 때, 거기에는 언제나 자기의와 허영심의 요소가 끼어 있다. 분노를 품고 사는 사람을 찾아 보라. 거기 상한 자아의 주인공이 숨어 있다. 분노에 빠지는 이들은 자아와, 그 자아가 입은 실제 혹은 가상의 상처의 중요성을 정도 이상으로 부풀린다. 내 소원을 방해하고 내 품위를 손상시킨 이들에게 어떻게든 해를 입혀야 하는 것이다. 상황이 지난 후에도 분노를 두고두고 품고 있거나 완전 무분별한 격분의 지경까지 끓어오르게 놓아둘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자기의의 요소밖에 없다. 분노가 식어지지 않게 하려면 자신이 부당 대우를 받고 있다거나 용납 못할 불의를 색출하는 일에 가담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4. 분노의 주체와 관련된 질문 네 가지
분노를 느끼기 시작할 때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도록 해보라.
1) 지금 나의 기분은 어떠한가?
2) 나는 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가?
3) 나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가?
4)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네 가지 질문 모두 주체가 '나'로 되어 있다. 분노가 나타날 때 우리는 분노의 원인이 된 다른 사건 또는 다른 사람만 탓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분노의 시작을 자기 책임으로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분노의 주체인 '나'라는 단어를 이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지금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어." "나는 억울해." "이런 결과는 나의 뜻과 달라." 이런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은 우리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을지 몰라도 거기에 반응하는 방식은 우리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III. 분노의 반사 작용에 대한 기본적인 반응
1. 억압
1) 억누르는 이들은 인생의 상처와 실망과 좌절에 부아가 치민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분노를 묻는 것은 유독성 폐기물 매립이라는 현대 문제와 비슷하다. 억누른 분노는 언제나 새어 나오게 되어 있다. 새어 나와 우리의 몸과 마음과 관계에 해독을 끼친다. 몸의 해독이란 두통, 위장병, 불면증 등 잡다한 신체 증상으로 터진다. 마음의 해독이란 왜곡된 사고, 짜증, 자존감 상실, 혼돈, 냉소, 절망, 자포자기 등으로 나타난다.
2) 억누르는 사람의 반대는 토하는 사람이다. 분노 표현에 관한한 그는 무너진 댐과 같다.
2. 네 가지 기본적인 반응
1) 감정을 억압한다.
조심하라! 억압된 감정은 압력을 만들어내어 결국 터지고 만다.
2) 분노를 터트린다.
“미루지 말라. 품고 있지 말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 그러한 충고를 따르면 일시적으로는 해소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관계를 깨뜨리고 자신의 정서적 건강을 해친다.
3) 분노를 느끼지만 그 즉시 표현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종종 그렇게 하려면 “열까지 세라”는 말을 따라야 한다. 이러한 방법은 반작용보다 반응을 하도록 자신에게 여유를 준다.
4) 자신이 신뢰하는 누군가에게 분노를 고백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여 최선의 반응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IV. 분노의 세 증상
1. Freddie Flash의 퓨즈는 쉽게 녹는다.
그를 화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없다. 분노에 대한 그의 문제는 분노의 빈도에 있다. 조금만 성질을 건드려도 그는 폭발한다. 그는 화낼 대상을 찾아다니는 분노의 사람이다. 비록 그 분노가 쉽게 가라앉기는 하지만 그는 작은 일에도 폭발한다. 그래서 자신이 화내는 것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주 화를 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2. Cary Control씨는 매일 화를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번 퓨즈가 끊어지면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한다. 그는 자제력을 잃고 거친 말을 쏟아내서 아내의 넋을 빼놓고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이 사람의 문제는 분노의 강도에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럽고 삶이 버거웠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언제까지나 억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종종 그 분노를 표출해야만 했다.
3. Gary Grudge씨는 결코 화를 밖으로 분출하지는 않는다.
화가 끊어 오르면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깎아 내리기 위해서 역공을 시도한다. 그는 자신이 복수했던 사람들의 꿈을 꾸면서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나곤 한다. 분노에 대한 이 사람의 문제는 분노의 지속에 있다. 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노의 유독 물질이 위장의 안쪽 벽에서 타오른다. 마치 경첩이 녹이 슬어 있듯이. 적당한 음식을 섭취하려고 노력하지만, 고혈압과 대장 때문에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들은 분노의 세 증상을 보여준다. 너무 쉽게 화를 내는 문제(빈도의 문제), 자제력을 잃는 문제(강도의 문제), 악감을 지니는 문제(지속의 문제).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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