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_카타리나 이모저모
*^^카타리나가 생각하는 깨어있음과 온전한 자유함 ( 2 )^^*
J_카타리나
2005. 9. 2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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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 (베드로전서3:15)
ㅇㅇㅇ님,
카타리나는 온전히 나아간 자도 아니고 가르치는 자도 아니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진리로 가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진리로 가는 길에 있어서 아직두
걸음마 수준도 못미쳐있다고 생각하는 신앙인입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주님의 은혜 안에서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청종하고자 합니다.
하오나 님께서 저의 소망에 관하여 질문하셨기에
주님이 가르쳐주신대로
온유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실히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답변을 드리고자 하오니 부족하여도 어여삐 여겨 주옵소서!^^*
ㅇㅇㅇ님의 첫번째 질문:
이 세상에 예수 믿는다는 자는 참으로 많으며 많았었는데,
그들 중에 깬 자가 단 하나라도 있었능겨?
아마도 ㅇㅇㅇ님께서는 온전히 깨었던 자가 있었는가 질문을 하시는 것
같사온데 그 질문의 답은 한 명도 없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하오나 온전히 깬 자는 없었지만 온전함(깨움)에 이른 자는
많이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ㅇㅇㅇ님은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카타리나는 아주 아주 쬐금 깨어있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자랑함도 아니며 교만함도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함은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며
그 은혜로 말미암아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무시로 기도하구
간구하고 있으며 미세하나마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저는 우리 안에 진리의 영(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음성과 세상 만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리의 영이 내 안에 계셔도 나의 영이 잠자고 있거나 죽어있다면
결코 나는 아무소리도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깨어 구하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ㅇㅇㅇ님께서 카타리나가 말한 것에 대한 오해가 있으시온데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처럼 온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여 주님이 가르쳐주신 뜻을 쫓아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다다르게)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지 예수님처럼 완전하게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진리는 예수 곧 하나님이시며 진리의 영(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써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이르게 된다." 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한1서 5:5~7)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기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한복음 17장의 말씀을 참조하여 주소서...)
ㅇㅇㅇ님도 아시다시피
성경에서는 '이루었다'는 말은 예수님만이 하셨습니다.
바울사도도 온전히 이루었다고 하지 않았으며
그 분 역시 예수께 잡힌바 되어 그것을 잡으려 좇아간다 하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인간으로써 온전히 이룬 자는 아무도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다다른자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데반같은 순교자들과 프란치스코 성인 같은 분들이 그런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온전함에 이를 때는 하늘나라로 갈 때이며
온전함이 이루어 지는 때는 주님이 재림하여 심판이 끝나고
생명 나무에 나아가 주께서 계시는 거룩한 도성에 들어갔을 때일 거라
생각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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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은총을 물러감을 느끼지 않고,
열심히 쇠하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는,
그렇게 신심있고 충실한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하였다.
어느 성인을 막론하고 처음에나 혹은 후에나 한 번도 시련을
당하지 않을 만큼 그렇게 고상한 탈혼상태(脫魂狀態)에 이르고,
그러한 신광(神光)을 누린 성인은 하나도 없다.
무릇 하나님을 위하여 무슨 곤란으로 단련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신묘(神妙)하게 관상하는 데 합당한 이가 아니다.
흔히 보면 무슨 시련이 있는 것이 머지 않아 받을 위로의
전조처럼 되어 있다. 무릇 시련을 당하여 잘 나간 이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허락될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승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 (요한계시록 2, 7) 하셨다.
하나님께서 위로를 주시는 것은
사람이 역경을 잘 참아 나가기에 필요한 용기를 주시기 위함이다.
위로가 있은 후에 시련이 다시 있는 것은,
잘했다고 자긍할까 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마귀는 자지 않고 네 육신도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므로 네 좌우 편에는 원수가 쉬지 않고 너를 노리고 있으니,
싸울 준비를 그치지 말아라.
- Thomas a Kemp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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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님의 두 번째 질문:
그라믄예, 위에서 깬 자가 단 하나라두 있었는지 여부와 연관하여 카타리나님이
깬 자가 되길 소망한다는 말씀이라예. 하모, 소망하는 것과는 달리 깨지 못하고
나 자빠지는 살람들이 억수로 많으니 소망한다고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이지예?
ㅇㅇㅇ님 말씀처럼 소망한다고 해서 깰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소망한다고 해서 온전한 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며 나의 영이 자거나
죽어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얻었다하여도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욱 온전함에 가까이 이르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더 많은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는 카타리나의 신앙을 바탕으로
주께서 주신 깨달음입니다. 저의 신앙이 좀 더 성숙하게 자라게 되면
깨달음도 더욱 충만하게 될 것이며 부족한 부분들도 채워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아직 걸음마 수준에도 못미치는 저의 깨달음을 가지고
저는 모두 옳다 주장하지 않으며 저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설득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저의 깨달음이나 또는 저의 깨달음의 부족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기를 바랍니다.
ㅇㅇㅇ님 덕분에 좋은 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ㅇㅇㅇ님께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의와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을 전합니다.
늘 평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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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도리
사라져 없어지는 형상이나 말로써 배우지 않고 진리 자체를 진리 그대로
배우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 소견과 우리 생각은 자주 우리를 속일 뿐더러 또 그 보는 바는 작다.
심오하고 희미한 사정에 대하여 수다하게 논중하는 것이 무엇에 유익하랴?
심판 때에 이런 것을 몰랐다고 책망을 들을 리는 없다.
유익하고 요긴한 것을 소홀히 보고 호기심에서 해로운 일에 즐겨 마음을 둠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이는 눈을 가지고도 보지 못함이다.
유(類)와 종별(種別) 을 따지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관계가 있으랴?
영원하신 말씀의 가르치심을 듣는 이는 여러가지 소견에 잡히지 않는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3-4).
아무도 그로 말미암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고 바르게 판단하지도 못한다.
모든 것을 하나에서만 보는 사람은 마음이 동요되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 안에 평화로이 항구할 수 있다.
누구든지 자기 정신을 집중하고 또 마음을 순박하게 할수록 그만큼 힘들이지 않고
많이 또 깊이 깨달을 것이니 이는 위로부터 오는 총명(聰明)의 빛을 받기 때문이다.
마음이 정결하고 순직하고 항구하면 일이 많아도 정신이 산란치 아니하니
이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존경을 위하여 행하고 자기를 표준하는 사사로운
이익을 찾지 않는 까닭이다.
네 마음에 누르지 않은 정욕보다 더 너를 방해하고 성가시게 구는 것이 또 있으랴?
착하고 신심이 있는 사람은 겉으로 행 할 일을 먼저 마음에 예산한다.
또 무슨 일을 한다고 그로인하여 사욕으로 기울어지는 원의를 따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 일을 바른 이성의 명령대로 따르게 한다.
자기를 이기려고 하는 싸움보다 더 맹렬한 전쟁이 어디 있으랴?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할 일은 나 자신을 이기고 나날이 나를 이김에 용맹해지고
선으로 더 나아가려고 힘쓰는데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완덕이란 어느 것에든지 얼마간 결함이 없지않고 우리의 연구도
얼마간 애배함을 면치 못한다.
깊이 학문을 연구함보다는 너를 천히 생각할 줄 아는 것이 하나님께로 가는
더 확실한 길이다.
그렇지만 학문을 탓함이 아니요 혹 무슨 사룸을 연구하여 앎을 그르다는 것은 아니다.
학문 자체는 좋은 것이요 또 하나님이 안배하신 것이다.
다만 양심 껏 착하고 덕성스러이 살아 나감이 더 낫게 여길 것이다.
많은 사람이 착하게 살기보다도 알려고만 힘쓰므로 자주 그르치고 거의 아무
결과가 없고, 혹 있어도 아주 미소 할 뿐이다.
오! 사람들이 허황된 문제를 일으키는 그만한 열정을 가지고 악습을 뽑고
덕행을 닦는다면 민중 사이에 이런 참담한 쇠퇴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심판 날을 당하여 우리가 심문당할 것은 무엇을 읽었는지가 아니요
무엇을 행하였는 지를 물을 것이며 무엇을 배웠는지를 묻지 않고
얼마나 열심하게 살았는지 물을 것이다.
네가 잘 알던 저 모든 학자들과 선생들이 살아 있을 때 박학하다고 이름이
자자하더니 지금 어디 있느냐?
벌써 그들의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점령하였으며 한 사람이라도 그들을
기억이나 해주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살 동안에는 위대한 것처럼 우러러보더니 지금 와서는 그들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도 없다.
오! 세상의 영화는 그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가!
그들도 아는 것만큼 그렇게 생활을 해 나갔다면 이런 경우에 잘 공보 하였을 것이요
잘 읽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헛된 학문 때문에 망하는가?
그들은 하나님을 섬김에 별로 상관치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겸손되이 지내려 않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려 하므로
그들의 생각이 헛되게 된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애덕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참으로 높은 사람은 자기를 스스로 작게 보고
모든 존귀한 영예를 허무한 것과같이 보는 사람이다.
참으로 슬리고운 사람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쓰레기로"(빌립 3,8) 여기는 사람이다.
참으로 유식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스러운 뜻에 따르고 자기의 뜻을 버리는 사람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3:17)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