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말씀 나눔
[스크랩] 레위기 5강 - 속건제를 드리는 법(레5:14-6:7)
J_카타리나
2005. 8. 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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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건제를 드리는법 (레위기 5:14-6:7)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셔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거처인 성막을 짓게 하시고
성막에서 언약 백성과 언약의 교제를 허락하셨습니다.
언약의 거처인 회막으로 중보자를 부르시고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과 언약적인 친교를 하셨습니다.
언약백성이 언약의 하나님과 어떻게 친밀한 친교의 삶을 누리는가를
레위기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 적인 친교의 대표적인 의미가
5대 제사법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5대 제사인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상에 참여하여 생명의 교제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번제, 소제, 화목제는
하나님께 향기나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강조된 제사입니다.
반면에 속죄제와 속건제는 죄로 말미암아 언약 백성이 범과 했을 때
그러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죄사함을 통해서
계속해서 하나님과 언약적인 친교를 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입니다.
본문에서는 그 가운데에서 속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속건제는 속죄제와 아주 비슷한 제사입니다.
따라서 속제죄와 비교해서 그 차이점을 생각하면,
속건제의 의미를 더욱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범죄한 당사자는 누구든지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속죄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제물의 등급을 낮추어 주십니다.
속죄제사를 드리는 당사자의 계층적인 등급에 따라서 제물의 등급도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속건제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금령 중 하나라도 범했을 때 속건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속건제물을 흠 없는 수양 중에서 택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제물의 양을 결정하는 기준이 분명히 동일하게 정해졌습니다.
지정한 가치를 따라서 제물의 양을 결정하였습니다.
부자라고 더 많이 드리고, 가난한 자라고 더 적게 드리도록 배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정한 가치대로,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가치를 따라 수양으로 결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정한 가치의 제물 외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드리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실치 못하여 범죄 했을 때도 속건제를 드립니다.
다른 사람의 재물에 손해를 입혔을 때에도 속건제를 드리도록 합니다.
그때는 손해를 끼친 본 물건 외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피해를 본 당사자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도 속건 제물을 드립니다.
지정한 가치대로 수양으로 제물을 삼아서 하나님께 속건 제물을 드리도록 합니다.
이것이 속건 제물을 드리는 법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속죄제는 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강조하는 제사입니다.
반면에 속건제는 죄의 피해에 배상에 강조가 있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오분의 일을 더해서 드리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로 그들이 부지중에 범한 죄 때문에
인간 관계가 깨어지지 않고 원만한 관례를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공동체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신 가족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언약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건 제물 안에서
유지되던 옛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에 희생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언약 백성 사이에 놓여 있는
죄와 사망의 담을 허시는 속죄제 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인 인간 관계 안에 나타난 담을 허시는
거룩한 속건제물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한 하나님과의 교제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 사이에 사람의 교제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새 언약의 교회는
단지 피해를 주었을 경우에만 본전에다가 오분의 일을 더해서 줌으로
배상이 끝나는 나라가 아닙니다.
형제에게 형제를 섬기는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적극적으로 형제를 부양해야하는 나라입니다.
이처럼 더욱 겸손하고 사랑의 질서를 따라서
주님을 대신하는 삶이 새 언약 백성에게 요구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사는 나라입니다.
가인이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고백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주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여 고백한다면
우리는 형제에 대한 부양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재능 그리고 주신 것으로 이처럼 형제를 부양하고 섬길 때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셔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거처인 성막을 짓게 하시고
성막에서 언약 백성과 언약의 교제를 허락하셨습니다.
언약의 거처인 회막으로 중보자를 부르시고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과 언약적인 친교를 하셨습니다.
언약백성이 언약의 하나님과 어떻게 친밀한 친교의 삶을 누리는가를
레위기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 적인 친교의 대표적인 의미가
5대 제사법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5대 제사인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상에 참여하여 생명의 교제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번제, 소제, 화목제는
하나님께 향기나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강조된 제사입니다.
반면에 속죄제와 속건제는 죄로 말미암아 언약 백성이 범과 했을 때
그러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죄사함을 통해서
계속해서 하나님과 언약적인 친교를 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입니다.
본문에서는 그 가운데에서 속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속건제는 속죄제와 아주 비슷한 제사입니다.
따라서 속제죄와 비교해서 그 차이점을 생각하면,
속건제의 의미를 더욱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범죄한 당사자는 누구든지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속죄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제물의 등급을 낮추어 주십니다.
속죄제사를 드리는 당사자의 계층적인 등급에 따라서 제물의 등급도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속건제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금령 중 하나라도 범했을 때 속건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속건제물을 흠 없는 수양 중에서 택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제물의 양을 결정하는 기준이 분명히 동일하게 정해졌습니다.
지정한 가치를 따라서 제물의 양을 결정하였습니다.
부자라고 더 많이 드리고, 가난한 자라고 더 적게 드리도록 배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정한 가치대로,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가치를 따라 수양으로 결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정한 가치의 제물 외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드리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실치 못하여 범죄 했을 때도 속건제를 드립니다.
다른 사람의 재물에 손해를 입혔을 때에도 속건제를 드리도록 합니다.
그때는 손해를 끼친 본 물건 외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피해를 본 당사자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도 속건 제물을 드립니다.
지정한 가치대로 수양으로 제물을 삼아서 하나님께 속건 제물을 드리도록 합니다.
이것이 속건 제물을 드리는 법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속죄제는 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강조하는 제사입니다.
반면에 속건제는 죄의 피해에 배상에 강조가 있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오분의 일을 더해서 드리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로 그들이 부지중에 범한 죄 때문에
인간 관계가 깨어지지 않고 원만한 관례를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공동체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신 가족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언약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건 제물 안에서
유지되던 옛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에 희생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언약 백성 사이에 놓여 있는
죄와 사망의 담을 허시는 속죄제 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인 인간 관계 안에 나타난 담을 허시는
거룩한 속건제물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한 하나님과의 교제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 사이에 사람의 교제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새 언약의 교회는
단지 피해를 주었을 경우에만 본전에다가 오분의 일을 더해서 줌으로
배상이 끝나는 나라가 아닙니다.
형제에게 형제를 섬기는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적극적으로 형제를 부양해야하는 나라입니다.
이처럼 더욱 겸손하고 사랑의 질서를 따라서
주님을 대신하는 삶이 새 언약 백성에게 요구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사는 나라입니다.
가인이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고백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주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여 고백한다면
우리는 형제에 대한 부양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재능 그리고 주신 것으로 이처럼 형제를 부양하고 섬길 때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출처 : 하늘에 속한 교회
글쓴이 : 천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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