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말씀 나눔

[스크랩] 잠언(2)

J_카타리나 2005. 8. 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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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언 1장 들어가면서 우리가 구속사적인 해석을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모형론과 관계가 있어서 "구속사=모형론"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속사적인 해석을 하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과도하게 구약과 신약을 맞추어서 우화적으로 빠지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전체가 모형론적이다. 따라서 비슷한 상응하는 구조가 없을 지라도 구약전체가 완성의 빛 가운데서 보았을 때 이전의 삶 전부가 예수 안의 완성의 삶, 성취적인 방식으로 성취하는 것이어서 다 모형론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부르시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심을 통하여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를 세우셨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것은 왕정시대였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 왕정시대에 쓰여진 잠언서는 자신들과 동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창조주로서 모든 사물과 질서관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지혜이신 하나님을 따라 사는 일이며 그러함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복주신 영광이 나타날 뿐 아니라 그것이 이스라엘이 지혜를 따라 사는 삶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잠언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다. 솔로몬은 천 마리의 제물로 일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셨다. 그런데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어떤 지혜인가 하면 "내가 어린아이로서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백성들에게 시행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대리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인데 그가 어려서 분별력이 약하므로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잇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이제 시내산에서 세우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선 시내산에 임하신 것처럼 두려운 방식으로 임재해 계시는 것이 아니며, 성전에 계시며 모세와 같은 두려운 대리자들을 백성들 가운데 두셔서 말씀하시는 것도 아니라 지혜로운 왕을 자신의 보좌에 앉히셔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통치하시는가 하는 통치의 지혜가 대리왕과 부모에게 있어서 그들의 치리와 훈계를 받는 백성들의 삶이 하나님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기 때문에 두려운 모습이나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왕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어서 "내 아들아 이렇게 행해라"는 식으로 마치 마주앉아 손을 잡고 권면하는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실생활에 적용되는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지혜문인 잠언은 교리적으로 하나님이 어떠하시며 또한 하나님이 얼마나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며 함께 하시는가 하는 하나님께 대한 진리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삶의 관찰과 경험으로부터 하나님이 누구신가 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이 구약의 지혜문의 특징이다. 즉 잠언의 교훈방식은 삶의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면서 거기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묘사적인 사실들을 직접적으로 규범적인 교훈이 된 것처럼 교리적으로 수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솔로몬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의 구속역사에서의 위치와 시대적인 관습과 상황 등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흐름 서론적인 잠언 가운데 1:1-6절까지는 전체적인 서론에 해당되는 내용으로서 잠언을 기록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잠언 곧 지혜는 무엇인가? 하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7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말하여 지혜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7절의 말씀이 모든 잠언의 핵심을 제공하는 초점이 되겠으며 그것에 대한 결론이 31장에서 현숙한 아내를 즐거워하는 삶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8절 이하는 지혜를 아버지의 훈계로, 어미의 법으로 말씀하고 있으며 그 후에 10-19절까지에서는 지혜를 떠난 어리석은 자, 교만한 자, 미련한 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더러운 이를 탐하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즉 이를 탐하는 자는 악한 친구인 것이다. 이러한 말씀의 결론은 19절인데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며 자기의 생명을 잃게 되느니라고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20-33절에서는 어리석은 자가 어떻게 지혜의 권고를 대항하며 그리하여 자기 스스로 만족해서 멸망을 자초하는가 하는 어리석은 자의 교만함과 그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지혜를 떠난 자의 어리석음이 31절을 보면 "그러므로 자기의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절의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없이 평안하리라"고 묘사하여 1장을 결론짓는다. 구체적인 해석 7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고 하신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고 거기에 자신의 지혜를 새기셨기 때문에 만물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지혜이다. 따라서 만물에 새겨진 하나님의 지혜를 분별하고 탐구하며 연구를 해서 하나님이 과연 이러하시다 라고 증거하면 곧 그 지혜가 세상역사의 영광이며 생명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는 부모와 자녀관계에도 새기셨는데 그 러기 때문에 8-9절에서는 이 지혜를 아비의 훈계, 어미의 법으로 또한 "내 아들아..."라고 하는 것처럼 믿음의 백성들을 아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법을 따르는 것이 네 머리의 면류관이며 네 목의 금사슬 즉 모든 존귀함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의인화시켜서 말하고 있지만 실재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과 우리와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새기셔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아버지에게서 나타나고 아버지는 자식을 낳고 먹이고 길러서 아버지와 같은 상으로 성장시키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낳으시고 먹이시며 권고하셔서 하나님과 같은 상으로 변화시키셔서 하늘의 그리스도의 상으로 덧입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고 이 영광을 부자질서에 새기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법이 자식에게 있어서는 지혜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10-19절에서는 이를 탐하는 악한 친구에 대하여 말한다. 그가 추구하는 속한 이를 보려고 하는 것은 모든 불의의 기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먹고 마심이 우리의 생명이 되게 하셨는데 이 먹고 마심은 단순한 먹고 마심이 아니라 먹고 마실 것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군으로 선한 수고가 있어야 하며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는 땀을 흘리는 수고가 있도록 하셨는데 악한 친구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가만히 엎드려서 의로운 재물을 빼앗아 우리가 함께 먹고 마시자 라고 유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는 아비와 어미의 법처럼 자식을 멀리 떠나서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매사의 삶에서 권고하는 것이다. 20-33절에서는 지혜가 길거리, 광장, 성문어귀, 재판장 등과 같은 사람이 사는 모든 거처에서 소리높여 부른다고 말씀한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고 자기 어리석음과 거만을 좋아하며 자기 미련함을 총애하여 하나님의 지식을 거절한다고 말씀한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의 실상이고 죄악인 것이다. 그들이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혜가 사람사는 모든 곳에서 소리높여 부른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자신의 양심까지라도 하나님을 증거하기 때문에 몰라서 죄를 지었다고 핑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1장에서는 먼저 하나님이 지혜를 아비와 어미의 법으로서 그것이 생명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떠난 길은 악한 자가 유혹하는 길인데 그것은 이를 탐하는 방식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영역에서 생명의 길로 부르시지만 사람은 자기 배부름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멀리하여 돌라오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지혜는 나에게 멀리있는 말씀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주셔서 자녀들을 가르치게 하시며 훈계케 하시는데 그것은 곧 자녀의 생명이며 존귀함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가정질서에서도 풍성히 나타나야 할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서로를 권면하여 하나님의 지혜가 교회를 통치하여 지혜가 서로에게 생명의 법이 될 수 있도록 수고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한 우리의 모든 삶의 질서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만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질서에서 나타내는 순종하는 자녀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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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천상의 비밀
글쓴이 : 서해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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