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장 말씀묵상] 주를 위해 버리면 얻습니다. (28-30절)
‘등록망촉’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 사자성어는 중국 한나라때 광무제가 농을 정복한 뒤에 촉을 쳤다는데서 나온 말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어제 새벽에도 욕심에 대한 말씀을 조금 나누었는데요. 사람은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심리입니다. 백수일 때는 취업만 됐으면 소원이 없다고 했는데 취업이 되면 연봉이 얼마인가에 관심이 가고 연봉을 어느 정도 되면 승진에 관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욕심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야고보서1:15절의 말씀처럼 그 욕심 때문에 죄를 짓게 되고 그 죄로 인해 죽음까지 맞이하게 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그물망에 사람의 뼈가 걸려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물망에 사람의 뼈가 걸린 것도 신기한데 더 신기한 것은 그 뼈에 200Kg의 금괴가 허리띠에 걸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신기해서 그물이 올라온 지역을 살펴보니 오래전 바로 그 자리에서 배가 난파를 당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조난자들은 모두 구출 받았는데 딱 한 사람만이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200Kg의 금괴를 허리띠에 걸고 있는 그 뼈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배가 난파하자 200Kg의 금덩어리를 허리띠처럼 두르고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인간의 욕심이 부른 재앙입니다. 물론 우리가 가져야 할 긍정적인 욕심도 있지만 잘못된 욕심은 재앙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움켜잡으려고 하지 말고 손을 펴라고 말씀합니다. 채우려고 하지 말고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버리면 오히려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라는 책에 보면 ‘버리면 얻는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 찬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한다고./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이 글은 솔직한 우리 인간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은 가감하게 버립니다.
집안에 쓰레기를 모아 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쓰레기는 모아 놓으면 놓을수록 악취가 나기 때문에 절대 모아 놓지 않습니다. 쓰레기는 모이기만 갖다 버립니다. 반면에 자신에게 귀한 것은 잘 버리지 않습니다. 아주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주님이 원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데 방해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이 버리라고 하면 버려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그 어떤 것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기꺼이 버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버리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주님을 위해 버리면 버릴수록 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나무는 여름에 무성했던 자신의 이파리들을 가을이 되면서부터 하나씩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모두 버려야만 추운겨울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더 깊어지고 줄기가 굵어지고 튼튼해져서 다음해 더 많은 나뭇잎과 꽃들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찾아왔던 부자청년이 자신의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간 이후에 예수님과 나누는 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에 대해 마음이 많이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까지 말씀하시지 않고 좀 적당하게 해서 부자청년이 예수님을 따르게 했다면 재정적인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직격탄을 날리시고 결국 부자청년은 자신의 재물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나이다.”(눅19:28)마태복음 19장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19:27) 베드로는 지금 부자청년은 자신의 것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떠나갔지만 자신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랐는데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대답해주십니다. 29-30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들은 현세에 여러 배를 받는 다고 말씀합니다. 뿐만아니라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부자청년은 이 영생을 얻고 싶어서 주님을 찾아 왔지만 그는 해답을 알고도 영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렸기에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19: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또 하나의 복을 더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함께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가난한 어부 출신이 대부분인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바로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버린다고 하는 것은 원어적으로 보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보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버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지 못하도록 방해가 하는 것들을 마음으로부터 떠나보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까지도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하도록 방해한다면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버리면 얻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조건 버리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버리면 얻게 된다는 것은 주님을 위해 버리면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리고 싶다고 다 버린다고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서 버리면 주님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럴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누구십니까?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곧 주님이십니다. 이 세상은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말씀은 무에서 유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인줄 못 채워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주님을 위해서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없으면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습니다. 불안해서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에게 아멜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말렉은 전쟁의 경험도 한 번도 없고 무기도 없는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을 공격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그때를 기억하시고 아멜렉를 쳐서 모든 소유를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심지어 젖 먹는 아이와 모든 짐승들까지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입장에서 볼 때 진멸이지만 사울의 입장에서는 어떤 전리품도 취하지 말고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겨서 취하는 전리품은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꽤 큰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아멜렉왕인 아각왕을 죽이지도 않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과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을 진멸하게 됩니다. 곧 사울은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결국 버리지 못한 사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심리학 용어가운데 저장 강박증이 있습니다. 저장강박증이란 강박장애의 일종인데요. 어떤 물건이든지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계속 저장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쾌하고 또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저장강박증이란 버리지 못하는 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절약한다든 가 취미로 무엇을 수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저장강박증은 2013년 미국 정신과에서 처음 진단이 내려진 후 최근에서야 규정된 질환인데요. 일종의 성격장애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번 생기게 되면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세도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꼭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장 강박증의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가치판단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물건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보관해 두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에 대한 가치평가를 쉽게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가운데 저장강박증에 걸리신 분은 없으시지요. 그런데 혹시 어떤 물건이 아닌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버려야 할지 무엇을 취해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저장강박증에 걸려 있지는 않으십니까?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버려야 할지 무엇을 취해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저장강박증에 걸려 있지는 않으십니까?
스테판 폴란이라는 ‘사람이 8가지만 버리면 인생은 축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폴란이 말한 8가지는 이렇습니다. 첫째 나이 걱정을 버리라. 둘째 과거의 후회를 버리라. 셋째 비교의 함정을 버리라. 넷째 자격지심을 버리라. 다섯째 개인주의를 버리라. 여섯째 미루기를 버리라. 일곱째 강박증을 버리라 여덟째 막연한 기대감을 버리라. 폴란이 말한 것은 분명히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버려야 할 가치기준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치기준을 가지고 버려야 한다는 말씀을 들어도 좀 막연한 느낌이 드실 것입니다. 더더욱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가능한 가라는 생각을 하시면서 그것은 제자들이나 사역자들이 하는 것이지 나하고는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데 있어서 버려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세상의 취미 때문에 주일을 제대로 못 지키고 예배를 못 드린다면 세상의 취미를 버려야 합니다. 어떤 세상의 모임 때문에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 모임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명암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가로 막고 있다면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물질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면 물질을 버려야 합니다. 이외에도 저는 몰라도 여러분 자신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시대 가운데 버리시기를 요구하는 부분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버림으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이 땅의 복도 영생의 복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모든 것을 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얻었다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을 위해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위해 버리는 것은 도리어 얻는 것입니다. 내가 버리는 만큼 주님께로부터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손해 보는 인생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결코 손해 보는 인생이 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버림으로 하나님께서 더해 주시는 은혜와 복과 영생을 얻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