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예와 아니오

십일조를 드리려고 한다면.

J_카타리나 2021. 3. 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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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를 드리려고 한다면.

 

아담은 선악과 언약을 범하여 에덴 동편의 땅으로 쫓겨났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3:23-24)

이러한 사실은 이후에 그룹천사가 수놓아진 휘장으로 증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휘장을 제사장이 서있는 성소 사이에 드리우셔서

온 세상이 죄 아래에 있음을 나타내신 것이다.(출26:1, 36:35-38)

그러므로 옛 인류는 아래로 나서 휘장 밖에 세워진 땅에 속한 백성이다.(창5:1-32)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선언한다.(롬3:9)

 

옛 경륜은 죄 아래에서 시행된 경륜이다.

죄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경륜이 시행된 것이다.

이처럼 죄 아래에서 시행된 옛 경륜의 열매가 모세율법이다.(롬2:12)

모세율법은 옛 언약의 법이고 하나님께서 옛 인류와 옛 세상을 다스리신 통치의 법이다.

율법의 통치는 죄 아래에서 시행된 하나님의 통치이다.

죄 아래에서 시행되었기 때문에 율법의 통치에는 여러 한계가 존재하였다.

율법의 통치 질서에는 날과 땅과 사람 사이에 여러 장벽이 존재한 것이다.

날과 땅, 그리고 사람 간에는 거룩함과 그렇지 않음의 차등의 질서가 존재하였다.

 

율법은 옛 언약의 법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다스리신 통치의 법이다.

또한 죄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과 동거하신 동거의 법이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섬기게 한 생명의 법이다.

그러나 율법은 죄 아래에서 시행되었기 때문에 율법은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히10:4, 11)

율법은 육체만을 상관하는 육체의 예법이다.(히9:10)

율법은 아무로 온전케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연약하며 무익하여 폐하였다.(히7:18-19, 9:9)

율법은 개혁할 때까지 이스라엘에게 맡겨둔 것이었다.(히9:10)

개혁할 때가 언제인가?

종말이다.(롬3:21, 갈4:4-5)

율법의 통치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셔서

율법과는 다른 새로운 통치를 시행하실 때까지 집행하셨던 임시조치이었다.(갈4:4-5, 히9:10)

 

율법은 죄 아래서 시행된 옛 경륜이다.

휘장 밖 에덴 동편의 땅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시행하신 언약의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셔서

그들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셨다.(출19:5-6)

이방나라 가운데서 그들을 구별하셔서 자신과 좀 더 가까운 위치에 세우신 것이다.

이것이 제사장 나라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할 수 있는 입문이 무엇인가?

할례를 행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들과 종들이 할례를 행하도록 명하셨다.(창17:9-13)

만일 할례를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언약에서 끊쳐질 것이었다.(창17:14)

이러한 사실은 여호와께서 할례를 행하지 않은 모세를 죽이려고 하심에서 알 수가 있다.(출4:24-26)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성을 눈 앞에 두었을 때 율법을 선포하셨다.

이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라고 응답하였다.(출24:1-3)

이후에는 정식으로 언약을 체결하는 계약식이 시행된다.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가 피를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다시 한번 낭독할 때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라고 응답하여 언약이 체결되었다.(출24:4-8)

이에 모세는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리며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운 언약의 피니라”

라고 선포하였다.

이처럼 언약을 체결한 후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잔치를 벌였다.(출24:9-11)

 

여호와의 언약서에는

여호와께서 거주하실 성전, 여호와께 제사할 제사방식,

제사를 담당할 제사장, 제사장을 보조할 레위인,

그들의 삶을 위한 십일조 제도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성전제도를 존속케 하기 위한 제도이다.

십일조는 성전에 임재하시는 여호와를 제사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구약의 성전제도가 폐하였다.

성전제도의 폐함으로 제사장과 레위인, 그들을 위한 십일조도 폐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휘장의 제거 때문이다.(막15:38)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통치가 종결되고 만유가 하나가 되었다.

날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엡2:11-22)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고후5:17-19, 골1:17-20)

 

율법은 할례자인 이스라엘에게 맡겨졌다.(롬3:1-2)

그러므로 십일조는 할례자에게 요구하신 명령이다.

할례를 행한 자만이 성전에 나아갈 수가 있으며 십일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이다.

무할례자는 언약 밖에 있는 부정한 자이다.

그들은 성전에 나아갈 수도,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다.

만일 성전에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행해야 한다.

할례가 중한가? 십일조가 중한가?

당연히 할례가 중하다.

왜냐하면 할례를 행한 자만이 십일조를 드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십일조의 입문과정인 할례는 건너뛰고

그보다 소소한 십일조만 강조하는가?

왜 할례는 생략하고 돈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강조를 하는가?

 

십일조는 반드시 가나안땅의 소산물이어야 한다.

구약시대는 가나안과 이방 땅 사이에는 거룩의 차등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가나안은 거룩한 땅이고 이방 땅은 부정한 땅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거룩하게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언약 밖에 있는 이방 땅은 부정하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반드시 가나안에서 생산된 소산물이어야 한다.

성전을 보수하기 위한 성전세도 이스라엘의 화폐로 드려야 하였다.(출30:11-16)

예수님 당시에는 성전에 많은 환전상들이 있었다.

그것은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디아스포라와 이방인 할례자들을 위한 것이었다.(마21:12)

왜냐하면 부정한 이방화폐는 거룩한 성전에 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에 드려지는 모든 것은 반드시 가나안땅에 속한 것이어야 하였다.

 

어떤 이는 예수께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라”

고 하셨기 때문에(마23:23) 십일조를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씀을 예수께서 하신 시점은 십자가에 죽이시기 이전이다.

율법의 통치와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가 중첩되는 시기이다.

이러한 중첩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부활의 영으로 교회 가운데 온전히 거하시기 이전이다.

하나님께서 가리우셨던 휘장이 제거되기 이전인 것이다.

이는 죄가 온전히 속죄되기 이전임을 가리킨다.

 

이러한 중첩이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문둥병자를 고치신 후에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고 말씀하셨다.(마8:1-4)

또 율법 선생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도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

고 말씀하셨다.(마23:23)

이처럼 예수의 사역 시기는

모세율법의 통치와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겹쳐지는 중첩기이었다.

이러한 중첩기는 그리스도의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언제 그리스도의 때가 이르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이다.

 

십일조를 드리고자 하는가?

그러려면 구약성경(모세율법)이 명하는 대로 드려라.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인가?

할례를 행하는 것이다.

무할례자는 성전에 나아갈 수도,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다.

이는 무할례자는 부정한 자이기 때문이다.

무할례자가 드리는 십일조와 예물은 부정하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도 무할례자인 이방인의 기도를 듣지도 않으신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언약백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리려면 가나안의 소산물로 드려라.

이것이 구약성경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가나안땅은 거룩하게 구별된 언약의 땅이다.

가나안땅의 소산물이나 이스라엘 화폐는 거룩하다.

십일조를 화폐로 드리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이스라엘 화폐로 환전하여 드려라.

이는 한반도는 부정한 이방 땅이며 한국 은행권은 부정한 이방화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할례자로서 이방백성이다.

할례를 행하여 옛 언약에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옛 언약 밖에 있는 무할례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정한 자이며 한국은행권도 부정하다.

이 모든 것이 부정한 것은 하나님의 옛 언약 밖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일조를 드리려면 먼저 할례를 행한 후에 이스라엘 화폐로 드려라.

그것이 구약성경, 곧 모세율법이 말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율법의 통치가 시행되는 구약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할례를 행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옛 언약백성이 아니다.

우리는 모세율법에 순종하여 성전에 계시는 여호와를 섬기지도 않는다.

우리는 휘장 밖에 세워져서 종의 영을 받은 종된 백성도 아니다.

우리는 복음의 통치가 시행되는 신약시대를 살아간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은 새 백성이다.(엡2:6)

우리는 휘장 안 하늘에 세워지고 양자의 영을 받은 아들된 백성이다.

그러므로 옛 언약의 법인 십일조는 우리에게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