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6장 말씀묵상] 구별됨은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1-20절)
공동체가운데 특별히 구별 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한나라의 국가대표가 되어서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구별된 사람은 구별되었다는 특권만을 누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나라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면 올림픽 메달을 따든 따지 않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하셨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하심을 받을 것에 감사하고 특권도 누려야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나실인의 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실인이란 남녀 성별에 관계없이 특정기간이나 평생토록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맹세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나실인은 헌신한 사람은 자기 몸을 구별토록 하기 위해서 세가지를 멀리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는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소산을 먹지 말아야 했습니다. 두 번째는 머리를 깎지 말아야 했습니다. 머리를 깎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니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삼손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지만 드릴라에 유혹에 넘어가 머리를 깎기 우고 힘을 잃고 두 눈이 뽑혀버리게 됩니다. 세 번째는 시체를 멀리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나실인으로 헌신 사람은 그의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에서 그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부모형제의 시체도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구별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의도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옆에 있던 사람이 죽어도 머리를 더럽히게 되면 더럽혀진 일주일 뒤에 그 죄를 속하기 위해서 머리를 밀고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둘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하나는 속죄제물로 번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년 된 숫양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하나님께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실인이 자신의 의도하지 않아도 더럽혀 졌으면 그동안 나실인으로 살아왔던 삶이 다 무효가 됩니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3년을 나실인으로 살기로 서약을 했는데 2년정도 나실인으로 살다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몸이 더렵혀졌으면 머리를 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날부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처럼 나실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3절 이하에서는 나실인으로 헌신한 기간이 다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는 부분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의 몸을 구별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헌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가 서원한 대로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나실인으로 헌신 한 사람이 헌물을 드려야 할 부분을 어느 정도 정해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힘이 미치는대로 하면 된다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드려는 헌물 때문에 마음은 있는데 나실인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없도록 그 길을 열어놓으신 것을 보게 됩니다.
나실인은 서원한 기간이 종료되고 그 절차를 마치면 그 서원에서 놓임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서원기간을 마쳤다고 해서 어떤 특권이나 혜택을 누린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후에부터 아무렇게나 생활해도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평민으로 돌아가 나실인 일때에 마음가짐처럼 남은 여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성실히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어떤 대가를 바라고 행할 성질이 것이 아니라 평생동안 계속되어야 할 인간의 본분임을 시사해 줍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나실인의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영적나실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적나실인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영적나실인은 분명히 이 세상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 구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구별 삶으로 해야 합니다. 나실인들이 자신의 몸을 구별하기 위해서 구별된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말만 만치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지 못해서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영적나실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적어도 2가지는 행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절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의 풍조에 따라 세상이 그렇게 때문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금주, 금연은 기독교의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복음을 전하시면서 기독교들이 무엇인지 세상사람들과 구별된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 당시 술먹고 담배를 피부는 한국 사회를 보면서 금주, 금연 운동을 펼쳤습니다. 술은 마신다고 담배를 피운다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죄가 시작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것을 절제하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 부분에 대해 많이 무디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손해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타인중심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을 좀 손해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유익만 추구하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손해 좀 보며 살아야 합니다. 조금 바보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그 모습을 보고 겉으로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사느냐고 하지만 뒤에서 정말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이 마지막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말보다 행함입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영적나실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따라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나만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까지 욕을 먹게 되는 것이고 복음의 문을 가로 막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구별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