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신앙글)

[출애굽기 16장 말씀묵상] 원망은 결국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1-12절)

J_카타리나 2020. 8. 1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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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좋은 것을 좋게 여기고 싫은 것은 싫다고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잘되면 기뻐하고 못되면 원망하고 좌절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의 이 본성을 따라 살아갑니다. 특히 요즘 세대들은 더 한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본성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본성을 거슬러 살지 못하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앞에 말씀드렸듯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힘들면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친구를 원망하기도 하고 나라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런 원망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원망을 하면 안 됩니다. 사람을 원망해서도 안 되고 환경을 원망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결국 그 원망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허락하신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처해 있는 환경도, 내 주위 있는 사람들도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데 그것을 원망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마라에서 쓴물을 마시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던지게 하셔서 쓴물이 단물이 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백성들을 엘림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엘림은 사막의 오아시스였습니다.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엘림을 거쳐 이제 이스라엘백성들은 신 광야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가 둘째 달 십오일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을 한날이 첫째 달 십오일이니까 신 광야까지 오는 데 1달이 걸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자손들은 또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홍해 앞에서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원망한 적이었습니다. 마라의 쓴물 앞에서 또 이들은 원망했습니다. 이들이 원망하는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3절 말씀을 한번 보시면요.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지금 원망하는 것을 보면 좀 어패가 있습니다. 이들은 애굽땅에서 마치 고기를 배불리 먹고 떡을 배불리 먹었던 것처럼 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애굽에서의 비참했던 노예생활을 망각하고 그 시절을 미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간역자들의 혹독한 감독 하에서도 고기 끓이는 일과 떡 굽는 일에 종사함으로써 약간의 고기 맛을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예인 그들이 많은 고기를 먹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시절이 화려했던 것처럼 배불리 먹었다라고 자랑삼아 과장함으로써 애굽의 종살이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비굴한 노예근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들이 그 때 차라리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애굽의 장자 재앙이 일어났을 때 그때 차라리 애굽의 장자들과 죽는 것이 나아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은 구원해 준 것에 원망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참 기막힌 노릇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시면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여호와임을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원망이라는 단어 있습니다. 모세는 계속해서 여호와께서 너희 원망함을 들으셨다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직접 이스라엘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도 들으시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원망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는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의 원망을 들으시고 그것에 응답을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겉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망하시는 것을 들으시고 그 원망에 대해 응답을 주시지만 그 원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십니다.

고전10:1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스라엘백성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 가운데 원망하다가 멸망을 당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들과 같이 원망해서 멸망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원망 하는 자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모든 원망이 결국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이 원망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모세는 분명하게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너희가 우리를 향하여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어떤 환경가운데서 어떤 사람도 원망을 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그것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원망은 이스라엘백성들의 고질병이 아닙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원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자손 전체가 한 것처럼 표현을 해놓았지만 실제로 이것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이후에 나오는 말씀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원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것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도 함께 어울리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자족할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비천해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곧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경이라면 그것으로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원망은 결국 하나님께 하는 것인 줄 알고 원망하는 백성이 아니라 자족하면 어떤 환경가운데도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출애굽기 16장 말씀묵상] 원망은 결국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1-12절)|작성자 아름다운 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