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신앙글)

비전은 끊임없이 도전하게 합니다. (롬15:22-29)

J_카타리나 2020. 6. 8. 07:44
728x90

29:1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29:18) 여기에서 묵시란 말은 비전을 의미합니다. ‘방자히 행한다는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신중함이나 자제력을 상실한 경거망동을 의미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인간이 경거망동하게 됩니다. 마음대로 살게 됩니다. 반대로 비전이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비전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전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입니다.

비전이 무엇입니까? 비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대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라고 하면, 위대한 통찰력을 지닌 지도자란 뜻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의 시선은 오늘을 뛰어넘어 언제나 먼 곳으로 향해 있습니다. 먼 곳에 시선이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시선이 있는 거기에 자기 자신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비전이 없는 사람은 방자해집니다. 비전이 없다는 것은 그의 시선이 목전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감정대로, 욕구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삶은 방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전이 없으면 목회자든, 청년이든, 어떤 사람이든 방자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비전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비전을 향해 도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있었습니다. 서바나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비전입니다. 서바나는 지금 스페인을 의미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땅 끝은 로마가 아니라 서바나입니다. 바울의 비전이 처음부터 서바나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땅의 교회는 오순절에 성령강림사건이후에 태어났습니다. 교회가 탄생하고 계속해서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 가운데 중심을 이룬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도상에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가 되었지만 바울의 회심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나바가 바울의 대변자가 되어 그가 정말 변화되었음을 증명해주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말씀은 행1: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바울은 이 말씀을 붙들고 예루살렘에 시작해서 마게도냐 곧 유럽대륙을 걸쳐 로마에게 까지 복음을 증거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땅 끝 개념, 즉 스페인에게 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 할 마음을 품었습니다. 바울은 얼마든지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편하게 살 수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향해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살아가야 할 삶입니다.

비전이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어른들의 마음 한 켠에는 나와는 상관없는 말씀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비전은 어린학생이나 젊은 청년들이 가지는 것이지 나이 든 사람이 무슨 비전? 이렇게 말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2: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말세에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은 예언하게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게 하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100세 시대가 펼쳐집니다. 직장인들이 60세에 은퇴를 한다고 해도 100세까지 산다고 하면 40년이라는 세월남아 있게 됩니다. 40년의 시간을 하는 일 없어 빈둥빈둥 놀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은퇴이후에 제2의 인생을 살기위한 준비와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나의 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복음전파입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예수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그 모든 것이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도전할 수도 없지만 비전이 있으면 도전할 수 있을뿐아니라 비전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여러 번 너희에게 가는 길이 막혔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가는 길이 막혔다고 로마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때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서바나에 가야 하는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10장에 보면 고넬료에게 나타났던 천사가 있었습니다. 천사는 예수의 이름을 말하거나 구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특권이 없었습니다. 천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를 청하라는 말을 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베드로를 청하면 베드로가 비로소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증거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천사에게는 복음을 증거 할 특권이 없습니다.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찬508장에 후렴부에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복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복음증거의 사명과 비전은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특권이요, 세상에서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천국에 가서는 할 수도 없고 오직 이 땅에서만 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사명임을 우리를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비전의 종교라고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자체 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비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비전은 복음전파의 비전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겠다는 비전이 있을 때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비전을 소유함으로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비전은 끊임없이 도전하게 합니다. (롬15:22-29)|작성자 아름다운 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