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신앙글)

안식일과 주일과의 관계(2)

J_카타리나 2020. 5. 1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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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주일과의 관계(2)


성경은 창조하신 세계를 그 목표에 이르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셨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역사를 동행하도록 에덴에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에덴의 질서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누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경륜의 동반자로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선악과 언약을 파기하여 에덴 동편의 땅을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의 동편에 화염검을 든 그룹천사를 두어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무엇입니까?

역사의 진행 가운데서 아담과 하와는 옛 인류로 번성케 될 것이고

종말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에 앉은 새 백성으로 완성될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편의 땅,

곧 죄가 지배하는 질서의 땅에서 그들의 근본된 토지를 갈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들어온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의 성경의 기록은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셔서

어떻게 구원경륜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언약의 하나님으로 일하셨는지에 대한

구원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삶의 현장에 들어오셔서 그들과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역사의 진행에 따라

여러 모습과 방편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각 시대에 주어진 구원과 생명도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안식일 교도들의 주장.


안식일은 구약에서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하는 안식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한 후에

신약교회가 예배하는 날로서 주일을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 지를 살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신약성경에서 명령하거나 직접적으로 언급한 구절은 없지만

안식일과 주일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식일에 대하여 가장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이 안식일 교도들입니다.

그들과 안식일에 대하여 논쟁하면 개혁교회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혁교회는 성경이 일점일획도 어김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으며

특히 하나님께서 동판에 새기셔서 주신 십계명은

만고불변한 도덕법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혁교회는 율법에 대하여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만고불변한 도덕법과 제사법, 이스라엘의 사회법으로 구분하여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율법에 대한 이해는 종교개혁의 산물입니다.


예수께서는 십계명과 율법에 대하여 세 부분으로 구분하셨습니까?

율법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유대인들은 율법에 대하여 세 부분으로 구분하였습니까?

예수님이나 유대인들은 율법에 대하여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은 전체로 이스라엘에 대한 총체적인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체결하신 언약의 법이고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셨던 통치의 법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섬기도록 하였던 생명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 중에서 다른 계명을 바꾸지 않고

제4계명인 안식일만 주일로 바꾼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교도들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은 만고불변하다고 하셨는데

      왜 제4계명인 마음대로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느냐?”

고 공격합니다.

그들은

     “본래 때를 변경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세력이다.

      로마황제의 통치 아래에서 안식일을 지키려고 하다가는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지켰던 태양신에게 제사하는 날인 일요일을 기독교의 주일로 바꿨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로마황제로부터 생존권을 보장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말하는 주일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이방권세와 야합하여

      이방신의 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대체하여 생존권을 얻기 위한 것일 뿐

      진정한 기독교의 날이 아니다.”

라고 공격하면 답변하기가 참으로 난처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영원한 내 이름이라고 선언하셨다”

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에 대하여

우리는 종교개혁의 후계자로서 성경을 만고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고 있기 때문에 속수무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기록이다.


우리가 안식일에 대하여 구원 역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안식일 교도들의 주장에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

먼저 구원 역사적인 성경 해석 방법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하나님과 역사 속에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심은

역사의 진행에 따라 시대마다 다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하셨습니까? 모

세율법과 제도를 통하여 함께 하셨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세상에 속한 성소에 임하셔서(히9:1)

이스라엘을 휘장 밖에 세우시고 그들과 동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는 중

보자에게 자신의 영을 주시고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말씀하시고 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중보자 모세를 대하시는 관계가

이스라엘을 대하시고 일하시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처럼 종 모세를 이스라엘에게 보내셔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일하셨던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그 아들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셔서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갈4:4)

왜냐하면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셔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갈4:5)

그리하여 믿는 자들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섬기게 하셨습니다.(갈4:6)

그러므로 신약시대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해서만 말씀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이전에는 휘장으로 가리움 가운데 이스라엘을 대면하셨지만

이제는 자기 백성을 친히 대면하시고 교제하십니다.

이처럼 모세율법과 제도를 통하여 나타내셨던 은혜의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일로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교제하시는 하늘의 교제방식을 따라 우리를 대하시고 교제하십니다.


제4계명 : 제7일 안식일의 의미.


안식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창조세계는 그의 기쁘신 뜻대로 되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습니다.

창조세계 가운데서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주할 지성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7일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세상창조를 완성하시고 자신의 뜻대로 되어졌음을 인하여

아담과 함께 기뻐하셨던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결론이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날의 핵심이었습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셨으며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신 후에는 그들 가운데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시고 동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체결하신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된 백성이며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자신을 대리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제7일 안식일 계명을 명하셨습니다.

제7일 안식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6일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에 기뻐하신 것처럼

자신의 대리자인 이스라엘도 6일 동안 일하고

제 7일에는 자신의 처소에로 나아와서 기쁨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제4계명의 의미입니다.(출20:8-11, 신5:12-15)


성경이 안식일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날의 어떠함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리고 일하지 말고 쉬는 쉼에 강조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성전에서 쉴 틈도 없이 수고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기쁨에 이스라엘을 초대하셔서 기쁨의 교제를 나누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의 교제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게 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기쁨의 교제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발전적으로 진행되어서 그 완성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안식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상 창조를 완성하시고 제7일에 쉬셨던 에덴에서의 안식도

온전한 안식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죄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의미로는 완전한 안식이었지만

역사의 출발점인 에덴의 질서에서 주어진 안식이라는 면에서는 미완성의 안식이었습니다.


옛 언약에서의 일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일로 완성되었다.


성경은 만고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고불변하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

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은 역사적으로 발전할 때에만 불변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과 생명이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것과 동일한 질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과 생명은 저주입니다.

왜냐하면 옛 언약 아래에서 이스라엘이 짐승의 피에 의지하여 드렸던 제사는

죄를 없이하지 못하였고(히10:4, 11)

첫 언약에 의지하여 드렸던 예물과 제사는

드리는 자의 양심을 온전케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히9:9)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영원한 구원으로 완성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일 교도들의 주장에 대하여 바르게 변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면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요2:19)

이 말씀이 대하여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몸으로 새로운 성전을 지으실 것을 말씀하셨다고 해석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요2:21-22)

구약의 모든 율법과 제도는 무엇과 연결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성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소는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성소는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이고 핵심이었습니다.

성전이 헐리면 모세율법과 제도는 끝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산헤드린 공회의로부터 정죄를 받아서 죽으신 이유도

     “성전을 헐라”

고 하였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 칭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과 가르침으로 인하여

산헤드린 공회의는 율법을 부정한 이단의 괴수이며

하나님의 성소를 훼방한 참람한 자일뿐 아니라

신성모독죄를 범한 불의한 자로 판결하여 사형을 언도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심으로 옛 경륜의 시대를 종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통하여 모세율법과 제도를 통하여 경영하셨던

옛 시대, 곧 율법(모세)의 시대가 끝난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세율법과 제도를 폐하심은 율법의 일부를 남겨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거룩한 정신을 계승한 것도 아닙니다.

율법을 그 전체로 끝내시고 종결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 전체로 하나님께서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이스라엘을 대면하셨던 옛 시대,

이스라엘을 종처럼, 어린아이처럼 대하셨던 옛 시대에서의

언약의 법이고 통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제도가 끝나면 모세율법과 제도는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판에 새겨진 안식일 제도라고 할지라도 신약시대까지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도들이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율법과 복음을 대비하여 증거하는 내용이고 강조점입니다.


성경은 구원 역사적이고 기독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모세시대에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 아래에서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처럼 모세시대에서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본문을 모세율법의 언어와 개념을 따라 이해한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처럼 구원 역사적이고 기독론적으로 해석할 때에

구약성경은 신약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세에게 속한 옛 언약백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새 언약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구원 역사적이고 기독론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해석방법입니까?

역사는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을 향하여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약백성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도 수시로 변화됩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서

완성된 역사의 시점에서 이전의 역사와 내용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해석할 때에 이전 역사의 의미가 바르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방식은

마치 어렸을 때 아주 짓궂은 개구쟁이가 전쟁놀이할 때에 골목대장을 하였는데

그가 성장하여 육사를 거쳐서 장군이 되었다면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아,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장군이 될 소질이 있었다”

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깡패조직의 보스가 되었다면

     “어렸을 때부터 싸움질이나 하더니 결국은 그 길로 들어섰구나”

라고 수군댈 것입니다.

이처럼 완성된 시점에서 이전의 일들을 바라볼 때

이전의 일들은 그 의미가 바르게 해석되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식일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하였습니까?

구약의 안식일을 주일로 대체하였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주일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구약의 안식일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과 주일을 이름과 날짜만 바꾸고 내용은 그대로 물려받는 식으로 안식일을 신약화한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일과 주일에 대하여 줄긋기식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장로교 헌법에는 주일을 지키는 규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방식에 의하면 진정한 성경은 구약성경이고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해석하고 보조하는 위치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구약성경이 먼저이며 그 완성이 신약성경입니다.

신약성경이 바르게 해석될 때에 구약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이 말은 구원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기독론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구약성경은 한낱 유대교의 경전일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재해석될 때에만 구약성경은 신약교회에게 권위를 갖습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구약성경 액면 그대로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교한다면

그것은 사탄의 가르침이고 우상의 속삭임입니다.

ㄱ그러한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완성하신 구속경륜을 대적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세에게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은 해석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변질시켜서 유대교화하려는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증거하지 않는 이외의 말을 가르치는 자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으리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갈1:8)



하늘에 속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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