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신앙글)

육신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영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롬8:1-11)

J_카타리나 2020. 4. 2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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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무엇인가에 이끌림을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에 이끌림을 받느냐입니다. 곧 무엇을 따라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육신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을 따라간다는 것은 성령님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학자 로이드존슨은 로마서를 마치 여성들의 손가락에 끼여 있는 반지와 같이 귀한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로마서 8장은 반지가 빛을 받아 반짝이는 부분과 같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8장을 이해할 때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 라고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죄를 짓지 않는 다는 말이 아닙니다. 죄가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좌절하거나 넘어짐이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법으로 인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그 영혼이 멸망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는 광복절이 되면 대통령령의 의한 특별 대사면이 이루어집니다. 그때 풀려난 사람들이 죄가 없어졌거나 의로웠기 때문에 풀려난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그들이 지은 죄의 대가대로 하면 10년 혹은 5-6년씩 더 감옥살이를 해야 되지만 대통령의 특별법으로 이들의 죄를 용서해 준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를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성령의 법으로 해방하셨다는 말씀은 바로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죄를 지었고 대가를 마땅히 지불받아야 하는 죄인들이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셨다는 것입니다. 어제 새벽에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하고 절망하는 것은 롬7장을 끝맺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사망의 법에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 줍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씀의 제목입니다. 육신을 따라는 사람이 아니라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육신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을 따르는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왜 우리의 육신을 이렇게 정죄하며 육신의 생각을 불신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타락했을 때 그 영혼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영과 육이 함께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것은 육신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거듭난 겁니다. 육신은 타락한 죄의 근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므로 그 생각이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3장에 보면 예수님과 니고데모 대화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는 육신이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육신은 아직도 사탄의 지배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기도 하자고 할 때 좀 더 쉬자고 하고, 전도하자고 할 때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말씀을 배우자고 할 때 바쁘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를 앞세웁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육신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영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곧 이 말씀은 서론부분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의 생각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속에 충만히 거하 실 때 우리는 비로소 영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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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동안을 예수님과 함께 하였지만 그들은 영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그들은 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들은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였고 성령을 받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기 전과 받은 이후는 180도 달랐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 그들은 육신의 사람이었지만 성령을 받고 난 이후 그들은 영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고 있는 저와 여러분 속에 이미 들어와 계십니다. 성령님은 이미 들어와 계시지만 인격적인 분이시라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이 나의 삶을 이끄시도록 나의 왕좌를 내어드리지 않으면 성령은 가만히 계십니다. 성령님은 무시당하시면 가만히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영을 따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성령님을 환영하고 인정해 드려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나의 삶을 이끌어 달라고 끊임없이 성령에게 요청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충만이 거하시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모든 생활의 영역이 영의 생각을 따라 살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의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면 우리는 사단의 종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육신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영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 진정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