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킴 없는 입술만의 믿음에서 떠나십시오.
감나무 아래 누워...
입만 벌리고 있으면 감이 입으로 정확히 떨어질까요?
아마 상식을 아는 분이라면...
보편적으로 이 말에 동의할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혹, 확률상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률이란 것은 이 땅의 물질세계에 합당한 이론일 뿐,
영의 세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이론입니다.
영의 세계는 '모' 아니면 '도'든지 차겁든지 뜨겁든지,
천국에 가든지 지옥에 가든지...
극단적인 양단(兩斷)만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감이 입으로 떨어질 확률은 제로입니다.
우리가 감나무에 올라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내팔다리가 멀쩡한데 누워서 입만 벌리고 있을 겁니까?
그렇다면 팔 다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팔다리를 왜 주셨습니까...
감나무 아래 누워 입만 벌리고 있으면
주님께서 감을 입에 넣어주는 것이 은혜일까요?
적어도 현대 기독교는 그것을 은혜라고 가르칩니다.
감나무에 올라가는 것조차 교만이라고 가르칩니다.
올라가려고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그저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면 다 은혜로 된다고 합니다.
입술로 머리로 관념으로만 믿음, 은혜, 사랑을 외칩니다.
이것은 분명히 믿음과 은혜를 잘못 이해한 방종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대하여 정말 크게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팔다리를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 비쥬얼상 보기에만 좋으라고 주셨습니까?
팔다리의 쓰임새가 분명히 있기에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다리가 있어야 뛰거나 걸어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팔이 있어야 무엇을 먹든 뭘 하든 반드시 필요합니다.
즉, 팔다리를 사용하여 나무 위에 올라가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팔다리를 주신 것...
이것이 매우 큰 은혜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유의지는 영적인 팔다리입니다.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너무나 큰 영적 은혜의 베품입니다.
감을 따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적으로 나태하여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지 말고
내 자유의지로 주님을 간절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입만 벌리고 있는 나태한 자에게 감을 넣어주지 않습니다.
감을 은혜로 다 넣어준다면, 주여주여 하는 모든 교인들은
전부 감을 먹어야(구원받아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자는 지극히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즉, 아무에게나 감(성령/구원)을 입에 넣어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불러주신 주님께서 손을 내밀 때
이에 화답하여 손을 잡고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손을 잡고 매달리는 것, 회개하며 주님을 간절히 구하는 것...
그것이 감나무에 오르려는 모습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중략...................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9-13절)
만약, 주님께서 감을...
나태하게 입만 벌린(입술로만 주여주여) 이에게 은혜라 하며
선심 쓰듯 그냥 막 넣어줬다면 굳이, 예수님께서...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란 말씀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입만 벌리고 있으라,
그러면 감을 너희 입에 넣어줄 것이니...그것이 믿음이니라"
다시 말씀드리면...
"너희는 나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지도 말라!!!
뭔가 하려는 것은 교만이니라...
입술로 주여주여만 하면 내가 너희에게 알아서 성령을 주고
구원시킬 것이니 뭔가 하려는 것은 교만이니 시도조차 말라
그것이 믿음이니라"
만약, 이런 식으로 성령을 주신다면
굳이 우리가 주님을 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 교회만 다니며 세상의 흐름대로 살다 보면, 주님이 알아서
은혜를 주셔서 구원받을 텐데 뭐하러 주님을 구합니까...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감(성령/구원)을 따기(받기) 위해 감나무에 올라가라는 말씀입니다.
즉, 나를 단호히 부인하고 육의 죄로부터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나를 포기하지 않고 달콤한 육 가운데 있길 원하면서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죄 많은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므로, 주님 스스로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대속제물이 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친히 이 땅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기독교인들도 복음으로 불러주셔서
주님을 알게 되었고, 거리를 떠돌다(세상 속에서 살다가)
혼인 잔치(교회에 다님)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흰옷(거듭남)을 입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잔칫집에 불려왔다고(교회만 다닌다고) 흰옷을 입은 게 아닙니다.
잔칫집에 들어왔다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흰옷을 입지 않고 어찌 구원받습니까...
잔칫집에 왔으면 그에 맞게 깨끗한 흰옷을 입는 게 도리입니다.
더러운 옷을 입고 어찌 잔치를 누리려고 합니까...
다만,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길 뿐입니다.
이들이 왜 흰옷을 입지 않았습니까...
여전히 세상에 미련을 두고 회개도 없이 육의 속성대로 살면서
잔칫집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나무 아래서 입만 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나태하게 입술로만 주여주여 했기 때문입니다.
"종들이 길(세상)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전도) 혼인 잔치(교회당)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22장 10-13절)
복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죄인을 불러 회개로 이끌어 구원시키려는 매우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죄인이 죄인인 채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흰옷(거듭남)이 입혀져야 가능합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장 32절)
그렇다면 죄는 또 어떻게 사함받을 수 있습니까...
그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흘린 보혈 피의 의미를
머리로 인식만 하면 자신에게 보혈 피가 뿌려진 것이기에
우리의 죄가 눈 녹듯 모두 사라진 것입니까?
그 이후부터 우리는 죄로부터 면피 되었기에
죄에 대한 죄책감도 없이 그걸 자유함이라고 인식하여
육의 죄성에 대하여 부담감 없이 그대로 살다가 죽으면
구원받는 것입니까?
우리는 정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걸 그리스도 보혈 피의 은혜라고 굳게 여기면서
구원을 확신하다가는... 그날이 되었을 때
나의 확신적 계산과 전혀 다른 참혹한 광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헛된 확신에 속아서
지옥으로 향하는 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 광경을 실제 목격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간증 참조- http://cafe.daum.net/arro75/VtSw/2
이래서는 안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 피를 인지하는 것을 믿음이라 착각하여
내 죄가 사해졌다고 확신하지 마십시오.
보혈 피는 아무에게나 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에게나 부어지면 이 땅의 그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만 인지하면 다 보혈 피의 혜택을 받고 구원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원받을 자가 매우 적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당연히 그런 것입니다.
왜 적은지 그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믿노라 하는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장 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
"나더러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장 21절)
그날에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가 아닌,
말씀대로 행하는 자라야 구원받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 편히 쉽고 간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말씀을 행하는 것(순종하는 것)이 내 의지와 능력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예수님은 절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행(순종)하라고 하십니다.
불가능한 걸 뻔히 아시면서도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이는 성령으로 거듭나면, 내가(성령) 너희 안에서 행하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무 장치도 없이 무대뽀로 행하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성령)을 주며
그 몸(육적 마음)에서 돌 같은 마음(육의 속성)을 제거(회개하게)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성령의 열매 즉, 성품)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11장 19-20절)
이처럼 주님(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
못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무엇이든 다 가능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장 26절 / 마가복음 10장 27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그렇습니다...
위 말씀 그대로 성령을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허락하셔서
사람의 굳은 마음이 아닌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성령의 열매)을 주시고
주님의 능력을 힘입게 하여, 거듭난 자를 통해...
말씀대로 행하게(순종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냥 머리와 지식으로 주님을 인지하여 동의하고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잠언 1장 23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에스겔 33장 11절)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위의 말씀처럼...주님은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나를 단호히 부인하고 이 땅의 죄의 습성에 대하여 미련 갖지 말고
돌이켜 회개하며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들을 만나주셔서
죄를 사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 주님께서 나를 통해 순종하도록 하려면
돌이켜 회개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단호한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상태까지 온 거룩한 성도가 바로 보혈 피의 은혜에 힘입어
죄가 사해지는 것이며, 최후에 택함을 받아 구원받을 백성입니다.
결코, 머리로만 동의하고 인식하여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며
보혈 피의 은혜로 죄 사함 받았다고 확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돌이켜 회개하는 마땅한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부디...
머리로만 인식하는 지적 동의만으로 그걸 믿음이라 단정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반드시 회개 후, 성령으로 거듭나...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실상으로 오셔야 믿음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주전자 안에 구정물이 들었다면 반드시 구정물이 나오게 되어있고,
맑은 물이 들었다면 반드시 맑은 물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에 대한 증거이고, 실상으로 드러나는 열매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린도 후서 13장 5절)
평소 삶으로 드러나는 열매로 진짜 거듭난 믿음이 있는가 스스로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즉, 주전자 안에서 구정물이 나오는지 맑은 물이 나오는지...
구정물이 나오면서 맑은 물이라 확신하는지
열매로 보아 자신을 돌아보라는 의미입니다.
아마 바울 사도가 사역하던 그 시대에도... 지금처럼 믿음이 있다고
착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착각한 사람들도 지금처럼 지식으로는 예수님을 알아 인정하고
입술로만 믿노라 하며 주여주여 했던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것은 믿음이 아니니, 단호히
자신에게서 나오는 열매로 확증하라고까지 권면할 정도입니다.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영적으로 나태하게
감나무 아래 누워 입만 벌리고(은혜로 알아서 되겠지) 하지 말고,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내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며 주님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구하려는 의지 자체도 이미 은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가 주님을 구하기 위해
간절히 감나무에 오르려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 스스로 죄 사함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도 이미 잘 아십니다.
우리 스스로 못 오른다는 것(스스로 거듭나지 못함)도 이미 아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무에 오르려는 그 간절한 마음의 중심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회개하도록 하시며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무조건 은혜로 다 된다 하며...
회개도, 주님을 구하려는 마음도 없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영적인 나태함은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교만한 모습입니다.
부디... 깨어서 간절히 회개하고 주님을 구하십시오.
호흡이 멈추면 구하고자 해도 더이상 구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사람은 당장 내일 나의 운명을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내일 내가 어찌 될지 우리 모두는 전혀 모릅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주님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기회의 시간입니다.
출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랑별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