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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24. - 켄트 너번

J_카타리나 2018. 4. 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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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24. - 켄트 너번
정승현 옮김 발행처: 한마음사 12. 정신적 여정 나는 한 때 영국령 콜롬비아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몇 달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수도사들을 위한 조각을 만들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정신적 전망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것은 노동의 정신적 리듬에 자신을 몰두함으로써 이를 실행하는 사람을 신이 데려간다는 엄격히 계산되어진 전망이었고, 오랜 세대 동안에 믿음의 운율이 만들어낸 외피같은 베네딕트회의 영성에서 기도자들은 자신이 산화해버릴 때까지 기도를 드렸다. 그곳은 마치 위대한 신들과 직면하는 데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더이상 들리지 않게될 때까지 한없이 울 것처럼 만드는 곳이었다. 나는 베네딕트회의 영성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 영성의 재료들은 너무 어두웠다. 그러나 엄격한 수도원장이 한 번은 내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 "이 조직에 머물러 보십시요. 당신을 깨끗하게 할겁니다." 그의 말은 옳았다. 비록 외국 땅을 지나쳐 가는 여행자처럼 단지 그런 믿음의 표면에 접근했을 뿐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진실속에 살아있는 위대한 신에 대해 차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캠프의 불빛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단지 거대하지만은 않은 평안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는 정신적 연대의 광활함에 닫혔던 마음이 열려졌다. 내 귀에는 베네딕트회 영성의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완전한 화음이 깃든 천상의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계속 머문다면, 나는 곧 그 음악의 일부가될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베네딕트회의 기독교 신앙은 나의 악기가 아니었다. 나는 곧 수도원에서 보낸 추억들과 함께 그곳에서 돌아왔다. 나의 정신적 음악은 그것과는 달랐고, 나에겐 연주해야 할 다른 악기를 발견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진실을 엿보았고, 그 진실은 정신을 위해 아름답게 공예된 악기였다. 내가 그 악기의 연주를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그 악기의 아름다움이 덜하거나 현실성이 적어지는 건 아니다. 그 악기는 신의 교향악에서 자기 자신의 부분을 가진다. 만약 오케스트라에서 베네딕트회의 높은 악기음이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그 곡은 좋지 못한 음악일 것이다. 만약 너의 정신적 악보에 소리를 줄것 같아 보이는 전통을 만난다면, 너는 그것을 따르기를 결코 두려워하지 말거라. 종교적 전통이 존재할 수있는 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정신적 진실의 목소리가 내포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서 말한 바다로 통하는 길을 제공하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위해 길 위에다 이정표까지 만들어 두었다. 만약 너의 정신을 확장할 수 있는 전통을 발견한다면, 그것에 네 마음과 함께 너의 전부를 주거라. 그 전통의 성서를 읽어라. 그들의 예배에 참가하거라. 그것이 정신을 형성하는 방법에 네 자신을 맡기거라. 그러나 신에 대한 믿음이 단지 마음의 고독에 기초한 조용하고 개인적인 종교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그 길로 들어서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라. 자신의 신을 직접 만나는 예언가들과 환상가들과 신비주의자들의 지혜를 구하고, 매일 신의 경험에 더욱 접근하도록 허락하는 마음의 습성을 기르거라. 그러나 항상 다음을 기억하거라. 정신적 성장은 단지 실행을 통해서만 연마되고 완성된다는 것을. 도구처럼, 그것은 사용해야만 녹슬지 않는다. 길처럼, 그것은 걸어야만 하는 것이란다. 기도를 통해서든, 묵상을 통해서든, 예배를 통해서든, 선행을 통해서든, 반드시 자신을 정신적으로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신적 통찰력은 너의 믿음을 실행하는 훈련이 충분히 쌓일 때까지는 더이상 깊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네가 길을 잃었다고 느끼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너는 그 길을 계속 가기에 너무 지쳤거나, 혹은 다른 일이 그 보다 더 중요하게 보일 수도 있다. 아마 네 믿음이 단지 순간적 감상이었다고 믿기 시작할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발생할 때, 네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말거라. 너의 삶 전체가 정신적 여정이고, 너는 지금 가능성이 풍부한 땅과 마찬가지로 불모의 땅에 와있을 뿐이다. 네가 시작한 길을 되돌아가려고 하지 마라. 단지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신념과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너의 길에 충실해야 한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그 길을 가거라. 그리고 반드시 방향을 바꾸어야만 할 때가 오면 그때 발길을 돌리거라. 그러나 바다를 찾는 것만은 결코 포기해선 안된다. 네가 신에게 더 가까이 갈 때, 바다의 속삭임은 더 커지고 그 존재에 대한 확신이 더욱 자라날 것이다. 네 자신이 기대했던 만큼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 길에 있게 될 것이다. 아마 너는 자각함으로써 혹은 원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신을 믿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너는 인간적 존재로서 혹은 많은 사람의 동질적 경험의 통일체로써 신에게 이끌릴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로 이끌리든 간에, 중요한 건 네가 어디론가 이끌린다는 점이다. 불교인들은 장님들이 자기들이 각각의 부분에 대해 만지고 느낀 바에 의해 하나의 코끼리를 묘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각각은 자신이 만져본 부분에 따라 코끼리를 묘사한다. 바로 이것이 신에 대해 알기를 원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오직 하나의 진실만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해서 신을 찾는 것을 거부하지는 말거라. 우리는 다원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고, 진실들은 - 정신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그밖의 진실들은 - 다른 사람에겐 다른 방식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낯익은 냄새와 희망으로 풍족한, 태양이 비추는 날들처럼 자라나는 길을 발견하거라. 그 길을 따라가거라. 오직 바보만이, 눈이 따갑다는 이유로 태양이 비추는 길을 걸어가지 않는 거란다.
출처 : 好學의 智慧硏究所
글쓴이 : 잔잔한 호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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