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5. - 켄트 너번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5. - 켄트 너번
정승현 옮김
발행처: 한마음사
3. 강인함이란 (A)
어느날 나는 구멍가게 밖의 좁은 거리에서 서로 밀치며 다투는 한 무리의 소년들을 보았다.
많은 소년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혼자뿐인 소년은 몸짓으로 주위를 위협하고 있었지.
마치 자신의 공격자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라도할 것처럼.
그러나 그 소년이 상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소년의 주위를 둘러싼 다른 아이들은 그를 조롱하면서,
그에게 덤빌테면 한번 덤벼보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그 소년을 덮쳐서 사정없이 때리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마음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날뛰기 위한 첫번째의 구실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나이가 지긋한 중년 남자 한명이 그들의 곁을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 싸움을 말렸다.
소년을 조롱하던 아이들은 그 사람을 보더니 슬그머니 달아났다.
혼자 남은 소년은 비록 그의 공격자들로부터 풀려나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안전하지는 못하다고 느끼는 듯 했다.
왜냐하면 그의 공격자들은 아마도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그를 기다릴테니까.
나는 그 싸움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단다.
그리고 난 그 원인이란게 그리 중요하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한단다.
그들이 싸움의 과정에서 보여준 욕지거리와 잘못된 행동들에 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랜 세월의
- 아이들은 그들이 가진 신체적 힘의 크고 작음에 의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측정한다 -
관행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 것은 그다지 좋지 않은 관행이며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기보다는 슬프게 만드는 통념이란다.
그러나 어찌됐든,육체적 강함을 그런 식으로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생물학적 표현에서 아주 중요한 것으로 지금껏 잔존해왔고,
심지어 우리는 내부에서 그러한 신체적힘이 용솟음치는 걸 느끼길 무엇보다도 제일 좋아했었다.
지금까지 그것이 우리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모습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세대동안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감지되는 강인함 -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위한 강인함,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는 강인함,
우리의 주변 세계를 지배하는 강인함으로 정의된 남자라는 통념과 함께 살아왔다.
다른 사람보다 더높이 오를 수 있는가, 더 많이 운반할 수 있는가,
더 빨리 달릴 수 있는가,더 오래 일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남자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보다 강한남자일 수 있었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경험할 때, 눈물을 얼마나참아낼 수 있는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로 강한 남자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세상에서는 강인함의 이러한 형식이 더이상 필요치 않다.
우리는 누가 승리할 것인가를 보기 위한 원초적 전쟁에서,
반대 세력에게 힘으로써 대적해야만 했던 생존의 물리적 현상에 더이상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육체적 강인함의 위대함보다는 정신적 강인함의 위대함을 더욱 필요로 한단다.
내가 여기서 두 가지의 간단한 예를 들어보마.
너는 아마 내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지난 주에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단다.
나는 금요일 밤에 잡혀진 실내악단 연주회의 입장권을 두장 갖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주회를 좋아할 만한 사람들은 다들 선약이 있거나 다른 일로 바빴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음악회의 입장권이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그냥 버릴 수도 있었고, 아니면 혼자서 음악을 들으러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것을 선택하건 나에겐 가책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날 아침 나절 대부분의 시간을 그 문제를 회피하면서 보냈다.
지갑 안에서 아무런 죄없이 쳐박혀 있는 입장권을 잊어버리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정오가 다가오자 그 입장권은 수천 파운드의 무게로 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차에 올라 탔고 근처의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나는 2층의 간호사 대기실에 가서 수간호사를 찾아냈다.
"여기에 잠깐동안 외출할 수 있고, 음악을 좋아하고,
또 낯선 사람과 함께 연주회에 갈 마음이 있는 요양자가 있을까요?" 하고 내가 물었다.
근처에 있던 간호사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는
내말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요양자들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에드너?, 프로랜스? 죠? 몇 분 후에 그들은 에드너가 제일 적합하다고 결정했다.
우리는 식당으로 가서 에드너에게 연주회에 갈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아니요, 난 원치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낯선 사람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으로 우리는 프로랜스를 선택했다.
우리는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놓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 정도였고, 거의 완전한 장님이었으며,
4인치 정도되는 밑창을 가죽끈으로 묶은 무거운 정형외과용 구두를 신고 있었다.
"프로랜스, 이 젊은 청년이 오늘 밤에 있을 음악회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다는 군요.
간호사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당신이 함께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해요."
나는 간호사의 말에 웃으면서 말했다.
"요양원이, 내가 젊은 청년이라는 소리를 듣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장솝니다.
프로랜스는 나를 향해 그녀의 무거운 안경을 돌렸다.
"정말요?" 그녀가 말했다.
"좋아요, 가겠어요. 나는 한동안 데이트를한 적이 없었어요."
우리는 잠시 음악회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고,
그녀가 내차에 타고 내릴 때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나서는 그녀를 데리러 올 시간 약속을 정했고
남겨진 그날의 업무를 마감하기 위하여 그곳을 떠났다.
약속했던 7시30분에 나는 다시 요양원으로 왔다.
프로랜스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어둠 속에서 휠체어에 앉아서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녹색 면장갑을 낀 손으로 지갑을 꼭 쥐고 있었다.
우리는 간호사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연주회 장소를 향해 그곳을 떠났다.
모든 일이 부드럽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프로랜스는 나의 차에 무사히 탈 수 있었고 휠체어는 트렁크에 그럭저럭 집어넣을 수 있었다.
연주회의 안내자 한 사람이 나를 도와 음악관 안으로 프로랜스를 데리고 갔고,
내가 앉을 만한 장소를 찾는 동안 그녀의 곁에 계속 있어 주었다.
프로랜스는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그녀의 휠체어에 앉아있기로 결정했다.
나는 통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었다.
불이 꺼질때까지 우리는 공통의 화제거리를 꺼내어
각자가 경험한 사람들과 장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주가 시작될 동안 나는 음악회의 프로그램을 그녀에게 찬찬히 읽어주었다
- 비발디, 바흐, 드보르작, 베토벤...
그런 다음 음악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 반 동안 프로랜스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무대를 응시하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볼 수는 없었지만 몇해동안 들을 수 없었던 음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에는 엷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음악에 몰두하여 결코 장갑을 벗거나 지갑을 내려놓지 않았다.
연주회가 끝나고 박수갈채가 잠잠해진 이후에,
그녀는그 연주회의 프로그램 한 장을 자기에게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물론 그것을 읽을 수가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 이야기는 더 이상의 에피소드가 없다.
나는 그녀를 다시 요양원에 데려다 주었고, 그녀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간호사들은 휠체어를 밀며 그녀와 농담을 주고 받았고
그녀를 다시 그 어두운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의 녹색장갑은 이제 그녀의 지갑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지갑 아래, 즉 그녀의 무릎 위에는 얄팍한 연주회의 프로그램이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