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친구, 교회가 왜 이럴까?” “친구, 교회는 이런 데라네.”
“친구, 교회가 왜 이럴까?” “친구, 교회는 이런 데라네.”
[PROFILE]
참 다르다. 그런데 참 잘 어울린다. 둘은 서로를 잘 안다.
둘은, 나도 모르는 나를 아는 서로의 ‘지기’知己다. 박영선 목사와 김정우 교수를 만났다.
둘은 각자의 자리, 목회와 교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러났다.
목사와 신학자로 살아온 그들의 지난날을 경청했다. 둘의 이야기는 ‘교회’로 모아졌다.
둘의 남다른 우정이 발산하는 ‘아우라’를 되도록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둘의 대화 ‘말투’를 최대한 살렸다. 이날 둘의 대화의 자리에는
후배 목사이자 후학인 박혜영 목사(산오름교회)가 경청자로 함께 참여했다.
대화중에 간혹 “존대”가 섞이는 것은 박혜영 목사에게 시선을 맞출 때였다.
“내가 성경에 대해 목말랐다면, 박영선은 교회에 대하여 목말랐다.” 2015년 1월 11일, 남포교회 30주년 설교에서 김정우 교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두 분의 대화 주제는 ‘교회’와 ‘성경’입니다. 성경에 대해 갈급하신 한 분은 성경학자로 성경에 파묻혀 살아오셨고, 교회에 목이 타신 한 분은 교회를 붙잡고 살아오셨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올해, ‘성경’과 ‘교회’는 우리가 무엇보다도 깊이 생각해야 할 근원의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서, 너무 익숙해서 너무나 뻔한 모범 답안만을 읊조리지 않나 싶습니다.
김정우: 오늘 참 뜻 깊어요. 둘 다 은퇴하고, ‘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매듭의 자리가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그리고 그 매듭의 자리가 내 친구하고 또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구나.’
내가 어젯밤부터 ‘박 형은 나에게 어떤 친구인가?’ 이걸 생각해 봤어요. ‘친구’라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하나지만 한문에는 너무나 많아. 고우故友, ‘오래된 친구’도 있고, 심우心友, ‘마음이 통하는 친구’도 있고, 너무너무 많더라고. 근데 내가 하나를 발견했어. 우리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멋진 ‘친구 단어’가 있었어. 그게 뭐냐 하면, 집우執友야 집우. ‘집’은 ‘집도하다’ 할 때의 그 ‘집’, ‘잡을 집’이야. 그러니까 ‘집도하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단어야? 아무나 집도 못해요. 그 ‘집’이야. 그리고 집사執事라고 할 때, 그게 보통 ‘집’이 아니더라고. 요즘에는 아무나 다 집사한다고 하지만, 사무 전체를 다 잡는 사람이 집사야. 그리고 집정관執政官, 정사 전체를 잡는 사람이 집정관이지. 이 ‘집’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멋졌어.
그러면, 박 형하고 나는, 누가 잡았을까? [모두 웃음] 박 형이 나를 잡았나? 내가 박 형을 잡았나? 나는 기억이 잘 안 나, 누가 처음 누구를 잡았는지…. 그렇지만 어쨌든 권성수[동신교회 담임목사]와 박 형과 우리 셋은 서로가 잡았고 서로가 잡힌 바 되었는데, 이게 평생 가네.
이 ‘집우’가 한문에서는 굉장히 고급 단어야. 이 단어가 〈예기〉에 나와요. 〈예기〉 ‘곡례’ 상에 어떤 말이 있냐면, “‘집우’라 하는 것은, 칭기인야稱其仁也라.” 이런 말이 나와요. “집우’라는 것은 인仁이다”라는 뜻이지. 유학의 가장 핵심 개념이 ‘인’인데, 어떻게 ‘집우’가 ‘인’이 될까? 인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큰 개념인데, 그 큰 개념 속에서 ‘인’을 친구에게 적용을 한 거야. 요즘에는 친구 사이에도 인이 없는 시대가 되었어. 친구가 없어질 수밖에 없는 시대인 것 같아. 우리가 너무나 실용주의 사회에 살고, 일회성 사회에 살고, 모든 만남이 짧은 시대에 사니까…. 그런데 정현이라는 유학자가 집우칭기인야執友稱其仁也를 설명하면서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동지’래. ‘지동자’! 뜻이 같은 자! 한학의 세계에서 집우라는 것은 ‘뜻이 같은 사람’이야. 그리고 그 뒤에 ‘지동도합지우라!’ ‘뜻이 같고 도가 합한 자’다. 그러니까 뜻과 도가 같이 가는 거야. 뜻과 도를 합한 사람이 집우야. 그래서 박영선은 나에게 집우가 아닌가….
그리고 박 형 같은 경우는 집요한 분이잖아. 말씀에 집요한 분이고 신념에 집요한 분이고. 나는 사실 그렇게 집요한 인간은 아니야. 나는 상당히 좀 “후루꾸”에 가까워. [모두 웃음] 내 아내가 나에 대해서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거는…, 나는 융통성이 너무 많아. 내가 어떤 뜻에 있어서 집요한 거지, 내가 성격적으로 그렇게 집요한 인간은 아니야. 집요함은 박 형이 나보다 훨씬 더 강한 거 같아. 내가 볼 때는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게 많아. 그런데 박 형은 한 가지가 맞아. 나는 처음부터 복잡계를 경험했고 혼돈에서 질서로 왔으니까. 나로 말하자면, 인생의 대혼돈을 경험하다가 예수를 만났으니까. 나는 혼돈세계도 이해가 참 많이 되는 거고, 뭐 이럴 수도 있는 거고 저럴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박 형은 설교나 목회 전체가 참 일관성이 있었던 것 같아. 물론 그러면서도 많은 발전들이 있어 왔지만, 목회 신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이 있는 것 같아서, 나보다 훨씬 더 집중력이 있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박영선: 우리는 달라서 더 친한 거예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거지. 기차의 두 레일 같은 거지. 그래야 기차가 가는 거니까. 서로 못 묶이는 거지. 각자의 길을 감으로써 기차를 굴러가게 하는….
나는 설교가니까 그쪽 상상력을 발휘하면, 레일이 보상을 받는 게 아니라 기차가 와야 된다, 기차가 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와야 된다, 물건이 실려 와야 된다, 그렇게 보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레일 깔고 있는 거야. 서로 평생 합칠 수 없는 평행선을, 자기 길을 가야 돼. 그러면 어느 날 기차가 오고, 거기에 반가운 사람이 그 기차를 타고 오고, 물건이 올 거야, 라면도 오고…. 어디서 어디까지 레일을 깔라고 그러셨는지는 잘 모르겠어. 김 박사는 학문적으로, 우리에게 없는 것부터, ‘시작부터’ 했어야 했어요. 역사驛舍부터 짓고 시작해야 하는….
우리 둘을 이해하기 쉽게 대조하면, 김 박사는 사전을 만들고, 나는 소설을 쓰는 거야. 사람들이 이 말을 그렇게 잘 못 알아들어. 사전에는 스토리가 없어. 그러나 모든 단어가 있어요. 사전을 소설로 읽으면 재미가 없어. 내가 소설을 쓰는데 사람들은 나한테 와서 계속 사전적 단어 개념을 물어. 그러면 스토리를 못 쫓아가지.
한국 사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면, ‘단어’가 없어. 소설은 물론 없어. 단어가 있어야 문장을 만들고 소설을 쓸 거 아냐? 생각해보니까 누군가가 단어를 써 줘야 되는 거야. [옆의 김정우 교수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사전을 해주고 있으니까 그나마 나아가는 거지.
소설을 쓰려는데 단어가 없어. 예를 들면. ‘믿음’이 뭐냐고 할 때, 내가 자꾸 계속 구약 본문을 쓰는 이유가, 거기에 가야 그 단어의 발생, 그 단어를 만든 사건, 역사가 있어. 그러면 개념이 나와. 성경은 믿음을 어디다 썼나? 믿음을 뭐라고 얘기하나? 믿음이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해서 예수에게서 완성되는 하나님의 방법이야. 우리가 만들어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이 믿음인데, 우리가 아는 단어들을 나열해서 신학을 이해하고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는 바람에 대혼란이 있어. 그러니까 오늘도 봐. 이렇게 해 주잖아. 집우! ‘누가 누구를 잡았나?’ 이렇게 해 주잖아. 이렇게 해 주지 않으면 내가 글을 쓸 수가 없어. 그 글을 누가 알아 볼 거야? 서로 개념이 공유되어 있지 않은데.
신학교만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사회가 그렇다고. 얘기하다가 말이 안 통하면 한문을 쓰든가 영어를 쓰잖아. 우리말은 없어요. 우리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만든 단어가 없어. 특히 교회가 그래요. 이상한데서 악을 써야 돼. 서로 쓰는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전달해야 될지 모르는 때가 많아요. [김정우 교수를 가리키며] 내가 가장 도움을 받고 아껴두고, 이 공장에 계속 물량 주문을 해야지. 빨리 만들어달라고.
내가 볼 때 박 형은 처음부터, 이미 신학교 올 때부터 믿음에 대한 개념 세계가 있었어. 그 당시 믿음의 개념 세계는 박 형에게서는 주로 부정적이야. ‘저거는 아니야!’ 자신의 현실과도 안 맞고 자신이 고민하고 찾은 믿음도 아니고. 그 당시의 믿음은 70년대 믿음이잖아요? 굉장히 대중적인 믿음이야. “사영리적 믿음”이야. 사실은 나의 믿음이야. [모두 웃음. 김정우 교수는 CCC를 통해 예수 믿었다.] 나는 그 믿음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박 형은 이미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야.
사실 우리가 신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에는 박 형에게 좌절을 많이 느꼈어. 어떤 좌절을 느꼈냐면…. 몸이 아파. 그럼 내 믿음은 뭐냐 하면, 그 아픈 것에 필요한 하나님 말씀, 그거 하나 딱 찾아서 친구에게 주면 친구가 그것을 받아서 감사하고 그것으로 힘내고 그런 건데. 이런 것은 이미 박 형에게는 의미가 없는 거야.
박 형이 소설가라는 것은 자기 인식인데, 그때 이미 영화나 만화 같은 것으로 기독교를 설명하기 시작했어. 오직 말씀은 말씀으로 푼다잖아? 우리 종교개혁의 해석이…. 그런데 그 말씀이라는 것이, 나는 찾을 수 없는 거더라고. 왜 찾을 수 없냐하면…. 박희천 목사님이 이해하신 말씀이 말씀이었던 것 같아. 박희천 목사님은 말씀 전체가 그냥 말씀이 아니고 말씀을 죽 읽어가다가 뭐 하나가 촤악 치고 나오는 거야. 번쩍 하면서. 그러니까, 우리의 일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뭔가 번뜩이면서 우리의 생각을 넘어가는 어떤 번뜩임이 말씀인데, 내게 그런 게 나오나. 그런데 그때 박 형은 이미 자신이 찾은 그 말씀을 말씀으로 푸는 단계를 넘어서, 성경을 문화로 풀어. 바둑 이야기, 스포츠 이야기, 콘텍스트의 이야기로….
왜 내 마지막 프로젝트가 결국 사전으로 왔을까? 결국 내 주석도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사전적 주석이야. 왜냐하면 그 주석 안에 거의 모든 것을 다 담았거든. 수천 년의 내용들을. 그러다 주옹–무라오까 「성서 히브리어」문법책을 번역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사전이야. 이 사전을 만들고 나니까, 이 사전이 만들어지게 된 훨씬 넓은 배경이 있어. 그래서 문법용어 사전으로 온 것이야. 문법용어 사전으로 와서 보니까, 문법용어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라틴어를 가져와야 되고, 독일어도 불어도 가져와야 되고, 온갖 언어학 개념도 가져와야 되는데, 마지막에 들어가서 보니까 ‘아, 한문이 필요하구나!’ ‘동아시아 언어로, 한-중-일이 공유할 수 있는 동아시아 언어로 거기서 우리에게 가장 발음도 좋고 뜻도 명료하고 한번 들으면 ‘아하!’ 할 수 있는 우리말이 뭘까?’ 이런 걸 찾아가게 되는 거야.
내가 사전으로 들어온 것은 결국 나의 좌절 때문이었던 것 같아. 내게는 기본이 없다는 그 좌절…. 사실 기독교만큼 이렇게 유산이 많은 종교가 없어. 기독교는 유대교, 사실 이슬람까지도, 기독교 안에서 다 해석이 돼.
그리고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평생을 다 쏟아서 심혈을 기울인 것들이 기독교 신학이고 주해고 사상이고 문화고…. 나의 가장 깊은 좌절은 ‘이런 서양 신학하고 한국 신학이 어찌 이리 갭이 큰가?’ 아마 나의 원천적 질문이었던 것 같아. ‘이 간극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매워볼까?’ 한평생 거기에서 내 인생의 발자취가 만들어진 것 같고. 그 갭을 매우는 데 제일 좋은 게 마지막에 보니까 사전이더라고.
내가 그런 작업을, 초벌이지만, 해두어야 누군가가 이 발판 위에서 작업을 하지 않을까? 한국의 학문이 점점 사전학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할 텐데…. 우리나라는 사전학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일단 사전을 하려면 팀워크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팀워크가 안 돼. 죽어도 안 돼. 너무 고생해. 사전을 못하는 이유 가운데 다른 하나가, 우리의 지식의 경계boundary가 너무 좁아. 예를 들어서, 언어학 박사가 한국에 500정도 있다고 한다면, 셈어Semitic를 한 사람이 한 명이 없는 거야. 모든 언어는 결국은 셈어하고 인도유럽어야. 그런데 한국어하고 영어, 유럽어 한두 개 가지고 언어학을 하니까 언어학 사전도 베낀 것 외에는 안 되는 거야. 저술하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거기까지 우리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그런 게 여전히 내 고민이고….
박영선: 나는 김 박사를 믿고 있어요. 학교에서 만났을 때부터, ‘이 부분은 맡겨놔도 되겠다….’ 여태까지 내가 신세를 지고 의존하죠. 김 박사님이 이쪽을 해주니까 내가 갖다가 쓰죠. 그런 의존관계인 거지. 전문적인 일이나 그런 것과 상관없이 우리 시대에는 하나님이 적어도 우리 둘은 붙여주셨어요. 우리가 가장 특출하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우리 둘을 한 학교에 보내서 서로를 잘 알아본 거지. 상대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그냥 본능처럼 알았던 것 같아요.
김정우: 박 형과 나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둘 다 사실은 좌절감이 깊은 사람인 같아. 이미 어떤 승리주의, ‘예수로 우리가 승리했다!’ ‘믿음으로 형통할 수 있다!’ 이런 신학이 우리에게는 없었어요. 박 형은 교회에 대해서 깊은 좌절 가운데서 ‘교회가 무엇인가’ ‘목회가 무엇인가’ 평생 씨름하면서 왔고, 나는 ‘성경이 무엇인가’에….
오늘 내가 박 형하고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것이 뭐냐 하면, ‘여기가 왜 이래?’ ‘교회, 여기가 왜 이래?’ 나는 이게 화두인 것 같아요. 베드로 같은 경우는 ‘여기가 좋사오니’이지만,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교회는 ‘여기가 왜 이래?’ 같아요. 그리고 특별히 나 같은 사람은 더 당황스러워. 나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여기로’ 왔는데, 여기는 ‘저기보다’ 더 한 거야. 진짜 이제는 알고도 더 해. 모르고 더 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나는 박 형에게 ‘여기가’ 왜 이런지 듣고 싶어요.
오늘 박 형을 만나러 오면서 ‘나에게 교회는 무엇인가?’ ‘지금 여기는 왜 이런가?’ 그것에 대한 대답을 찾고 싶어. ‘여기는 원래 이런 데야.’ ‘천국보다 지옥이 좀 더 가까운 곳이야.’ ‘여기에서 천국을 향해서 조금씩 나아가는 거야.’ ‘지루한 길이야.’ 박 형에게는 이런 논조가 깔려있지만, 그 가운데서 천국의 빛이 비추는 때도 많이 있을 거야.
그런데 내가 이제 교회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나는 원래 이방인이었고, 우상숭배자였고, 내 젊은 시절 혼돈과 공허 속에서 살고 있었고, 막걸리에 자신이 있어서 토목과로 갔고, 뭐 이런 다양한 배경들이 있는데. 지금 나를 누가 키웠냐? 나는 교회가 키웠다고 생각해요. 교회는 나에게 ‘그늘’이었어. 박 형이 제일 좋아하는 시 가운데 하나가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거기에 보면 ‘그늘’의 이미지가 나와요. 나무 그늘에 앉아서 햇살을 피하면서 거기에서 나누는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떤 점에서 교회가 나에게 그늘이었냐 하면, 내가 어쨌든 우리 온 집안에서 처음 예수를 믿었는데, 우리 집안의 아무 지지도 없이 내가 신학교를 갈 때 아버지는 내가 중이 되는 줄 아셨어. 그 정도의 배경밖에 없었지. 어쨌든 웨스트민스터로 갔어. 박사까지 되었어. 또 신학교에서 선생이 되었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의 하나는 유학시절이었어.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우리가 가지고 간 건 4000불 정도였는데, 7년 동안 살아남은 것은 교회가 나를 지지해 줬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교회에 빚졌다고 생각하고, 교회가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 ‘그늘론’이 재밌는 것이, ‘그늘’이 영어로는 두 개야. 하나는 셰도우shadow고, 다른 하나는 셰이드shade야. 둘이 좀 달라. 셰도우는, 나의 어두웠던 과거들이 내 심층구조 속에 그림자로 남아있는 있는 거야. 그래서 나를 어둡게 만드는 것이고, 그 안에는 부정적인 모습들이 많이 들어있어. 나의 또 다른 에고ego가 셰도우인 것이지.
그런데 ‘셰이드’는 뜨거운 뙤약볕이 내려 쬐는데 차양처럼 이렇게 차악 가려주지. 정호성 시인이 말하는 그늘은 ‘셰이드’ 같아. 나는 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 7년 반을 살았는데, 그런 가운데서 교회가 나의 셰이드, 그늘이었다고.
나는 입양된 사람이지만, 교회가 너무 고마워. 교회 없이 내 존재가 있을 수 없어. 교회가 없었으면 나는 빚진 데가 없었을 것 같아. 내가 노가다 판에서 살고 유능한 공병 장교였고, 그대로 나갔으면 지금쯤 회사를 했든지 망했던지 하겠지만, 어쨌든 교회는 나 같은 나그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까지 어려울 때마다 공급해준 그렇게 고마운 곳이지….
사실 어거스틴 만큼 교회에 대해서 잘 표현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교회는 우리의 영혼의 엄마다.’ 엄마 이외의 존재가 우리 인생에 어디 있겠어? 엄마가 우리를 낳아줬고, 나도 교회에서 태어났고. 사실 CCC에서 예수를 믿었지만 내 기저귀를 다 갈아주고 내 세계와 가치를 형성해준 것은 교회였거든. 교회에서 요리문답도 하고 학습도 받고 세례도 받았지.
이렇게 고마운 곳이 교회인데, 뜨겁게 작열하는 정의의 태양이 이제는 한 두 개가 아니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은 정의의 사도가 온 세상에 가득해졌어. 이런 곳에서 그래도 교회는 우리의 셰이드거든. 그런데 이 교회를 왜 이렇게들 공격하는지, 또 쪼개는지, 또 지지고 볶고 싸우는지…. 그럼 요즘도 교회에서는 나 같은 회심이 일어나는지…. 박 형은 목회자니까 분명히 회심이 일어는 것들을 많이 봤을 것 같아. 그리고 그 회심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라 가고 있는 것이 보이는지, 거기에 박 형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시간 개념, 한 시간을 통해서 쭉 변해가는 모습을 목회자는 많이 보았을 것 같고 그것이 목회자의 기쁨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그늘로서의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영적 변화, 생명의 신비…, 이런 긍정의 힘이 너무나 지금 이 시대에는 위축이 되어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그럼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가야될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박 형에게 듣고 싶은 마음이 있어 교회에는 기적이 있어요. 우리 신자들은 기적이라 그러지만, 창조와 부활이 있어요. 하나님이 콘텍스트를 초월하셔서, 우리가 조건을 조성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자꾸 얘기하셔요. 그리고 아무 때나 언제나 하셔. 그러니까 교회가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책임을 질 것이 없어. 표현이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사실이에요. 그걸 조작하고, 조건을 만드느라고 소모전을 해? 그건 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면 하세요.
우리가 해야 될 것이 있어요. 하나님이 창조와 부활을 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자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 그것을 어느 형편에서든지 해야 되는 게 교회의 몫이야. 지금 김 박사님이 제시한 것, ‘왜 교회는 이러냐?’ 라는 질문 앞에서, 그 비난 속에서도 해야 되는 거야. 비난에 답을 해야 하고 비난을 해소시키려 하지 말아야 해. 아무래도 좋아요. 목사들이 실력이 없어도 좋고, 세상의 핍박이 심해도 좋아. 그러면 교회는 뭘 해야 되는데? 지금 나오고 있는 것들은 전부 말도 안 되는 피상적인 것이야. ‘세습을 하면 안 된다.’ ‘재정을 투명하게 해라.’ 그런 건 다 숫자놀음이고, 밖으로의 변명에 불과한 것이고…. 신경 안 써도 되요.
그게 아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와서 그분의 목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자로서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그걸 구체화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하나님의 뜻을 구체화하는 것이 우리 생애에 받아들여져서 우리가 겪는 모든 정황에서 낙관주의자 노릇을 해야 돼. 믿음을 가져야 된다고.
죽을 수도 있는 거야. 예전에는 죽어도 된다는 말을 어떻게 갖다 붙일 수가 없어서 ‘치열함’이나 ‘지극함’에다가 가치를 두었어요. 또 믿음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우애를 나누면 사랑, 용서라는 단어들을 자꾸 가치화 했어. 그게 아니고, 세상이 우리를 보고 ‘타협해라. 포기해라. 너희 손해보고 있지 않느냐?’라고 해서, 우리를 무릎 꿇리려고 하는 세력 앞에 ‘너희가 할 수 있는 것 다 해라. 우리를 병들게 해라. 잡아가라. 비난해라. 우리는 이 길을 간다.’…
소리 지르지 말고, 보복하지 말고, 눈물 흘리고 가야 돼.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정성의 표현도 아니고 원한의 표현도 아니야. 고통스러워서 그러는 거야. 이게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가는 거야. 그렇게 안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타협을 하면,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고 가치 없이 살고 조심하며 살다 죽고 마는 거야.
그걸 어떻게 분별하느냐? 그게 시간이야. 늙으면 다 알게 돼. 늙으면 알게 된다는 말을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요. 늙으면 죽음이 코앞에 와. 성공한 것과 가진 것과 승리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가짜야. 왜 가짜야?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그야말로 시간이 소진된 거야. 그리고 그때마다 멋있어질 기회를 놓친 거야. ‘그때 멋있게 굴 걸….’ 이게 남아. 마지막에 오면 ‘내가 마지막으로 멋있게 군다.’ 이렇게 되는 거야. 그게 교회야. 그래서 교회에는 꼭 어른이 있어야 해. 살아오고 나서 씩 웃는 어른이 있어야 돼.
우리 때는 중고등부하고 대학부하면 꼭 이런 말이 나왔어요. ‘교회가 연애당이야?’ 교회는 좀 더 거룩해야 된다는 거지. 그럼 그 중요한 연애를 왜 밖에서 해? 교회 안에서 해야지. 그렇지 않아? 이 모든 걸 다 담아야 될 거 아냐? 그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예수 안에서의 승리로 간다고 믿는 것 아냐? 그런 넓은 의미의 자신감이 교회 안에 있어야지. 그게 교회지.
그런데 우리는 어려움이 생기면 당장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 모두를 만족시켜야 된다고 생각을 해. 만족은 안 일어나요. 언제 일어나? 70세는 넘어야 일어난다고. 신앙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반대하는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결국 가짜였다는 것을 알아서 남은 선택이 이거야.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몰고 간다는 거지. 우리는 처음부터 완벽한, 보다 일찍 완벽해져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를 하는데, 아니야. 하나님은 도움을 원하지 않으셔. 하나님은 우리가 여기에 도착하기를 바라실 뿐이야. 후손과 후손에게서 반복적으로 일을 하셔. 마치 기독교는 이기는 것 같지도 않고, 답을 알려주는 것 같지도 않고,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을 부르고 그 시대 사람들을 기르고,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신다고.
한국 교회를 비난하지 말고 역사적 진행을 보자고. 교회는 무엇인가? 출생을 책임 맡은 교회도 있고, 순교를 책임 맡은 데도 있어. 교회는 저마다 특색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궁극적으로는 전체로 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자기 시대 속에서 이런 완성으로 인도하신다는 것 중에서 자기가 무엇을 맡았다는 것을 알아야지. 한 교회가 이런 균형을 다 가지고 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요.
김정우: 박 형하고 나하고 근본적인 차이점, 그게 내가 느끼기로는 ‘초조감’이야. 나에게는 늘 초조감이 있어. 그런데 박 형에게는 초조감이 없어. 나는 공부를 못해도 초조하고…. 나에게는 율법이 많아. 내가 만약 목회를 했다면 부흥 안 하면 굉장히 초조할 것 같아.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다른 교회를 가도 초조하고 화가 많이 날 것 같아. 그런데 박 형은 초조함이 없어. 남포교회가 만든 표상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담임목사가 교회 부흥에 대해서 초조해 하지 않더라는 거야. 교회 사역에 대해서 초조해하지 않아. 나는 죽을 때까지 초조하고, 그리고 어쩌면 이 우울증에서 못 벗어날지도 모르는데, 박 형은 이 초조함을 이미 극복했다고 나는 생각을 하거든.
그러면 그 차이는 뭐냐? 그 차이는 우리의 믿음에 있는 것 같아. 박 목사님은 기본적으로 믿음을 관계로 보는 것 같아. 나는 일로 보았고, 사명으로 보았고. 그 원천적인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야.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거야. 나는 내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게 잘 안 믿어졌는데…. 그러니까 나는 목회로 안 들어갔어. 왜냐하면 한철하 박사가 내게 “목회를 왜 하려고 하느냐?”… 목회는 베이비시터래요. 애 돌보는 게 목회래. 애보면 언제 네가 공부하겠느냐고.
결국 이 세상에서 제일 낭비가 심한 게 목회인 것 같아. 관계라는 것은 사실 ‘지옥까지 같이 가자’ 잖아. 그게 의리라고 하잖아. 그러려면 내가 얼마나 많은 소모를 해야겠어. 내가 지금 한 시간 뛰면 얼마를 벌고, 강의를 하면 얼마를 벌고, 지금 도서관에 있으면 얼마나 많은…. 나는 프로덕트product(결과물)가 막 보인다고.
할 건 많고 쌓인 건 많은데…. 그렇게 나는 늘 초조해. 그런데 박 형은 초조하지 않아. 그 이유를 보니, 관계가 참 소중해. 관계보다 소중한 게 없어. 내가 만약 목사가 안 되었으면 나는 교회생활 평생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나는 관계가 참 어려워. 나하고 다른 사람들의 관계가….
최근에 내가 테드 강연에서 뭘 하나 봤냐하면, 하버드의 어른들 성장에 대한 연구소Harvard Research Center for Adult Development가 지난 75년 동안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하버드 출신뿐만 아니라 빈민출신까지 4대에 걸쳐서 심층적으로 조사를 했대. 심지어 뇌 사진까지도 찍고 인생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질문도 던지고. 이 연구의 결론이 뭐냐 하면, 인생은 ‘관계’래. 관계가 행복한 사람이 행복하대. 결국 명예도 아니었고 돈도 아니었고. 우리가 지금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아니었대. 가족 안에서, 또 친구들끼리, 교회 안에서, 좋은 관계를 가진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같은 통증을 좀 가볍게 여긴대. 통증의 강도가 가볍게 온대요.
교회는 결국 하나님 백성들이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또 성령의 전을 이루는 우리들이 결국 점점 더 성숙해 가는 관계로, 관계를 실천하고 그 안에서 더 친밀한 ‘집우’로 서로 자라가는 이런 곳이 교회였고, 그게 박 형의 목회였고, 남포교회의 모습이 아니었나…. 그런 모습을 내가 보고, 그런 것이 내게는 참 부럽고 감사하고 그래.
박영선: 전체를 보면 드라마를 찍는 것과 비슷해요. 목사는 목사의 역할을 하면 되요. 얼마나 실력 있느냐는 둘째 문제지. 목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 독특한 캐릭터를 가질 수 있어요. 약간 무식하고 정직하거나, 교활하고 재치가 있거나, 상관이 없잖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각본을 안 알려 주시고 누가 주인공인지는 모르는 거야. 누가 주인공이 될지는 우리가 봐서는 사실은 감당이 되지 않는데, 각자 자기 쪽에서 보게 되는 거지. 제3자가 되기도 했다가 당사자가 되기도 했다가 악역 편에도 섰다가 하는 거야. 그 모두를 즐기는 거야. 어떻게 즐기느냐면, 할 때마다 배우는 거야. ‘이것은 분명해야한다’와 ‘이것은 넘어가자.’ ‘이것은 가르쳐야된다.’ ‘이것은 모르겠다.’ 이런 것들이 뒤섞이는 거야.
내 역할을 하면 돼. 망해도 되고, 져도 되고, 억울해도 돼. 성경은 언제나 거기서 부들부들 떨고 허튼 수 쓰지 말라는 거야. 엔지NG내지 말고 잘하라는 거야. 역할도 점점 변하는 거야. 같은 목사의 역할을 처음에는 나 좋게 하다가 어디서 타협하느냐면, 방법이 없어서 타협하는 거야. 타협하는 것은 죄가 아냐. 그때 실력은 그럴 수밖에 없는 거야. 그때 타협을 하면 원통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지. 그럼 울어. 와서 울라는 거야. 영화 보면 안 그래? 자기가 해야 되는 것을 못하면 와서 울잖아. 그러면 다 감동을 받잖아. 잘못한 것은 잘못한 거지만 ‘그래 너 속상하지?’ 그게 우리가 만들어 가는 스토리야.
스토리의 내용은 우리는 몰라. 한주씩 겪는 거지. 매주 위기가 있고 시행착오가 있고…. 각각의 반응을 하나님이 자유롭게 허락하셔서 그걸 조합하셔. 이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거야. 이걸 믿는 거야. 아니면? 못 믿으면 어떡할 거야? 누구보고 쓰라고 할 거야? 목사들이 밤낮으로 자기가 쓰겠다는 것 아냐? 장로들도 그렇고.
나한테 와서 자기가 쓰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보통 신비주의자들이야. “목사님, 우리도 좀 뜨겁게 해주십시오.” “나는 할 줄 몰라.” 내 대답은 간단해요. “아니, 그래도 목사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거 하는데 가.” “여긴 지금 서부극이야. 세종대왕이 왜 나와?” 서부극에도 담는 건 결국 뭐야? 정의, 의리. 사극으로 가도 그렇잖아? 나는 목사 역할을 하는 거야. 내가 역할 잘 못하면 사실 영화 버리지. 잘 해야죠. 그래도 또 못할 수도 있지. 어떻게 밤낮 잘해?
정호성 시인의 시에 “기찻길”도 있어요. 기차가 달리면 ‘해바라기도 달려들고, 코스모스도 달려들고….’ 기차가 간다는 뜻이야. 사실은 기차가 가는 거지. 그것들이 달려드는 게 아니라.
참 멋진 시인이에요. 우리 인생에 이런 것이 달려들죠. 독사도 달려들고요. 우리가 가고 있는 거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근거야.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 우린 사실 다 수동태로 사는 거야. 난 그렇게 봐요. 시편 105편에서 요셉의 인생이 굉장히 수동적이었잖아요? 기근이 임하게 하시고, 한 사람이 팔려가고, 족쇄에 묶이고, 바로가 꺼내고, 치리자로 삼고, 꿈을 꾸고…. 전부 수동태야.
하나님의 일하심의 굉장한 적극성을 보여주는데, 우리는 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묶이니까 두려움, 막막함, 의심, 불안이…. 당연하다는 거지. 그 당연한 걸 수긍하는 것에 교회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헛되지 않게 하시는구나! 그 증언이 교회에 있어야 돼요. 어느 한 사람이 은혜 받아서 큰소리치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다 산 사람들이 그렇다고 얘기하는 게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게 교회를 성립시키는 기본 울타리 같은 것이지. 그 안에서 애들이 크지.
김정우: 나와 박 형이 얘기를 하면,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에요. 우리 인생은 수동태라고 하잖아요? 나는 ‘태’가 나오면 또 다른 문법적인 개념이 생각 되는 거야. 사실 나는 ‘능동태’로 신앙생활을 했어. 박 형은 ‘수동태’로 했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리라” 하셨듯이, 베드로의 삶이 수동태지. 사실 신앙생활을 해보니까 능동태에서 시작해서 수동태로 가더라고. 어쩔 수 없이 내가 받는 것들이 있어. 그게 섭리 같기도 해.
그런데 또 무슨 태가 있냐 하면, 중간태가 있어. 중간태는 그 상태를 유지해주는 거야. 사랑을 하는 능동태가 있고, 사랑을 받는 수동태가 있고, 사랑 가운데서 내가 중용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중간태가 있는 거지. 믿는 능동태가 있고, 믿어지는 수동태가 있고, 믿음 가운데 사는 중간태가 있어. 그 중간태를 가지고 발버둥치는 게 교회생활이 아닐까? 옛날에는 기복이 심했다가 점점 더 안정적인 태를 유지하는 어른들이 계시면 그 집안은 좀 덜 출렁거리겠지. 인터뷰 김은홍 편집인 CTK 2017:10
박영선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특이한 분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우리의 만남이 40여년이 다 되어 가는데, 세상은 변해도 그의 특이함만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특이했고, 목회도 특이했고, 설교도 특이했고, 오늘 날에도 여전히 특이하다. 변화가 있다면, 이전의 특이함이 이젠 경이로움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느낌이지만, 과찬過讚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친구 사이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사실 그는 그 누구로부터도 과찬을 받을 필요도 없다.
신학생 박영선(1976-79)은 아가서의 말씀을 빌리자면,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았다 우리는 그의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입에 달았다.”(아2:3) 그가 우리에게 준 기쁨은 그의 관점 때문이었다. 그는 20대에 이미 독특한 관점perspective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외워서’ 공부하던 시절, 그는 자신 만의 고유한 관점으로 사색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출발점이 달랐다. 나는 CCC에서 처음 예수를 믿고 신앙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나의 신앙 공식과 박영선 사이에는 깊은 괴리가 있다는 것을 종종 느꼈다. 나의 간증과 위로가 그에게는 먹히지가 않았다. 나의 출발점은 구원과 전도에 있었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으니, 복음전도를 위해 신학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영선의 출발점은 교회에 있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컸다. 이미 3대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와 신앙에 대한 인식에서 복음주의 주류와 전혀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는 한 대담에서 자신이 ‘교회론’에 대해서 약했다고 고백하지만, 그의 고민의 중심에는 늘 교회가 있었다. 내가 성경에 대해 목말랐다면, 박영선은 교회에 대하여 목말랐다.
—김정우, 2011년 1월 11일
남포교회 30주년 설교 중에서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2017. 10 / Christianity Today Kore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