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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5% 차이

J_카타리나 2017. 1. 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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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이 7년 동안 살던 집을 이사하면서 짐 정리하다가 아내와 다투자 작은 딸이 웃는다. 아마도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겠지. '아빠, 이제 그만 싸울 때가 되지 않았어?' '아빠가 참아...' 어느 책에 보니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단 5%밖에 안 된다고 했는데, 실상 5%가 아니라 95%가 다른 듯 서로 다투며 사는 것이 인생인 모양이다. ‘5’라는 숫자는 별 것 아닌 것 같으나 알고 보면 그것은 본질까지도 흔들리게 할 큰 수치임을 모르고 있다. 1도만 부족해도 99도에서 물이 수증기가 될 수 없고 2%가 부족할 때부터 사람은 갈증을 느끼고 3%의 염분이 바닷물을 짜게 하고 4%의 차이로 성공자와 실패자가 구별된다는데 5%가 어찌 작은 차이가 되겠는가. 이렇게 남녀 간에는 차이가 크기에 되도록이면 유사한 사람을 만나면 좋으련만, 실제 부부들은 이상하게도 거의 원수끼리만 만나 날마다 싸우고 있는데 그 비밀이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고민할 것 없이 그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사람은 당연히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한평생 다른 사고방식을 형성해 왔기에 성격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다른 것이 정상일 것이다. 오히려 다른 것이 더 자연스럽고 서로 다른 사람끼리 만나는 것이 순리이건만 이기적인 인간은 이러한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기준에다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으니 함께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하고 나이가 들수록 고독한 삶이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늘 자신과 성격이 유사한 사람과 만났으면 하는 염원이 있지만 실제 그대로 된다면 일일이 말을 안 해도 상대가 알아서 다 해준다면 좋겠지만, 다른 측면에선 상대가 너무 잘 알므로 생겨나는 불편함은 누구도 모를 일이다. 알아서 해주는 것도 복 받은 일이지만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진실한 사랑으로 가는 첫 발걸음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큰 힘과 유익이 된다는 것은 삶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사람은 큰 사람을 좋아하고 소심한 사람은 적극적인 사람을 좋아하고 감성적인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좋아하는 상대 안에는 자신 안에 없는 것을 채우려는 보완성의 원리가 숨겨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다름은 상호 보완적이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채울 수 있다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것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음은 성격차이에는 수많은 복잡한 변수들이 많은 연고다. 그래서 부부가 아니더라도 누구를 만나든 감당할 능력 또한 내게 있음을 믿고 아울러 조화를 위한 과제 또한 본인에게 있기에 이 순리를 거부하면 누굴 만나도 행복할 수 없고 누굴 만나도 그 과제는 따라다닌다는 진리를 인지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나와 다름으로 인한 아픔들은 자아 성찰이라는 보너스가 주어지게 된다. 우리는 사람을 크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분류하지만 내 관점에선 나를 잘 이해 해주는 사람과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으로만 구별하고 있다. 평생 나와 맞지 않는 5% 때문에 95% 에너지를 다 쏟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생이 너무도 짧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세상엔 좋은 친구란 없다. 다만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어갈 때 좋은 친구는 생긴다. 흔히들 ‘다르다’와 ‘틀리다’는 것은 별개 문제임에도 나와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 곧 나쁜 사람으로 규정지어 쓸데없는 소모전을 펼칠 때가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자신을 바로 알고 자신에게 없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식성이 좋다는 사람도 은근히 음식 가리는 것이 많이 있듯이 성격 좋다는 사람도 사람 가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이렇게 나와 다른 삶을 알아 간다는 것은 나 자신을 바로 알아 가는 과정이다. 인간의 미숙함이란 타인에게 내 생각은 옳기 때문에 내 생각대로 움직여 줄 것을 요구할 때 드러난다. 조물주가 모두를 다르게 지으심은 모든 사람은 의미가 있는 존재임을 계시한 것이다. 내가 존귀하다면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자가 성숙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동반자와 서로의 틀에 맞춰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나 한 평생 걸어온 발자국마다 애증과 둘 만의 향기가 있기에 상대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인생은 알아가는 것이다. 5% 다름으로 세상의 이치임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고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이 신의 축복임을 늦게 서야 알아가면서 인생은 여유를 갖게 된다. 사람은 자녀를 낳기 위해 결혼하고 또 서로 싸우려고 결혼한다고 말이 있다.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부부도 관점의 차이로 빈번하게 다투는데 하물며 남과는 어떠하겠는가. 내 입장에서만 보면 상대가 이상하고 상대가 날 볼 땐 내가 또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서로 간에 느껴지는 차이란 그 존재의 존엄성과 함께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생겨난 불가피한 인식들이다. 새 신발을 신어도 뒤축이 벗겨지는데 어찌 다른 영혼과 발맞추어 살아가는데 아픔과 상처가 없을 수 있겠는가. 갈등하면 사랑이 없다는 식의 논리는 서로 다른 만남을 통해 서로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해도 갈등은 많고 사랑하지 않아도 갈등은 불가피한 것은 인간이란 본시 지극히 이기적이고 한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그러한 차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하는 자세에 달려있다. 세상엔 완전한 사람이 없기에 오늘도 서로 싸우지만 그것을 인정할 때부터 서로가 다른 것은 축복이 되고 혼자와 비할 수 없는 큰 능력이 됨을 알게 될 것이다. [피러한 개척교회를 시작하다...이후의 스토리...] 역시 기대했던 것은 여지없이 무너졌지만, 예측할 수 없었던 은총은... 날마다 날 설레게 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할 때부터 시작되기에 내 생각과 다름이 섭리요 내 계획과 다름이 기회요 내 이상과 다름이 축복임을 알아가기에 나는 ... 광야 같은 개척을 시작했지만 어떤 긴장도 하지 않고 더 가슴깊이 감사를 드리고 싶다. 혹 강릉에 오실 일이 있으시면 교회가 지역에 오픈된 <청마루북카페>에서 기쁨으로 커피를 나누고 싶다. [010-2718-0192 피러한] -[피러한 개척교회...]지난 번 글 참고 <후원>기업127-025342-03-018/한억만 2016년 12월 27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포남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경포호수^
출처 :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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