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성인에게 사람의 감정이 없는가 / 장자의 이야기 023
성인에게 사람의 감정이 없는가 / 장자의 이야기 023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물었다. "정말로 성인에게 사람의
감정이 없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감정이 없다네."
혜자가 물었다. "성인도 사람인데, 감정 없는 사람을 어찌 사람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장자가 되물었다. "하늘이, 도가 사람이라는 얼굴과 몸을 이미 주었는데, 어찌 사람이 아닌가?"
혜자가 다시 물었다.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사람에 해당하는 감정이 있어야 하네. 어찌 감정이 없다고 하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내가 성인에게 감정이 없다는
한 것은 자네가 말한 감정이 아닐세. 성인은 좋고 나쁨에 의해 스스로의 몸을 해치려는 감정이 없고, 언제나 자연을 따르고, 삶을 덧붙이려는
감정이 없다는 것일세."
혜자가 물었다. "삶을 덧붙이는 양생을 않는다면 어찌 몸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장자가 대답했다. "무슨
양생인가? 도가 사람이라는 얼굴과 몸을 이미 주었으면 좋고 나쁨에 스스로의 몸을 해치지 않으면 되네. 그런데, 자네는 지금 어찌하고 있나. 좋고
나쁨을 구분하기 위해 정신을 밖으로만 내몰아 몸을 지치게 하고 있네. 그 지친 몸을 나무에 기댄 체 끙끙거리고, 오동나무 안석에 비스듬히 앉아
졸고 있네. 하늘이 잘 만들어 준 형체를 가지고 자네는 허튼 소리만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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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만 있는 삶이 있습니다.
좋고 나쁨을 구분하기 위해 정신을 밖으로만 내몰아 몸을 지치게 하는 삶이지요. 나 자신이 없고, 남들을 재는 기준만 있습니다. 그
기준으로 세상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그를 판단하는데 평생을 바칩니다. '음...... 조금 더 구워야겠군.' 상대를 프라이팬에 올려 놓고
말합니다. '조금 싱겁군. 소금을 더 쳐야겠어.' 상대를 그릇 속에 집어 놓고 주무르며 말합니다. '너무 시끄러워. 입을 붙여야 되겠군.'
'어, 이 자식, 인간도 아니야!' 과감히 시궁창에 던져 버리기도 합니다. 사실 나 자체도 없으니 나의 기준도 없습니다. 내가 어때야 되는지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지요. 그에게 덤벼들고 성내면서도 내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삶이지요. 그러면서 타자를 죽이고 누릅니다. 그를 이기면
어두운 골목에서 어깨를 으쓱댑니다.
나만 있는 삶이 있습니다.
난 누구와 전쟁한 적 없어. 남을 흔든 적도 없어. 판단도
비난도 안 했어. 나 혼자 만족한 삶을 살고 있어. 내가 즐겁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있어. 평생 이 일에만 집중 몰입하니 스스로 만족하고 있어.
가능한 말일까요? 몰입도 적당한 보답이 있어야 계속된다는 게 문제지요. 세상의 박수가 없고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면 좌절합니다. 만족은 타자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의존으로 변질되지요. 타자라는 게 어찌할 수 없다는 존재임을 알게 되면, '나 혼자 만족'이 '나 혼자 절망'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대와 내가 하나인 삶도 있습니다.
멋진 사물놀이판에서는 비난이 없습니다. 꽹과리는 징의 울림을 탓하지
않습니다. 북은 장구가 잔망스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멋진 사물놀이판에서 꽹과리는 꽹과리답고, 징은 징답고, 북은 북답고, 장구는 장구답습니다.
이 넷이 어우러집니다. 멋진 판의 중심에 '다움'이 있지요. 장자는 다양한 '다움'을 만들어 내는 근원을 도라고 이름 붙입니다. 도가 깃들여
'다움'이 되는 것을 덕이라 부릅니다. 도와 덕을 갖춘 꽹과리는 꽹과리 '다움'으로 드러납니다. '다움'을 품고 있는 악기는 허튼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다움'을 가지면서 판에 어우러집니다. 심재(心齋)를 이룬 고요한 허심으로, 양행(兩行)하며 환중(環中)과 도추(道樞)을 얻는
꽹과리의 경지. 제가 꿈꾸는 경지입니다. 그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그대가 있습니다. 그대가 그대답고 나는 나답다면... 우리는
하나입니다. 하나됨. 제가 바라고 있는 경지입니다.
2015 11 22 두강 이을로
* 德充符 06章
원문
惠子謂莊子曰:「人故無情乎? 」莊子曰:「然。」惠子曰:「人而無情,何以謂之人? 」莊子曰:「道與之貌,天與之形,惡得不謂之人?
」惠子曰:「既謂之人,惡得無情? 」莊子曰:「是非吾所謂情也。吾所謂無情者,言人之不以好惡內傷其身,常因自然而不益生也。」惠子曰:「不益生,何以有其身?
」莊子曰:「道與之貌,天與之形,無以好惡內傷其身。今子外乎子之神,勞乎子之精,倚樹而吟,據槁梧而瞑。天選子之形,子以堅白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