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신앙글)

[스크랩] 일어나 빛을 발하라! (약 1:19-21) 2013년 12월 8일

J_카타리나 2013. 12. 3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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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별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두 번째 촛불이 밝았습니다. 지난 5일 2000년 전 동방박사의 길을 안내했던 큰 별과 같은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넬슨 만델라입니다. 먼저 기사를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세계인의 '마디바(존경받는 어른·만델라의 존칭)'가 자유를 향한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프리카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95)가 서거한 5일(이하 현지 시각), 전 세계가 머리를 숙여 그를 추모했다. 여기에는 흑백(黑白)과 좌우(左右), 동서(東西)의 구분이 없었다. 인권을 위해 바친 그의 희생에 어쩌면 인류 전체가 큰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델라는 한 명의 위대한 지도자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줬다. 만델라는 남아공 백인 지배층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 차별 정책)에 맞서다 1964년 반란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간 옥살이를 했다. 감옥 문을 나서며 그는 "증오를 털어버리지 않고서는 자유의 몸이 된다고 한들 영혼은 여전히 갇혀 있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자신을 탄압한 백인들에게 내민 화해와 용서의 손길은 남아공의 인종 갈등을 치유하는 힘의 원천이 됐다.

그는 1990년 사면 후 백인 대통령 데클레르크와 인종차별 정책을 폐지하는 협상에 성공해 약 350년에 걸친 인종 분규를 종식했다. 그 공로로 1993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76세 때인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평등선거에서 대통령에 선출돼 5년간 재임했다.

남아공 국민은 만델라가 지난 6월 폐 감염증이 재발해 사경을 헤매면서 이별을 준비해왔다. 지난 9월 퇴원해
요하네스버그의 자택에서 치료를 받아온 만델라는 5일 오후 8시 50분쯤 숨을 거뒀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제이컵 주마 대통령은 "오는 10일 영결식을 가진 뒤 15일에 장례식을 국장(國葬)으로 치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만델라는 자신의 장례를 소박하게 치러달라고 당부했지만, 국민의 상실감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위대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그가 위대한 신앙인, 20세기의 모세로 보입니다. 350년간 지속된 그의 동족들에 대한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킨 그는 자신의 동족을 애굽의 학정에서 이끌어낸 모세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는 그의 깊은 신앙심이 드러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에게로 동방박사를 이끌어주었던 큰 별과 같이 그는 예수님에게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그의 삶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그의 모습은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히 큰 별이 되어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내용은 사실 지난 주에 설교할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묵상할수록 저는 설교를 준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실제 모습과 반대되는 그 내용을 도저히 전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허겁지겁 다른 내용으로 설교문을 준비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마디바'가 타계함으로써 본문이 전하는 내용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많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깊이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제게 영원한 별을 소개해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영원한 스승으로 제 마음 한 편에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말씀이 심긴 사람들

 

야고보 사도에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난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 곧 그분의 뜻에 의한 새로운 백성이 탄생했음을 선포했습니다. 복음으로, 곧 '진리의 말씀'을 통해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장 먼저 말해줍니다.

 

본문은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에 해당하는 '이스테'로 시작합니다.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적 행동, 그 변할 수 없는 사실에 근거해서 이제는 하나님의 그 구원의 행동의 의미와 결과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실제적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넓게 보면 오늘의 본문 전체가 다 해당하지만 먼저 매우 실천적인 지침이 19절 하반부에 나옵니다. '듣고 말하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20절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이 심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알고 행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듣고 말하기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선 말의 문제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말의 문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고, 또 달라져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속히 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속히'라고 번역한 '민첩하게'라는 단어 '탁수스'는 문자적으로 '즉시'라는 뜻입니다. 지체함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이 단순히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포함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있어 지체함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우리의 순종이 즉각적이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을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이 즉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이상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갔던(3) 것과 같은 그런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이 바로 '듣기를 속히' 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 다음으로 말하는 것에 관해서는 더디 해야 합니다.

 

듣는 것에 속히 해야 하는 반면에 말하는 것에 관해서는 더디해야 합니다. 원문을 살펴보면 '더디 하다'라는 말에 '브라두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둔하게'입니다. 여기서 둔하다는 것은 마치 말더듬이나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 말하기에 곤란을 겪고 답답할 만큼 느린 것처럼, 말하는 일에 있어서는 민첩하고 약삭빠르게 하지 말고 도리어 어리석은 자처럼 둔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전도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5:2)

 

바로 이 부분부터 지난주 설교준비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말이 많은 사람이며 말의 실수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주의하면서 말씀을 계속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말에 이르러서는 정말 '전호후랑'이 되었습니다.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말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번개처럼 화를 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어떻게 설교를 작성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이 말하는 것과 반대로 듣는 일에는 굼벵이보다 느리고, 말하는 데에는 치타보다 바른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듣는 일에는 참을성이 없습니다. 또 들어도 매우 고집스럽고 둔하고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남이 말하는 것을 자기 식으로 알아 듣고 자기중심으로 해석하기가 다반사입니다. 반면에 말을 할 때에는 얼마나 급하게 합니까? 상대방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도중에 끊고 들어와그 말을 가로채고 자기 생각을 쏟아 붓기에 바쁜 것이 바로 내 모습입니다.

 

또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어쨌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말하기를 속히 하는 사람은 쉽게 흥분하고, 쉽게 분노하고, 쉽게 격동하여 쉽게 범죄하기 마련입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는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반대로 행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얼마 전 분당에서 운전을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곳은 늘 끼어들기가 이루어지던 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옆 차선을 달리던 차가 아무런 신호도 없이 제 앞으로 끼어들기를 하였습니다. 경적을 눌러댔습니다. 그 차가 제 앞으로 완전히 들어온 후에도 잠시 동안 더 경적을 울려댔습니다. 잠시 후에 다른 사거리에 다다랐을 때 그 차는 옆 차선에 선 저를 향해 창문을 열었습니다. 뭔가 말을 하려다가 차가 출발하게 되자 혼자 무어라고 씨부렁거리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펼쳐서 흔들어대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제가 열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가능하다면 차를 돌려 그 차를 쫓아가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잠시 뒤에는 그런 제 행동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어떠한 일에도 분노는 상대방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뿐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분노하게 되고 상대방의 분노에 따라서 분노하게 되는 것이 바로 저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결코 그런 분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이 급하고 격하면 분노를 자극하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의 노를 격동할 뿐 아니라 자신의 분도 격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다툼과 시기와 분쟁이 일어납니다. 공동체는 파괴되고 평화는 결렬됩니다. 그래서 말의 문제는 단순히 말의 문제가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을 깨뜨림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지 못하고 파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예수 믿은 사람은 그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긴 사람입니다. 마치 씨앗이 흙 위에 떨어진 것처럼, 떨어져 그 속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거기에서 영적 생명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생명이 자라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바뀌게 되는 것이 말입니다. 말씀은 말을 바꿉니다. 말을 듣는 것과 말을 하는 습관을 바꿉니다. 거듭난 신자는 그의 심령에서 울려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기록되었고 또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속히'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에 미련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죄를 짓는 일에는 빠르고, 헛된 소리, 더러운 소리 격동하는 소리 탐욕과 분을 자극하는 소리에 빨랐던 자가, 그런 소리들에는 점점 미련할 만큼 반응이 느려지고, 대신 하나님의 깨끗하고 지혜로우신 말씀에는 점점 빨리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듣기를 속히 하라는 말은 정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주문입니다. 누가 나를 비판하면 그것이 아무리 황당해도, 변명하고 방어하기 전에, 일단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정말 내가 고쳐야 할 것들이 있는지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있으면 겸허하게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분 앞에서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자기의 속마음까지 샅샅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아무런 허물이 없다면 그런 근거 없는 비난에는 대범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며 가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듣기를 속히 한다는 것은 아무것이나 쉽게 믿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잠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많이 듣지만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단순한 사람입니다. 들을 말을 듣지 않고, 아무것이나 듣고 아무것에나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여기저기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호들갑을 떨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유독 우리나라에는 재림주가 많습니다. 주시지도 않은 예언이나 환상을 보았다며 점쟁이 노릇하는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순결하고 진실하며 의와 생명이 가득한 말씀을 듣고 깨닫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경성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말하기를 더디 해야 합니다. 참된 말은 반드시 사랑 가운데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카페에 희망으로님이 가끔씩 글을 올립니다. 그분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 때마다 몇 번씩 위로의 말을 썼다 지우곤 합니다. 혹시 제가 하는 말이 상투적이 되거나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통해 제가 좋은 훈련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해야 할 말은 언제나 당사자에게 먼저 조심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모욕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이유와 목적은 그 잘못을 한 형제들이 돌아서서 회복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목적입니다. 잘못된 사람을 돌이켜 전혀 잘못이 없었던 사람처럼 회복시켜주기 위함입니다. 그런 목적이 확실할 때, 그런 마음으로 우리의 입을 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황종렬 교수님이 비판에 대해 한 말을 늘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랑이 식었다면 비판하십시오. 비판하지 않을 수 없을테니까요. 사랑하면 따뜻하게 비판할 때와 방법을 마침내 찾게 될 것입니다. 비판이 아니라 사랑만이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지켜가기 어렵거든 비판의 말을 가슴에 묻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의 햇살과 빗줄기 안에서 사랑이 익으면 비판의 방법도 같이 익어 가는 기쁨과 충만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황 교수님의 말에는 사랑을 아는 이의 깊은 성품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내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하여 사랑 가운데서 참된 것을 말하고 있는지,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과 더불어 주님께서 주신 평강을 누리고 있는지,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긴 성도는 무엇보다 온전한 성도로 자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쉽게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며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성품

 

저는 본문을 통해 다시 한 번 존재의 변화 그리고 성품과 인격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속히 듣고, 더디 말하고, 더디 성내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특질이요 성품입니다. 그런 성품의 사람이 되어 속히 성내지 않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 같지만 이 시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놓치고 있는 귀중한 진리입니다. 누구보다 제 자신에게 필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있다면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 여러분들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의 생생한 예를 넬슨 만델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95년간의 인생 가운데 27년을 로벤손 섬에 있는 감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인생의 사분의 일이 넘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너무도 어려운 인생이었고 힘겨운 기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야말로 넬슨 만델라를 빚어 만드시는 하나님의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 백성의 성품으로 빚어졌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대로 그는 속히 듣고 더디 말하고 더디 성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결코 말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 27년간의 옥살이가 내게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의 침묵을 통해 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얼마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그는 속히 듣고 더디 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아프리카와 조국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말에 대해 신중한 사람이 되자 그는 어떤 일에도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인생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출옥한 후 총선이 실시되기로 발표되었지만 흑인들 간에는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혼란한 시기를 이용하여 백인들이 재집권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여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도 그는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저절로 눈에 띠는 어떤 것이라도 집어 들고 달려 나가야 할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동료 흑인들에게 자제를 당부하였습니다. 그는 분노가 모든 것을 망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27년간의 감옥 생활이 그에게 가르쳐준 지혜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더디 성내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그를 통해 마침내 그가 그토록 꿈꾸던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흑인들에게 최초로 투표권이 주어진 총선이 열리고 흑인들이 다수인 의회가 결성되고 그리고 마침내 만델라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일어납니다. 그는 전임 대통령이었던 백인을 자신의 정부의 부통령으로 세우고, 자신의 가장 큰 정적이며 흑인 가운데 가장 많은 다수 부족인 줄루족의 지도자를 내무부 장관으로 세웠습니다. 그토록 오래 지속되었던 백인사회가 종식되고 그토록 진저리쳐지던 '아파르트헤이트'가 더 이상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상징이 아닌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진실과 화해의 힘겨운 시기를 지나야 했지만 그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해방이었습니다. 그의 임기가 끝나고 다른 모든 이들이 그의 재집권을 요구했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속히 듣고, 더디 말하고, 더디 성내는 하나님 백성의 성품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사용하여 그의 조국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사람이 사람에 의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자유가 흘러 넘치도록 하자. 아프리카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오랜 침묵을 통해 응축된 사랑입니다. 우리들의 입을 통해서도 이런 말이 흘러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고 우리들 주변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어지니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난 십여 년을 힘겹게 지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하나님 백성의 성품을 빚어 만드시는 축복과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속히 듣고, 더디 말하고, 더디 성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시간이 꼭 필요했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고 만델라는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일어나야 합니다. 영원히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할 일은 언제나 새롭게 일어서는 것입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주님의 음성을 속히 듣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어지니♡
글쓴이 : 늘 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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