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솔로몬의 황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의 진리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한 복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자 되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사고입니다. 성경적인 진리를 말함으로써 거기에 대해 무언가 토를 다는 순간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대개는 따지는 듯한 자세로 나오는데 그 기세가 당당하다 못해 사납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를 축복하고 부자로 살게 하는 것이 뭐가 이상하냐고 말하면서 부에 대해 경계하는 저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합니다. 그런 경우를 너무도 많이 경험하다보니 이젠 덤덤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글을 써서 전하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솔로몬의 황금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솔로몬은 지혜의 왕입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솔로몬이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는 겸손하게 자신이 왕이 되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먼저 아뢴 후에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9)라고 자신을 위한 어떤 것을 구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지혜를 구했습니다. 겸손할 뿐만 아니라 신실하기까지 한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청원대로 지혜를 주셨을 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까지 주셨습니다.(열상3장 참조)
우리는 거기서 예수님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말씀대로 당신을 먼저 생각하고 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부와 영광을 주십니다. 하지만 성경의 메시지를 거기까지만 들으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솔로몬은 다른 어떤 성경의 인물보다도 부에 관한 생생한 교훈을 주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지혜를 구하고 부와 영광을 얻게 된 솔로몬의 이후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서의 부와 영광에 대한 전혀 다른 상반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와 영광을 가지고 무엇을 했을까요? 솔로몬은 자신의 부와 영광을 가지고 압제당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해결할 수도 있고 못들은 척 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갑자기 여기서 압제당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튀어나오는가 의아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오늘날의 복음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무지합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압제당하는 자가 없기를 바라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로 하여금 세상의 압제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며 그것은 곧 세상이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후에 주님의 기도를 통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라는 말씀으로 그것을 표현하셨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솔로몬은 압제당하는사람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주님의 성전과 자기 궁전과 밀로 궁과 예루살렘 성벽을 쌓고,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의 성을 쌓았습니다. 그가 왕으로 있던 내내 어마어마한 건축사업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 그는 강제 노역꾼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로 감독을 맡았고 다른 민족들이 그 일을 하였는데 그것은 노예로부터 해방되었던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을 노예로 부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도 모르는 처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를 해방시키시는 분이시지 노예를 부리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행한 잘못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와 영광을 이용해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제국을 건설했다는 점입니다.
불과 몇 세대만에 압제당하는 사람들이 압제자가 된 것입니다. 속박을 당하며 울부짖던 민족이 이제 다른 사람들을 울부짖게 만드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애굽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하던 민족이 이제 또 다른 애굽을 세운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에 무관한 세상의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는 자기 조상들의 이야기를 망각하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정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안락의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는 인간의 고통으로 세운 궁전에서 식사를 하고 테라스를 거닐었습니다.
그의 잘못은 단순히 건축사업을 위해 노예들을 사용했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성전과 자기 궁전을 지은 후에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에 성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그 지명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치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 그러나 그 장소들이 상징하는 바를 알면 우리는 그것이 성경에 그냥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므깃도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계곡입니다.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가 만나는 계곡인데 그곳은 전략의 요충지였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부와 영광을 이용해 군사기지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엄청난 부와 영광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제국을 세우고 나니 그의 우선순위는 제국을 지키는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솔로몬은 병거와 마병을 모았습니다. "병거가 일천사백이요 마병이 일만이천이라."(왕상10:26) 그는 어마어마한 수의 병거와 마병을 병거성과 예루살렘 성에 두었습니다. 병거와 마병은 바로의 군사들이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을 추격할 때 쓰던 군사도구입니다. 그것을 이제 이스라엘이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새로운 애굽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바로가 등장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오늘날의 탱크와 전투기에 해당하는 말과 병거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고 팔아 이익을 남기기까지 하였습니다. 병거는 애굽에서 한 대에 은 육백 세겔에 말은 한 필에 은 백오십 세겔을 주고 사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헷 족속의 모든 왕과 시리아 왕들에게 팔아 차익을 남겼습니다. 솔로몬이 무기매매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그는 폭력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서 하나님이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로부터 멀어지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그는 자그마치 칠백 명의 후궁과 삼백 명의 첩을 두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일천 명의 아내를 둔 것입니다.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 아내들이 솔로몬을 꾀어서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마음은 온전하게 주님이신 하나님께 바쳐지지 못했습니다. 노예제도와 군사기지가 구조적인 악이었다면 이제 아내들에 의해 버려진 것은 솔로몬 개인의 마음이었습니다. 구조가 변하니 이제 개인 역시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군마를 많이 가지고 많은 아내를 두고 마음이 다른 데로 쏠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그런 솔로몬의 영적 상태를 그가 소유한 금의 양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해마다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은 그 무게가 육백육십육(666) 달란트였습니다.(왕상 10:26)오늘날로 치면 약 25톤에 해당하고 가격으로 환산하면 일천 칠백억 원 정도 됩니다. 하지만 무게와 가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666이라는 숫자를 통해 성경기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666이라는 숫자는 악하고, 어둡고, 잘못되고,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을 말할 때 쓰는 유대인 특유의 표현입니다. 결국 솔로몬의 황금이 솔로몬을 사단의 도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사단의 도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부와 영광", 그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통일왕국이 깨어지고 남과 북으로 갈라진 분열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형제이어야 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서로 칼을 겨루는 전쟁을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 이후로 멸망할 때까지 산당이라는 불신앙의 예배처소가 존속되는. 간음한 이스라엘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발단이 바로 "부와 영광"이라는 사실을 새이스라엘로서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굳건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 흐름에 편승하여 교회가 무한정 커지는 것 역시 성령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인정이라고 주저없이 자랑하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그런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솔로몬은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한정 커진 교회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제국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교회가 너무 커지면 교회를 지키는 일에 모든 노력이 집중 됩니다. 나중에는 또 그것이 아까워서 세습이라는 악을 행하게 됩니다. 제국의 왕이 된 목사에게서 성적 타락이 불거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제국이 된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홀대를 받는 것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불행한 것은 그러한 성공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교회를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일단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 인격적인 관계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거수기나 숫자로 전락하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제국의 특성을 가질수밖에 없는 구조악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단 그런 구조악이 뿌리를 내리면 개인들의 마음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 역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교회가 갈라지고, 교회 안에 송사와 폭력이 끊어지지 않고, 칭송을 받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그냥 정해진 수순에 따른 과정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은 솔로몬의 지혜입니다. 그의 지혜가 어떤 지혜입니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왕상9:29-30) 하나님이 주신, 세상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도 솔로몬이 부와 영광의 올무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총명이 솔로몬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부에 관한 메시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를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부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날 때마다 솔로몬의 황금 666달란트를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최태선 목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