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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이웃 이야기.....

J_카타리나 2008. 8. 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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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 이야기

1. 언제쯤 날수 있을까?

“여기에 내가 있는 것은 주님이 있어라 해서 있지 내가 있고 싶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도 50을 바라보는 자가 20-30대 젊은 사람들과 자주 다투어서 권고하려 불렀더니 하는 말이다.  아!! 허 참!!


얼마 전 의료1종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하고 거의 준비를 다한 상태에서 골탕을 먹이고 자진 퇴소한 정신 장애인이 나간지 하루도 안 되어 이렇게 영성이 깊은 사람이 현현했다. 종교도 잘못 알면 하나님마저도 한 낫 작은 욕망의 우상밖에 안 된다.  쉼터에서는 자주 이런 일이 있어 더 이상 말문을 막고 고요히 타일러 보내도 소용이 없다.


“목사 대접해 주려했더니 엉망이다.” 고 왜치며 삿대질을 한다. 겨우 올라가라고 권고하고 겨우 안정을 취했다. 또 한쪽에서는 8명이 방에 전기를 아낀다고 같이 있는데 혼자 큰방에 불을 켜고 있으면서 자기 방에  들어 오지마라 하며 금을 긋는 결백자도 있다.


요번 설에는 무엇을 잘 못 먹었나보다. 다독이며 살지 못해 지금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다지도 다독이기가 힘이 든 것 일까? 하기사 살아 있는 징표이기도 하나 시기와 질투, 오해와 원망은 불화를 낳고 결국은 없고 소외되는 길로 나다니다가 말썽을 일으켜서 길 위에서 길을 잃고 소외되어 버려지기 일수 이다. 마침내는 제일 무서운 병 즉 자신의 불찰과 잘못을 돌아볼 수 없고 자기가 자신을 용서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제 버릇 제 성질 못 버리고 허접스럽게 제 날개 제가 꺽고 날개깃 한번 마음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이 쉼터 저 쉼터, 쉼터만 전전긍긍 하다가 인생에 종말이 오지는 않는지 큰 걱정이다. 날수 있는 계기는 침묵과 겸손과 덕망이거늘,, 아직 나도 부족함을 계속 되 뇌이며 길 위에 있다.


2. 인생의 도랑태

지치고 힘이 들 때 우리는 쉽게 실망하고 실의에 빠진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적인 진리다. 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위험천만의 사람에게 소망을 주어야 하기에 이 몸이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생의 굴레를 헤집어 인생의 도랑태를 힘주어 굴러 보곤 한다.


상황이 다르고 특이한 성격장애와 상처 입은 심령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쉼터는 내담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때로는 두 사람의 복지사가 불철주야 일을 하고도 오히려 화를 당할 때도 있다. 피곤하고 지친 영혼은 자기중심이기 쉽다. 타인에게 자기를 알리되 도움 받을 내용만 알리고는 내가 하지 않았던 말을 하면서 관리자들을 자기의 이용물로만 삼는다. 여기도 사람이 한 30명 있다고 모두 다 틀어쥐려는 형이 있고 조용히 무리를 만들면서 기어코 그런 자를 왕따 시켜 맥도 못주게 하는 사람도 있다. 상황과 역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겨 나가려 하지만 너무 찌 들리는 삶에, 구습에 노예가 되어 또다시 실망하고 절망의 길을 반복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겨우 의료1종을 만들 동안에 대전에 타 쉼터로 가서 의료1종을 부치란다. 그러나 그 아버지에게 전화가 오기를

“그 우리 딸년 있다면서요.” “기초생활 수급권 48만원 받는다면서요.”

“그 돈 다 무어 하능교.”

 “무슨 말씀 하십니까?” 

“여기로 주소를 옮기면 자동으로 수급권이 없어지며 여기서 재신청해야 하는데 여기 있으면 수급권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라마 우리딸년 정신병원에 처넣어 한평생 못나오게 해주소.” “아!! 이 아버지의 언어,,”

또 얼마나 애를 먹였으면 오죽이나 답답할까? 저주받은 딸이 문제인가? 애를 먹는 애비가 문제인가? 삶의 경황을 지혜롭게 풀지 못함과 소외된 영혼의 사랑 잃음에 절규를 귀 기울이지 못함에 있다.


그래도 인생의 도랑태는 돌고 화는 화를 부르고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3. 풍성한 삶

어렵게어렵게 대전에서 대구에 고등학교에 전학을 시켰더니만 1년 당기고 학교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것인지 학교를 가지 않는다. 2학년을 다 다닐 쯤 수업일수가 모자라서 자퇴 경고가 왔다. 결국은 자퇴를 하고 말 위치에서 그래도 친구인 교감의 부탁으로 편입되었기에 배려가 되었는지 다시 2학년으로 받아준다는 학교의 소식이다.


아빠에게 상처를 입고 엄마와 나와 있는 아들로서는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자퇴경고를 받고 본격적으로 놀아보니 하루 이틀이지 지겨웠나 보다, 이제는 새봄학교를 적응 하기위해서 열심히 나가고 있다. “목사님!! 놀아보니 지겨워요.” “그래 사람은 자기일이 있어야해.” “놀아도 계획이 있어야 한단다.” 이제 열심히 해라.

무슨 일을 하든 지쳐 쓰러져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삶마저 포기하고 싶을 때 느긋이 멈추고 서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풍성한 삶이리라


4. 소명의 절기

봄이다. 여러 해처럼 올봄에도 쉼터식구들이 많이 들어온다. 겨울에는 막상추우니 참고지낸 여성들이 찬 기운이 가시자 3월 초순인데도 세 가정 1사람으로 일곱 분이나 들어오셨다.

아이 셋 어른 네 분인데 남자는 3살 박이 00이뿐이다.


많은 공부를 하신 @@씨는 재혼한 남편의 전처 딸과 재혼한 남편 사이의 자신의 딸을 데리고 왔으나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 자신의 딸은 세 살인데도 주민등록이 없다. 또 ##은 얼마나 예뿐지, 남편의 폭언과 구타 아닌 것 같은 구타는 남편자신의 전처 딸까지 못살게 하여 의모를 따라 고생이 되어도 나서서 쉼터의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겠단다. 지적장애가 있는 t씨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나왔는데 대화에서나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문제가 많아 대책이 없는 고민가운데 있다. 그리고 22세의 젊은 미혼모는 두 번째 아이를 낳자 남편이 도망을 가 살 방책이 없어 난지 1개월이 된 유아를 SOS마을에 보내고 쉼터에 와서 미용실에 다니고 있으나 얼굴의 양태가 예쁘고 삶의 모습이 범생이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제 들어온 24세의 P씨는 목을 사용하지 못하여 밥도 먹지 못하고 누워있는 형편이다.


이들 한사람 한 사람에게 상담을 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지마는 너무나 먼 길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끝을 시작으로 삼으시는 주님이기에 그분의 사랑과 보살피시는 눈물을 기다릴 뿐이다. 춥고 낮은 곳에 봄이 먼저 온다. 봄을 찾아온 이 터가 진정한 봄이 될 수 있도록, 3개 노회에서 더 많은 관심과 배려, 지도와 편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선 것 만해도 봄으로 나섰으며, 이제는 이들에게 기도와 사랑의 협조로 지속적 후원의 파숫꾼 적 사명을 소명으로 재확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5. 집착과 저주

목이 아파 잘 움직이지 못하고 누우면 일어나지도 못한다. 3일 그냥 두니 식음을 전폐하고 담배만 피운다고 한다. 그래서 죽이라도 먹지 않으면 우리쉼터에 있을 수 없다고 하니 죽을 먹는다. 왜 목이 아프냐고 물었더니 덩어리 무엇이 나서 끌고 소주를 한잔했는데 그렇게 목이 아프다는 것이다. 사실 이여청년은 14세부터 부모에게 쉼터로 내어쫓겼다. 그러니 10년 노숙생활과 파란만장의 세월을 살아왔다. 중풍 병 아버지가 있음에도 재혼을 한 엄마에게 바른말을 하니 쫓아내었던 것이다. 우리쉼터에 무슨 도움을 받고자 했으나 의료원의 기술로는 부족하고 큰 병원에 가려하니 돈이 없다.


쉼터에 오면 일주일 안에 건강검진을 하기에 이여청년의 건강검진의 통보가 왔다. 매독이란다. 이제사 목이 아픈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밤에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도 아프다 한다. 사회복지사가 치료도 받을 수 있는 성매매 상담소로 소개해서 가게하고 그녀가 사용한 방을 염산과 알콜로 소독을 했다.

소외된 자들의 끝 간곳, 그녀들은 자신의 성격도 문제이나 가정의 왜곡됨에 희생제물이기도 하다. 자본화한 사회현실은 더욱 가진자들의 아집과 집착을 쌓게 하고 자기소외가 된 자들의 자기를 향한 저주와 사회를 향한 저주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집착과 저주 어느 편에 서도 안 될 것이며 사랑으로 사람이 되어가야 할 것이다.


6. 백일 상

쉼터에는 상을 빠지지 말고 차려야 한다.

제사상이 아니라 상처 입은 심령들의 자녀들의 돌이나 백일 상은 꼭 차리려는 것이 쉼터의 운영원칙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상다리가 휘어 지도록은 차리지 못할망정 아빠에게 버림받고 멍든 가슴 그 누가 꿰매어 줄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백일이나 돌상은 뿌듯이 차려주고 싶은 것이 내심정이다.

그럭저럭 쉼터를 지나간 여러 아이들의 돌상 백일상이 벌써 7-8번 가까이 되어가니 그것도

작은 숫자는 아니다. 백일상은 원래 엄마를 위한 것이요. 돌이 자식을 위한 것이건만 어떤 엄마는 아기 백일을 너무 많이 챙기고 있다. 상도 채리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고, 차려도 즐거운 것이 있으니 마음 아프게 차리는 이백일 상이 얼마나 답답하면 얼른 한 그릇 퍼먹고 3층 방에 가서 울까? 아내 잃은 후 내 자식 나에게 하는 말 “아빠 우리 아이 놓으면 할매가 없어요.” 한다. 그러나 살아서 죽어 있는 자 보다 지금도 생명을 낳은 고귀한 분이라면 더욱 귀하지 않겠는가? 준비 다해놓은 밥상도 받지 않은 자들도 있지만 주님의 밥상은 천국이었다. 우리는 늘 상 밥상을 받지만 진정 살아 밥상을 받고 있는지 돌아봐야겠다.


7. 사랑 받기위하여

병진이가 벌써 4월 들어 4번째 가출이다. 아무리 권고해도 되지 않고 벌써 16세라는 감수성이 삶을 억누러기도 하나보다 그리고 지적장애 2급인지라 꾸중도 심하게 하지 못한다.

동생과 다투어 나가고, 엄마에게 꾸중 듣고 나가고 아무튼 핑계와 구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벌써 노숙생활이 되었다. 장애인 달리기에서 대구시대표로 금메달과 동메달도 땄는데, 올해에는 하교에 전학을 해서 남양학교에 반장이기도 한데..

어릴 쩍 가정의 문제가 이다지도 저 아이의 삶을 좌우 하는 것일까?

4번째 나가 안 들어오더니 오늘은 중앙파출소 경관님에게 연락이 왔다.

“거기가 어디 입니까?” “예 쉼터입니다.” 병진이라는 아이 압니까?

“예 오늘도 종일 기다렸습니다.” “시내 길에서 앵벌이 하는 것 잡았습니다.”  “지금 데려 갈께요. 예 감사드립니다.

조금 있다가 온 병진이에게

“보아라 너 생일 선물 케이티 앤지에서 마련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지금 돈을 벌때가 아니야 공부해야 할 때란다.” “배고푸제”

“목사님 하고 컵라면 하나씩 묵자”

다 먹고 나서 병진아 기도 함 하자.

“예수님 우리 병진이 사랑 하지요. 나가고 싶을 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8. 소용돌이치는 아침

아침은 다소 바쁘다 7시 반 쯤 도착하면 아이들 학교 가는 것을 자주 보는데 엄마에게 때 쓰는 아이 수업 빠지고 도망간 아이 며칠째 안 들어오다가 소풍 가니 와서 설치는 아이, 이 아이, 저 아이다 우리 아이들이다. 우는 아이는 우는 데로 투정하는 아이는 투정하는 데로 다독여야 한다. 자그마한 소란이 끝나갈 쯤 각자의 새 인생길은 시작이 되고 직장과 일터로 나가는 모친들의 인사가 잇다. 이 사람 사는 곳에 지극히 작디작은 행복은 열심히 살면 오는 봄을 기다리는 아침이 있다. 그나마 지난날의 작은 후회를 수정하려는 좌초와 고민이 얼켜 설켜 있다.

   분배는 줄이고 몇 몇 배부른 자 더 배 채우는 박정권 때 성장으로 시계추는 돌아가고 땅의 백성은 진척도 없는 듯 제 자리 걸음에서 헛발질 하며 땅에서 허우적이며 헤엄을 친다. 말 바꾸고 옷 바꿔 입은 놈들이 언제 가렴주구나 했지 이 백성 생각한적 있으며, 제 무리 못 가꾸어 권력 다툼 하다 민중만 피가지 쒸 운 것이 이 땅의 지도자 아니었는가?

잘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외되어 상처 받고 굶주린 자 없는 사회가 잘사는 나라이거늘 위정자들은 지금도 거꾸로 간 시계추가 옳다고 우기며 성장이라는 멍텅구리로 말놀음을 하고 있다. 식량파동에 광우병 쇠고기에 농친청 폐기에 수준이 떨어져도 유만부덕이지 왜 도대체 역사의 굴레를 억지로 되돌리려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기에 비하면 여기 쉼터식구가 어떤 모습이든지 가장 진솔한 삶이 소용돌이치며 웅비 하고 있지 않는가?


9. 그루터기

둥치가 잘린 그루터기에 무슨 싹이라도 날수 있을까? 나무의 종류에 따라 가능성과 불가능성은 대별을 하지만 모든 나무는 잠아가 있어 그 싹을 무시 할 수 없다. 잘린 나무에 숨은 눈이 있듯이 상처로 부셔진 쉼터 식구들에게 생명의 싹은 있는 것일까?

사람은 재미와 보람으로 사는데 여기에 여러 가지 수단중 하나가 금전 일뿐이다. 열심히 봉사하는 복지사의 일은 해도 해도 변화되기 힘이 들고 수혜자들이 조금만 마음이 변해도 시나 구청 경찰에 고발과 때로는 구타, 욕, 언어폭력을 당하기 일 수이다. 때로는 대학 동기들이나 고등학교동창들의 힘도 얻어 변화의 도구로 사용하기에 나중에는 어려운 처지가 되면 동창들에게 수모도 당한다. “너는 일을 어찌하기에 욕을 얻어먹어 가며 그 좋은 일을 하고 그 일을 마다하지 않느냐고”

  생색이 안 나는 일이고 표도 없고 욕을 먹어도 해야 하는 즉슨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기 식구들이 그만큼 상처를 많이 입었다는 것이요. 그 상처를 이해, 납득 하자면 어쩔 수 없이 아는 우리가 당해야 한다. 짐승처럼 은혜를 몰라서 고함도 치지마는 용서해야 하고 5kg나 되는 소화기로 맞을 뻔해도 간식비를 넣어주어야 하고 찾아가서 만나 봐야 한다. 부모나 형제 때로는 남편 자식에까지도 소외당한 자들이 여기 쉼터에 우리식구들이기도하다.

상처의 깊이만큼 같이 알아준다는 것 이것이 관리자들에게는 남다른 달란트 이면서 때로는 진통이기에 허기짐의 중턱에 선자들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나 배려의 깊이만큼 할킴의 상처를 입어야 된다는 애달픔이 있기에 안타깝게 안타깝게 생명의 덩굴손 뻗어뻗어 손톱만한 재생의 그루터기라도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둥지 잘린 그루터기에 생명은 있기에,,


10. 30년간 참은 미소

10년 동안 농촌에서 축산을 할 때에 제일 골치 아픈 것은 풀은 잘 먹고 사료와 짚을 먹지 않는 편식하는 소였다. 신학시절은 결식하는 동역 자들을 위해 결식하며 식탁을 나누었다. 그 후5년이 지나 점심식사 하지 않고 가는 성도님은 이미 설교에 꼬투리를 잡는 자요. 말썽의 여지가 있는 자다.  이제는 입맛 까다로운 아버님께서 지난3월25일 아내도 소천하고 없어 밥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입맛이 맞지 않으시면 식사를 거르시는 것이 참 가슴 아프다.

  또 쉼터식구들 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권고하고 고치도록 청유하면 식사 안 먹을 뿐만 아니라 아예 쉼터를 4명 혹은 3명 가족 단위로 나가서 연락을 두절하는 것이다. 무슨 복을 많이 받아 이런 것들로 고민을 하고, 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소외시킨 응어리를 받아만 주어야 하는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한심하고 때로는 지친다.

답답한 가슴을 내가 고쳐서 그래도 어버이에 식성을 다시 맞추는 자식으로, 쉼터에서는 아직도 돈이 생기면 생기는 쪽 쪽 사용하는 자매들도 계속 입소하지만, 5년째 되어서야 겨우 금전을 모으기를 배운 사람, 3년쯤 되어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래도 그들의 진정한 발걸음에 찬사를 보내며 오늘도 이 보람과 재미에 생명의 쓰임새를 새김질 하며 이제사 겨우 미소 짓는다.


11. 지을 수 있을까?

올해는 배추농사를 지어 직접 김장을 하고 싶다고 쉼터 식구 중에 청원을 해서 아우가 사놓은 영천 삼부 땅으로 17명의 식구들이 갔다 가자마자 4살짜리 두 여아는 흙을 퍼서 머리에 덮어 쓴다 유아 때 흙장난이 자연 친화적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좋은 것이라 하시는 어머니와 쉼터식구들이 저수지 옆에서 정서적 기쁨을 향유했다.

  이때 전에 시무 했던 교회에 권사님 오셔서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배추는 사먹어도 농사짓는 것보다 싸게 먹힙니다.” “그러나 쉼터 식구들에게 정서적이며 재활 사업에 어쩌면 이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권사님! 땅 경운 하고 땅에 퇴비 좀 부탁드립니다.”

“네 목사님!!”

왕복 차 기름 값 씨 값, 파종 후 일주일 사이에 배추 흰 나방 방제 문제 등 문제가 산적 되는 것만큼 작은 용트림의 소망도 벅차오른다. 사실 우리가 직접 농사를 짓는 다는 소망도 중요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고와 어려움의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12. 너무나 아름다운

오늘은 4월 둘째 놀토 이다. 벌써 약속대로 수목원에 아이들과 봄바람 쉬기로 했더랬는데

어제부터 오늘은 비가 전국적으로 온다 하기에 대장 엄마 진두지휘하시고 쉼터 대청소를 했다. 사무실부터 청소를 하시는데 한분이 열정적으로 하시니 모두가 내 집같이 하신다. 사실 쉼터가 생기고는 처음 이렇게 청소하기는 처음이다. 궂은 때 먼지가 너무 너무 많이 나온다. 무슨 일 이든지 도맡아 하는 자들이 있어야 일의 진척이 있나보다. 내 집처럼 쉼터를 꾸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뜨내기 인생이 아니라 순간을 살아도 멋지게 사는 자를 여기서 만난 것만 해도 복이 되다.


하지만 눈치만 파고 요령피우는 사람, 살짜기 딴전을 피우다가 비짜루만 들고 다니는자, 그래도 이 땅에 고위관직들은 거짓부렁에 북새통이 나도 시치미 때며 부끄러운 줄 모르는데 그자들 보다는 훨씬 곱다. 어찌하였던 어여쁘고 예뿐 쉼터 식구들을 기리어 사진을 찍을라 하니 벌써 열심히 일하신분은 또 바삐 다른 일하러 가고 없으시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으랴!!  모두가 잘났다는 자들은 많고 생색은 내고 있으나 정작 수고는 누가 보나 보지 않으나 이름 없고 무능한 자들이 하루하루 쌓아가는 일상의 기쁘고 즐거운 생이 늘 세상을 변화 시켜왔고 바꾸어 갈 것이다.


13. 몸부림

과연 습관에 익고 생활에 푹 젖은 삶을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더군다나 정신 지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경우는 불가능 한 것일까? 요즈음 나의 고민 중에 고민에 한가지이다. 후천적으로 아빠의 구타에 의해서 또는 급변하는 가정환경에 의해서

장애가 오지마는 제일 큰 문제는 엄마의 문제 이다. 즉 아동의 문제는 곧 그 엄마의 우유부단한 생활 태도와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엄마가 온몸으로 가르치는데 어찌 가슴에 푹 베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가끔 엄마에게 권고나 상의를 드리면 엄마는 며칠씩 쉼터에 발길이 뜸 하던지 방황을 하는 모습이 유달리 들어나곤 한다.


이분들과의 상담도 많은 배려와 시간을 두고, 지속적 권고와 격려 칭찬을 덧붙이며 지혜롭게 해야 한다. 엄마의 우유부단함과 방황은 아이들의 유산이 되고 지속가능한 대물림으로 바뀌어 헤어나지 못한다. 이처럼 부가 부를 만드는 자본주의의 사회에서는 더욱 이들을 소외의 계곡으로 내몰아쳐 소생할 길을 막게 된다. 인내로 지긋이 사랑 한다는 것 때로는 너무나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지고 납득이 되지 않지마는 세상을 얻는 것보다 한 영혼을 얻는 것이 귀하다하신 새삼스러운 그분의 사랑이 너무 돈독하심에 오늘도 감격 하며 몸부림친다.

 

 자활의 집 이야기

다 긋 치듯이

사람이 일을 하고도 재미가 있을 때가 있고 일을 잘하고도 보람이 없으면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되기도 한다. 벌써 그럭저럭 쉼터 일을 한지 5년이 다되어간다. 여기쉼터의 일속에 가장 많이 만난사람은 예수다. 다소곳한 아내와만 살다가 이 세상여인들이 다 아내 같은 줄만 알았는데 아무튼 쉼터의 여성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결국은 이해하지 못하는 쉼터 여성들의 생활을 통해서 예수의 인성을 넘어서 겨우 그분의 눈에 띄는 신성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배려는 손톱만큼도 없고 헐 떳고, 양보 할 줄 모르며, 자신의 이익이나 챙김에 대해서는 귀신같이 빠르나 상대방이 어떤 처지에 있으며 무슨 문제로 슬퍼하는지도 전혀 생각 없이, 이익만 추구하기가 일수이다가

자신이 문제가 되면 벼락같이 뛰어와 변명과 발뺌에 명수이다. 물론 살기 힘든 세상에 살아가기 힘이 들다  오랜 세월 나와서 가족 없이 살아 그런지 아니면 인간화교육을 못 받아서 인지는 모르나 자활의 집식구처럼 쉼터를 나가있는 구성원들은 교육도 힘이 들거니와 또 여기 있을 때에도 교육을 피해 그냥 살기 바빠 지쳐있었다. 사람이 사는데 돈은 수단이지만 궁극적 목적이 되어 있고, 삶의 원초돌이요 뿌리인 덕성이나 인성은 찾아 볼 수 없고 자기보따리만 찾는 사냥개가 되었다. 아내를 잃은 상처도 채 가시기전인데 급하게 찾아와  욕구만 채우고는 왱하니 사라진다. 자활의 집 문제는 삶이 바뀌지 않고 산다 한들 눈에 보이는 다른 대물림을 어찌하랴!! 다 긋 치듯이 묻고는 승냥이처럼 얻을 것을 물고 가는 자활의 집 한 식구를 보며 나의 삶의 승냥이의 모습을 살피며 그분의 인성 속에 나타난 신성에 잠겨 감사와 회개의 눈물을 흘린다. 

 

2008년 선한 사마리아인 소식지에서 발췌 (http://cafe.daum.net/samaria6468)

천상의비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출처 : 천상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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