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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 성도
가족이란 혈연을 중심으로 하여 맺어져서 한 집에 동거하는 구성원을 말합니다.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혈연이 가족구성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를수록 혈연중심보다는 함께 거한다는 동거의 의미가 강조되며
그리하여 입양하는 일에 거부감이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 구성원에게 있어서 최대의 복이란 흩어지지 않고 함께 동거하는
일일 것입니다.
고기를 먹으면서 가족간에 불화하는 것보다 그들의 식탁이 그린필드일지라도
우애하고 화목하는 것을 바라고 그렇게 우리는 자녀들에게 유언하고플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모를 중심으로 하여 서로 희생하고 양보하며 이해관계와 유익을
따라 서로를 판단하지 아니하며 사랑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계산하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고 바람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족에 대한 바람이며 원하는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공동체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자신의 권속으로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가나안땅에 거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입되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부르셔서 가나안에서 자신과 함께사는 자신의 나라 곧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셨습니다. 여기에 구약 백성들의 행복이 있었고 평안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나안에서 여호와와 함께 동거하는 것(사는 것)이 이스라엘의
복이었습니다.
시편1편에서는 이러한 구약백성의 기쁨과 바람이 무엇이며
그들이 구하고 생각한 복이 무엇인지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여기에서 언급하는 악인이나 죄인 그리고 오만한 자는 누구입니까?
여호와를 모르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거역하고
여호와 앞에서 교만히 행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구를 따라 살아가는 자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알고 그를 기뻐하며 그를 사랑하여
그의 계명인 모세율법을 따라 여호와를 섬기는 자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축복 때문이 아니라, 즉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소산물과
그들의 건강 그리고 전쟁이 없는 평화와 자녀들의 잘됨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가 자신들의 하나님되심을 인하여그를 섬기기를 기뻐하는 자가
참으로 복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의 율례인 모세율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기빠합니다.
장로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인 소요리문답의 첫 질문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율법을 가까이하여 여호와를 섬기기를 기뻐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항상 나무에게 필요한 물과 영양분이 사시사철 공급되어 그 잎사귀가 푸르르고
시절을 좇아 과일을 맺듯 그의 삶이 그러하다는 것이지요.
여기의 형통함이란 인간의 입장에서 만사가 형통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만일 그가 인간의 입장에서 형통하였다면 그는 형들의 미움과 질시를 받지
않았을 것이며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도 없었을 것이고 술맡은 관헌도 석방되어
나간 즉시에 그 관헌이 바로에게 고하여 요셉은 감옥에서 오랫동안 고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보면 그 행사가 형통한다는 것은 그를 통하여
여호와의 뜻이 거리낌없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서는 그의 자손을 여호와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이삭을 통하여서는 그 약속이 이어지게 하며, 야곱을 통하여서는 12족장을
기반으로 하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세우셨으며 요셉을 통하여서는
극심한 기근 가운데서 자신의 백성을 애굽에서 번성케 하는 일에 봉사자로
살게 하셨으며 다윗을 통해서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이러한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형통의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자신의 뜻과 경륜을 이 세상 가운데 이루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시편기자의 고백을 통하여 나타난 것 보다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구약에서처럼 휘장으로 가리운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께서 그의 머슴인 모세를
통하여 비추시는 빛이 아니라 이제는 아들을 통하여 비추는 참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통하여 참된 생명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렇다면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우리는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복을 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시편기자는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찾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사랑하여 기뻐하는 자가 복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빛
곧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그대는 무엇이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위의 성도들과 이웃들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그가 복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업이 잘됨입니까?
물질의 풍성함과 건강입니까?
만사가 형통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유력한 자가 되고 머리가 되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칭송을 받는 것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대의 가치관과 마음은 다시금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서 그대의 가치관이 새롭게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이 우리의 아버지로 나타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기뻐하여 그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성도가 참으로
복된 자이고 복있는 성도입니다.
그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고 세상에서는 무명한 자이지만 예수안에서 비추신
하늘의 빛 가운데 거하는 성도가 참으로 복된 자라고 본문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요한을 통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너희의 아빠니라"라고 자신을 증거하신 하나님으로 기뻐하십시다.
그리하여 하늘의 것으로 배부르기를 소원하고
하늘의 것으로 우리가 기름지기를 기뻐하십시다.
그러면 주님은 참으로 네가 복있는 자로다라고 평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2:9)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세상을 이기시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글: 서해바다
